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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9월 19일자에 실린 정석구 선임기자의 칼럼 "문국현의 꿈과 현실"은 다소 의외다. 그가 문 후보에 대한 호의적 시선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가 문 후보 진영의 전략과 공약에 대하여 다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문국현 바람은 선선한 가을 바람처럼 신선하다. 그는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언어로, 전혀 다른 판을 얘기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사람이 보이고, 희망 찬 미래가 다가오는 듯하다. 참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정치인치고 <한겨레>로부터 이 정도로 따뜻한 언어를 선물 받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 따뜻한 교감 속에 오가는 '충고'는 가능한 한 최대한 마음을 활짝 열고 수용해야 할 것이다.다만 이 글에서는 정석구 기자가 오해하는 부분은 무엇인지,그리고 문국현 후보 진영이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써 내려 가기로 한다.

 

정기자는 이 글에서 "(문후보)가 추구하는 가치를 국가 경영에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단지 새로운 가치관과 미래의 꿈을 국민에게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쓰고 있는데, 이 말은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은 다르다"는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의 말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정 기자와 심 의원의 주장은 문 후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생긴 오해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문 후보는 '4조 2교대제'라는 그의 핵심 키워드를 말할 때는 항상 '평생학습'이라는 또 다른 핵심 키워드를 잊지 않고 병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 후보가 좀더 적극적으로 그가 구상하는 국가적 단위의 "평생학습 시스템의 구체적인 상"을 대중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것을 좀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문국현의 평생학습 시스템구축전략을 소개해 보자면, 그가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주된 대상은 북유럽의 "평생학습 시스템"인 것 같은데 우선 그 중 하나인 핀란드 이야기부터 해 보기로 하자.

 

핀란드는 1990년대 초반 심각한 국가적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당시 핀란드의 고통은 우리나라 외환위기 당시 고통의 2~3배 이상이었을 것 같은데, 1997~1999년 우리나라 성장률이 각각 4.7%,~6.9%,9.5%인 반면 1990~1993년 사이 핀란드 경제성장율은 각각 -0.1%, -6.2%, -3.7%, -0.9%였고, 1998~1999년 당시 우리나라 실업율이 7.0%, 6.6%인 반면,1993~1995년 핀란드 실업율은 16.4%, 16.6%, 15.4%에 이르렀다.

 

핀란드가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이유는 1980년대 금리자유화, 대출한도제 폐지, 해외차입제한완화 등 금융자유화, 외환자유화로 인해 형성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1990년을 전후하여 일시에 꺼졌기 때문인데 당시에 거품붕괴의 충격이 의외로 컸던 이유는 전세계적인 실물경기둔화에 핀란드 대외무역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던 소련의 붕괴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여 핀란드가 경제 재건을 위해 수용한 것 중 하나가 1992년에 나온 'OECD 교육개혁 권고안'인데 그 권고안은 핀란드 대학 중 일부를 보다 더 산업적 수요에 적절하게 부응하도록 실무중심형 대학으로 개편하는 것이었다.

 

이 권고안에 따라 핀란드는 대학의 절반은 유니버시티로, 나머지 절반은 실무중심형 폴리테크닉으로 정비하는데 이 폴리테크닉은 OECD나 핀란드 교육당국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좋은 성과를 가져오게 된다.

 

핀란드 폴리테크닉은 교수 채용과 교수양성과정에서부터 그 특징이 드러난다. 초기에 폴리테크닉 교수들은 대부분 다년간의 기업현장경험을가진 전문가들로 채용되었는데 석박사 학위는 채용과정에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는 학위는 없지만 현장실무능력이 뛰어난 베테랑들을 우선 채용하고 채용 후에 그들에게 체계적인 교수법과 석박사 학위과정을 교육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폴리테크닉의 실무중심형 교수채용과 실무중심형 교육내용이 기업의 산업 수요에 즉각적으로 부응하고 기업과 학생들 모두에게 좋은 호응을 얻어 졸업자들의 취업률을 급증시키자 나중에는 오히려 유니버시티 공과대학까지 폴리테크닉의 장점을 원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핀란드에서 유니버시티 공과대학 교수가 되려면 3년 이상의 기업체 근무경력을 필요로 하는데 10년 이상 경력자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폴리테크닉은 고교 졸업자 뿐만 아니라 새로운 양질의 기술을 습득하고자 하는 현직근로자들에게도 무료로 문호가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이나 근로자들의 인기 또한 매우 높다고 한다. 현재 폴리테크닉 재학생 중의 절반은 이러한 현직 근로자들로 채워져 있다.요컨대 핀란드 폴리테크닉은 핀란드에서 양질의 평생학습을 보장하는 인재양성의 요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국현 후보 진영은 이러한 핀란드의 폴리테크닉을 가장 모범적인 평생학습체제 중 하나로 인식하는 것 같다. 즉 기업 내에서는 '4조 2교대제' 같은 방식을 통해서 실무형 인재를 키우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핀란드 폴리테크닉형 교육개혁을 통해 역시 실무형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핀란드는 교육예산 비중 등에서 차이가 나므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겠지만 우리나라 국공립,사립 전문대와 산업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 1년 납입금 총액이 3조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우리나라 2007년 교육예산이 31조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큰 액수는 아니다. 27조에 달하는 유초중고 교육 예산을 좀 아껴쓰고 여타 비교육 부분 예산 중에서 낭비적 요소가 큰 사업을 정리한다면 3조 확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전문대, 산업대 학비를 전액 무료로 할 필요는 없고 또 여의치 않을 경우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만 무료로 해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예산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한국형 폴리테크닉의 성장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세력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왜냐하면 한국형 폴리테크닉이 핀란드처럼 급성장하면 대학간 경쟁력과 인기판도에 큰 변화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교육계 기득권 세력들은 이 점을 경계하는 것이다.기득권 세력들이 전문대의 4년제화도 아무런 근거없이 반대하는 것을보면 대학교육계가 얼마나 철저하게 썪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학을 평준화시키지 않고는 초중고 입시지옥문제도 결코 해소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교육문제를 원천적으로 풀기 위해서라도 한국형 폴리테크닉의 급성장은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핀란드형 평생학습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 왜 그렇게도 절실한가.

 

대기업 총수들이 자주 '샌드위치 위기' 운운하는데, 그들이 그럴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그들의 말을 마냥 흘려 듣기는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선 먼저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의 실태를 보기로 하자. 1980년대와 2000년대 일본의 제조업을 보면 대기업 1인당 부가가치 창출액 대비 중소기업 1인당 부가가치 창출액 비중이 1980년대에도 50%내외,2000년대에도 50% 내외로 큰 차이가 없다. 반면 한국 제조업을 보면 그 수치가 1980년대에 50%내외에서 2000년대에 30% 내외로 크게 추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중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 창출 비중이 낮아지면 당연히 1인당 임금비중도 낮아지고 1인당 설비투자액 비중도 덩달아 낮아지기 때문이다.실제로 한국은행 통계자료와 산업은행 통계자료를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설비투자 양극화가 아주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2003년과 2006년 대기업과 중소기업 설비투자액을 비교해 보더라도 GDP 대비 대기업 설비투자 비중은 4.4%에서 6.2%로 증가한 반면,중소기업 설비투자 비중은 5.2%에서 2.8%로 추락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거시경제지표는 좋아진다는 데 서민경제는 한겨울이라는 하소연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심각한 양극화의 진행은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기업은 현대차처럼 주로 조립을 담당하고 중소기업들은 부품, 소재를 담당하는데, 후자가 갈수록 연구개발과 교육훈련과 설비투자와 우수인재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한국이 앞으로 높고도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해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어떤 대선후보도 연구개발과 교육훈련과 설비투자와 우수인재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속 시원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한, 미래 한국의 높은 경제성장율을 함부로 운위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첨부한 엑셀파일은 참고용으로 보냅니다..감사합니다..  


#문국현#평생학습#핀란드#폴리테크닉#정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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