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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초등학교 음악 시간 풍금 반주에 맞춰 불렀던 광복절 노래다. 빼앗긴 들에 봄이 다시 찾아온 감격의 날 8월 15일을 기념한 노래. 해방 후 세대여서 그날의 감격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을 통해, 책을 통해, 드라마를 통해,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8·15의 의미를 배우고 익히고 되새겼다.

 

우리에게 해방의 날인 8·15가 일본에서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일본에서는 8.15를 패전이 아닌 종전의 날로 만들기 위한 지속적이고 치밀한 노력이 이어져 왔다. 이 과정을 통해 8·15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패전과 종전의 차이

 

역사에서 용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4·19를 혁명이라 규정하는 것과 의거라 규정하는 것에는 아주 큰 인식의 차이가 있다.

 

일본이 패전을 대외적으로 공식 인정한 게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왕의 라디오 육성 항복 방송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패전이란 개념 대신 종전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전쟁에서 패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끝났다는 의미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육성 방송도 전쟁의 패배를 인정한 게 아니라 전쟁의 종료를 알리는 방송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잠깐 1945년 8월 15일에 있었던 일왕의 육성 방송의 내용을 살펴보자.

 

"일찍이 미·영 2개국에 선전포고를 한 까닭도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짐의 뜻이 아니었다.  … (중략) …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빈번히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하였으며 그 참해 미치는 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략) … 생각건대 금후 제국이 받아야 할 고난은 물론 심상치 않고, 너희 신민의 충정도 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짐은 시운이 흘러가는바 참기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 이로써 만세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열고자 한다."  (4~5쪽, 종전조서 전문 중에서)

 

방송에서 일왕은 일본의 침략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싸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잔학한 적의 원폭 공격을 받아 무고한 백성들이 당한 참화가 헤아릴 수 없는 상황에서 백성을 구하고 만세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전쟁의 종결을 선포한다는 내용이다.

 

패전이 아닌 종전 선언이다. 어쩔 수 없어 항복을 한 게 아니라 주체적인 전쟁 종결 선언이다. 아무 죄도 없이 참화를 당하는 신민들을 불쌍히 여겨 전쟁의 종결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왕의 육성 방송은 당연히 항복 방송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8월 15일은 아무런 의심 없이 해방의 날로 기억하고 있다.

 

치밀하게 조작된 8·15 신화

 

일왕의 8·15 육성 방송을 듣고 일본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작업장에서 눈물 흘리는 정신대 여성들 사진, 엎드려 우는 소년들 사진 등을 통해서 성스러운 천황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데 놀라고, 성스러운 전쟁 종료 선언에 감동하고, 신민의 안위와 행복을 돌보아주는 은혜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고 알려졌다.

 

이 책의 저자 사토는 이들 사진들이 1945년 8월 15일 찍은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추적을 통해 밝혀냈다. 일왕의 육성 방송일과는 상관없는 날짜에 찍었거나 의도적으로 연출되어 찍힌 사진이었음을 사진 속의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패전이 아닌 종전의 날로 8월 15일을 기억하도록 하는 시도는 1955년 이후 본격화되었다. 9월 2일 항복 문서에 조인을 해서 패전을 받아들여야 했던 기억을 지우기 위해 8월 15일 일왕의 육성 방송의 의미를 집중 부각시켰다. 이렇게 신화화된 8·15는 9월 2일 패전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8·15를 종전으로 이해하는 일본인들에게 2차대전은 침략 전쟁이 아니었다. 일본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위한 성전이었다. 하지만 원폭 등의 가공할 무기 때문에 무고한 희생자가 많아 전쟁 종결을 선언한 날이 8월 15일이라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 8·15는 무엇인가

 

일본에서 패전이 아닌 종전의 날로 부각되는 8.15를 우리는 여전히 감격적인 해방의 날로 이해해도 될까.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조인했던 날은 9월 2일이다. 미국의 '대일 전승 기념일'도 9월 2일이다. 러시아, 중국, 몽골은 9월 3일을 '항전 승리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8·15는 무엇인가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에 의해 재해석되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토 다쿠미는 <8월 15일의 신화>란 책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8월 15일의 신화 - 일본 역사 교과서, 미디어의 정치학

사토 다쿠미 지음, 원용진.오카모토 마사미 옮김, 궁리(2007)


태그:#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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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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