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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멋진 걸."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남자 주인공들이 경치 멋진 곳에서 여자 주인공을 위해 요리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을 볼 때마다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아, 오해하시지 마시라.


여자 주인공을 위해 요리해주는 장면이 멋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남자 주인공이 스스로 요리를 해서 멋진 풍경에서 우아하게 식사하는 그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는 거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야 여자 주인공들이 "맛있네요"를 연발하지만 실생활에서 그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스트레스만 잔뜩 받을 것 같다.


어쨌든 그 남자 주인공들의 모습에 반했던 난, 지난 주말을 맞아 그런 우아한 식탁을 꾸며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들이 했던 요리의 모습들을 따라 해보려니 한숨부터 나왔다. 쉬워 보이는 요리가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적당한 음식이 하나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샌드위치!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많이 만들어주신 음식이었기에 어떻게 만드는지 기억이 생생했다. 아니, 잠깐 생생했던가? 샌드위치를 만들려면 일단 식빵이 있어야 하고, 샌드위치에 넣을 속이 필요하다. 헉, 그런데 샌드위치 속에 넣는 음식들을 무엇으로 만드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기억을 가만히 더듬어 어린 시절 먹었던 샌드위치 속에 들었던 것들을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삶은 달걀을 으깬 것 이외에는 다른 이미지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뭐 일단 해보면 되겠지. 어린 시절 기억을 되찾기 위해 동네 대형 마트에 가기로 했다. 가서 둘러보다 보면 분명 이것저것 눈에 띄는 것이 나오리라.


샌드위치 재료 구입 완료!


자, 드디어 재료 구입을 시작해볼까. 긴 쇼핑의 시간 끝에 마련한 재료는 바로 이 녀석들.


재료 : 식용유, 케첩, 드레싱 소스, 오이, 감자, 참치 통조림, 치즈, 포도잼, 식빵, 달걀

스스로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와 요리를 하려고 보니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샌드위치에 포도잼이 들어갔던가. 뭐 어떤가. 빵에다 그냥 발라먹을 수도 있으니 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배도 고프고 해서 일단 식빵에 잼을 가득 발라먹었다. 배고픈 마음에 하나 둘 먹다 보니 포도잼 통이 벌써 반이나 텅 비어 있었다. 앗, 큰일이었다. 아직 만들지도 않았는데.


그보다 더 큰일은 쇼핑을 해서 피곤한데다가 간식도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우아한 식사는 일단 다음날 아침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너무 졸렸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일요일 아침. 영화 속 남자 주인공들처럼 멋진 식사를 해보고자 아침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만 보자.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많이 먹은 음식이라고 인터넷에서 요리법 하나 안 구한 것이 후회가 된다. 뭐 어떠랴. 재료를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방법이 나오리라. 재료들과 열심히 눈싸움을 시작했다.


식용유, 어 왜 샀지? 아, 프라이팬에 두르려고 산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재료들을 둘러보니 아무리 보아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먼저 두르고 할 요리가 없었다. 아 얘네들을 왜 구입했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괜찮다. 어차피 프라이팬 쓸 일 많다.


어디에? 다시 한 번 둘러보다가 달걀에 눈이 멈춘다. 그렇구나. 프라이팬에 일단 물을 채운 후(국도 해먹으려고 일부러 움푹 파인 프라이팬을 샀다) 달걀을 넣었다. 그리고 끓이기 시작했다. 이러면 삶은 달걀이 곧 나올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감자가 보인다. 감자도 삶아야 한다. 어떻게 삶을까 고민하다가 옆에 밥통이 보인다. 이 중국산 밥통, 분명 밥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찔 수도 있다고 했다.

 

자, 그러면 밥통에다 감자를 넣고 찐 감자를 만들어보자. 그런데 샌드위치 만들 때 감자를 찌는 게 아니라 삶는 거 아니었던가. 찐 감자가 있던가. 헷갈렸다. 뭐 어쨌든 익으면 되는 거 아닌가. 감자를 잘라서 밥통에 넣으려고 하니 많아서 밥통 뚜껑이 닫히지를 않았다.


어, 어쩌지. 다시 잘게 잘고 썰어도 결국 뚜껑이 닫히지 않아 일부 감자는 결국 밥통 안에 넣지 못하고 말았다. 이 일을 어쩐다. 아, 맞다! 옆에서 서서히 끓고 있는 달걀을 품고 있는 프라이팬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다가 감자를 넣으면 되겠구나. 남은 감자를 그곳에 집어넣었다.


"하하, 역시 난 머리가 좋아!"


어, 그런데 잠깐만! 뭔가 이상했다. 어차피 프라이팬에 달걀이랑 감자랑 같이 넣어서 익힐 거면 왜 밥통에다 감자를 넣었지? 순간 멍한 느낌이 들었지만 빨리 잊기로 했다. 뭐 그게 그리 중요한 건가. 익기만 하면 될 거 아닌가. 감자와 달걀이 익는 동안 오이와 치즈를 섞어 잘게 썰었다.


또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치즈가 왜 있지? 치즈가 샌드위치 속에 들어가나? 하지만 이미 다 잘라놓은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얼마 후 시간이 지나 감자와 달걀이 다 익었다. 달걀 껍데기를 찬물에 5분 정도 담갔다가 껍질을 벗겨 내었다. 이제 서서히 완성의 시간이 가까워 보였다. 다 익은 감자와 달걀, 아까 썬 오이와 치즈를 한 통에 다 담갔다.


이제 으깨는 일만 남았는데, 무엇으로 으깨야 하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어머니께서 무엇으로 으깨셨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음식들을 으깰 후보 둘이 있었다.

 

하나는 나무 숟가락, 하나는 밥주걱이었다. 큼직한 밥주걱이 더 마음에 끌렸지만, 우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입장으로서 밥주걱으로 음식들을 들쑤시고 싶지 않았다. 그 얼마나 웃긴 광경인가?


그러나 얼마 후 다시 밥주걱을 집어들고 말았다. 나무 숟가락으로 열심히 으깨보았으나 달걀이나 감자가 도통 잘게 으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밥주걱을 들고 다시 맹렬하게 감자와 달걀 무리들을 으깨기 시작했다.

 

잘 깨진다. 어, 그런데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참치 통조림을 안 넣었던 것이다! 다른 음식 재료들과 달리 손을 댈 일이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재빨리 참치 통조림을 다 쏟아 부었다.


"으하하! 곧 맛있는 음식이 나오겠군!"

 

득의양양한 웃음도 잠시 얼마 전 맛의 향상을 위해 긴급 투입된 참치들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 으깨고 섞으면 섞을수록 밥주걱에 달라붙는 것이었다.

 

결국 젓가락의 힘을 빌려 몇 번이고 달라붙는 참치와 감자들을 떼어내었다. 열심히 떼다 보니 눈에 뜨이는 케첩과 드레싱 소스.

 

저건 대체 왜 샀던 것일까? 드레싱 소스는 중국 마트에서 마요네즈를 찾으려 뒤지고 또 뒤졌으나 결국 보이지 않아 마요네즈 대용으로 산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뿌려야 했다. 드레싱 소스 뿌리기! 드레싱 소스 뿌리기를 하고 나니 케첩이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샌드위치 속에는 케첩 형태가 없었던 것 같지만, 그냥 뿌리기로 했다.

 

맛있을지도 모르고 원래 이 케첩은 액체라 뿌려 놓으면 알 수 없지 않던가. 그리고 열심히 으깨고 섞고 섞어 드디어 샌드위치 속을 완성했다.

 

만드는 과정이 좀 우습긴 했지만 뭐 어떤가. 맛만 있으면 되지. 그런데 우아한 식탁을 위해 시작했던 거 아닌가. 뭐 괜찮다. 완성품이 우아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드디어 식빵에 열심히 만든 샌드위치 속을 바르고 빵을 덮었다. 네모난 모양의 샌드위치 어쩐지 멋이 없었다.

 

가게에서 파는 것처럼 예쁘게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고자 칼을 들고 식빵을 대각선으로 쾅 찍었다. 헉, 이럴 수가. 샌드위치가 부서지려고 했다. 다시 칼을 잡고 조심스레 자르기 시작했으나 벌써 일부분은 파괴 상태였다. '다른 것부터 조심하면 괜찮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다른 것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우아한 식탁의 꿈? 못난이 샌드위치!

 

드디어 완성! 도마 위에 샌드위치를 예쁘게 정렬시키고 나니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그 웃음의 길이는 한 3초 정도에 불과했지만. 가만히 정렬시킨 샌드위치를 보니 초등학교 시절 앞으로 나란히 똑바로 줄 서라고 해도 장난꾸러기들 때문에 비뚤비뚤해지는 줄이 생각났다.

 

분명 너희들은 샌드위치가 맞는데 어째 드라마 영화 속 샌드위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샌드위치와도 확연히 차이를 보인단 말이냐! 똑바로 줄을 서란 말이다. 자기 자신의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애꿎은 샌드위치를 탓해보았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생각만큼 우아한 밥상이 완성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지는 샌드위치였다. 게다가 저 샌드위치 안에는 치즈, 참치, 감자, 달걀, 오이 등 맛있는 음식들이 잔뜩 들어있지 않던가. 자, 환상의 맛으로 빠져보는 것이다!

 

"우적!"

 

한 입을 베어 먹고 나니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이란 말인가!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샌드위치는 정말 맛이 있었는데 이건 당최 무슨 맛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 나는 만화 <미스터 초밥 왕> 주인공처럼 한 번 맛을 보거나, 생각해서 그 맛을 찾아낼 수 있는 요리의 달인이 아닌데 오로지 기억만으로 음식을 하려고 했다니 너무 건방졌던 것일까. 그런데 사실 그렇게 어려운 요리도 아닌데 굳이 맛을 기억해가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어쨌건 만들었으니 먹어야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맛이긴 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음미하면서 먹으면 괜찮았다. 그러다 옛날의 맛을 찾고자 케첩을 발라서도 먹어보고, 치즈를 넣어서도 먹어보았다.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더 맛있는 맛을 찾으려 하던 중 문득 어떤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떠올린 순간 몇 분간 '생각하는 로댕'처럼 조각이 되어 가만히 먼 곳을 응시해야 했다.

 

새로운 맛을 찾고자 썼던 케첩이나 치즈나 이미 샌드위치 속을 만들 때 다 넣었던 것들 아니었던가. 그렇게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지난 주말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분명 100이 넘는 내 아이큐에 의심이 약간 갔다. 역시 요리의 길이란 멀고 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천천히 나아가면 분명 진보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자면 반성이 필수!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를 생각해보다 식용유에 눈이 갔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식용유. 대체 왜 산 것이지?

 

기름을 두르고, 아! 계란 프라이랑 빵을 구우려고 했다. 아니, 잠깐 그건 샌드위치가 아니라 토스트 만들 때 필요한 작업 아니던가?

 

아이고, 이런, 바보 같은 경우가 있나. 우아한 아침 식사를 꿈꾸던 한 남성의 꿈이 준비 부족으로 인해 못난이 샌드위치와 함께 서서히 무너져 내리던 지난 주말이었다. 하지만 이 사내, 언젠가 한 과자 광고에서 치타가 했던 '언젠가 먹고 말거야!' 이 대사처럼 이 말을 잊지 않는다.

 

"언젠가 성공할거야!"

 

성공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 언젠가 성공하지 않겠는가!

 

- <중모의 언젠가 성공할 요리 강좌>는 2편에 계속됩니다. 반드시 제대로 된 요리 만들어 냅니다!-

덧붙이는 글 | 조언 부탁드립니다. 또 시도해보라고 권유하실 음식이 있다면 권유해주십시오.


태그:#샌드위치,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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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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