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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주 역사박물관 3층 기획 전시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주 역사박물관 3층 기획 전시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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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부터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주 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선 '장인의 숨결'이란 타이틀로 이기동 합죽선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 작품들은 2006년 11월, 400년 전통의 전주 합죽선을 60년째 만드는 이기동(李基東·77세) 선생께서 전주시에 기증한 것들이다.

작품을 기증한 이기동 선생은 전북 무형문화재 제10호 합죽선 '선자장'이다. 선자장이란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부채는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민족과 동고동락해온 물건이다.

부채의 어원을 살피면 손으로 부쳐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부'자와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를 가리키는 '채'자가 합쳐진 말이다. 그렇다면, 부채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 삼국사기> 열전 견훤조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정명 4년(918) 무인에 수도 철원의 뭇 사람의 마음이 문득 변하여 우리 태조를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니 견훤이 이 소식을 듣고 가을 8월에 일길찬 민합을 보내 축하하고 이어서 공작선과 지리산의 대나무로 만든 화살을 바쳤다."

이로 보아 이미 후삼국 시대 이전부터 부채가 사용되고 있었다는 걸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 악지에는 부채를 든 광대가 등장한다.

"애장왕 8년(807)에 음악을 연주할 때 처음으로 사내금을 연주하였는데, 무척 네 사람은 푸른 옷이고, 금척 한 사람은 붉은 옷이고, 가척 다섯 사람은 채색 옷에다 수놓은 부채 및 금실 허리띠였다."

애장왕은 신라의 제40대 왕이다. 지금 판소리 창자가 쥘부채를 손에 들고 소리하는 모습이 아주 역사가 오래된 일이라는 걸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손님을 맞는 갖가지 부채들

이기동 합죽선 특별전 전시회장을 찾은 것은 16일 오전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실내를 가득 메운 갖가지 부채들이 손님을 맞는다.

조각 무궁화선.
 조각 무궁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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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민화선.
 호랑이 민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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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조각선.
 한지 조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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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조각선(부분).
 한지 조각선(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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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부채는 크게 태극선과 합죽선으로 나눌 수 있다. 합죽선은 부챗살에 종이나 비단을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이다. 민어의 부레를 끓여 쑨 풀로 대살을 겹쳐 붙이는데서 '합죽'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먼저 생산된 전남 담양을 누르고 합죽선이 전주의 특산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주천의 깨끗한 물과 좋은 한지를 만들 수 있는 질 좋은 닥나무와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합죽선의 인기는 대단해서 조선시대에는 임금님께 올릴 부채를 관리하는 선자청이라는 관청을 따로 둘 정도였다.

부채에 그려진 그림 소재들은 매우 다양하다. 산수, 꽃, 새, 인물, 풍속, 사군자 등 민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이 그려진다.

황칠 낙죽선.
 황칠 낙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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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 낙죽선.
 황칠 낙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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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 낙죽선.
 황칠 낙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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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 매화선.
 황칠 매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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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이란 황칠나무 줄기에 상처를 내서 뽑아낸 수액을 정제한 천연 칠감을 말한다. 화려한 금빛이 특징인데 나무나 쇠에 칠하면 좀과 녹이 슬지 않고 열에도 강해 '옻칠 천 년 황칠 만 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칠감이다. 또 '황칠'은 안식향이란 독특한 향기를 뿜어 사람의 신경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편 '낙죽'이란 목살에 인두로 무늬를 넣는 걸 말한다. 황칠 낙죽선이란 황칠을 하고 목살에 낙죽으로 무늬를 넣었다는 뜻이다. 낙죽한 부채는 많이 봤지만 황칠한 부채는 처음 본다. 아마도 이기동 선생이 처음으로 시도하시는 실험적 작업인가 보다. 그래서일까. 전시회는 황칠 낙죽 부채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부채에 함축된 벽사의 의미

사진으로 보는 무당부채, 공작선, 대륜선.
 사진으로 보는 무당부채, 공작선, 대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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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부채를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일까. 합죽선 구경이 끝나는 지점엔 부채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다. 비록 여기에 전시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전통 부채들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이기동 선생의 심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당부채, 공작선, 대륜선, 선녀선, 차연선, 대모홍접선, 흑단선, 일월화접선, 곱장연엽선 등 이름조차도 생소한 부채들이 사진 속에서 저마다 맵시를 뽐내고 있다.

사람이 무조건 곧아서도 안 되고 굽실굽실 흐물거려서도 안 되지. 외유내강의 맛이 있어야 하잖어.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인간미가 있어야 되거든. 합죽선도 마찬가지야. 사람이 잘 만들어진 합죽선 같으면야 두말할 나위 없지.

두 장짜리 팸플릿에 쓰인 선생의 말씀이다. 오롯이 평생을 한 분야에 바친 끝에 정상에 오른 한 장인의 정신적 깊이를 엿보게 하는 말씀이다.

부채는 아름다운 미관과 더위를 쫓는 기능 외에 벽사의 의미도 갖고 있다. 부채가 무속의 세계에서 필수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염병을 쫓아내라는 뜻에서 옛 사람들은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제 며칠 후면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다. 비록 단오는 아니지만 어른들께 드리는 선물에 합죽선 한 자루를 살짝 끼워 넣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기동 합죽선기증 특별전은 오는 10월 12일(금요일)까지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액자 속에 든 부채를 찍은 사진을 트리핑한 관계로 실제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태그:#합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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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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