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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길이 마을과 마을, 길과 길로 이어져 있다.
▲ 비행기 창으로 바라본 제주 길과 길이 마을과 마을, 길과 길로 이어져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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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은 또 다른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삶의 첫 걸음 순간, 발바닥이 하늘을 본다는 것은 신비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이 시작되고, 우리의 발바닥이 더 이상 흙을 밟을 수 없을 때 끝난다. 흙에서 온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하늘을 본 발바닥이 다시 하늘을 보는 것, 그것은 처음과 마지막이 다르지 않음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그 끝남은 또 새로운 길의 시작이요, 기독교에서는 영생이라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영생을 말하지만 그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있는 키(key)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우리가 길에서 길로 여행하는 현재임을 깨닫는 이는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다.

홀로 걸어가는 걸음,  짐없이 걸어가는 걸음이 자유로워 보인다.
▲ 어리목 홀로 걸어가는 걸음, 짐없이 걸어가는 걸음이 자유로워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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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여행자의 짐은 가볍다

이 작은 무리의 사람들은 자유로운 여행을 하는 이들이다.

자유로운 여행을 원한다면 짐을 가볍게 져야 한다. 가벼운 짐이란 '소박함'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며, 소박함은 '존재하는 삶'과 다른 말이 아니다. 자유로운 여행을 꿈꾸면서도 우리의 현실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존재하는 삶이 아닌 소유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소유한 것을 유지하기 위해 소외된 노동을 하며, 일과 놀이가 분리된 삶을 살아감으로 결국 휴식을 위해서 더 많은 소외된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악순환의 되풀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 결과 길을 걸어가고 있음에도 길을 볼 수 없고, 자신이 본다고 생각하는 그 길은 그 길이 아니다.

성서는 넓은 길과 좁은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넓은 길은 빨리 갈 수 있지만 좁은 길은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야 한다. 느릿느릿 걸음은 조금 불편해도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작은 것들이 주는 아름다움과 단순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좁은 길, 그것은 그래서 영생의 길이다.

안개가 자욱한 절물휴양림을 걷고 있는 사람들
▲ 절물휴양림 안개가 자욱한 절물휴양림을 걷고 있는 사람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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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아침, 안개낀 숲이 주는 선물

가을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길에 서 본적이 있는가?

숲길 좌우편으로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서 있으며 땅으로 이어진 끝날 듯 끝나지 않은 길을 감추고 있고, 하늘로 난 길은 청명하고 높다. 땅으로 이어진 길의 끝은 하늘과 맞닿아 있으니 땅과 하늘이 사랑하는 연인들의 뜨거운 입맞춤을 하는 듯하다. 이런 길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두 손을 마주잡고 걸어도 좋고, 사랑하는 아이를 목마를 태워 깔깔거리는 하늘 닮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숲길에 퍼지게 해도 좋고, 홀로 걸어도 좋다.

숲길 양편으로는 가을꽃들이 피어나 걷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걷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 물봉선, 물매화, 용담, 금마타리, 억새풀, 고마리와 각양각색의 숲 속의 요정 버섯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지난 계절 꽃을 피웠던 것들이 하나 둘 결실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그들이 떨어지면 가을이 깊었다는 증거다.
▲ 밤송이 그들이 떨어지면 가을이 깊었다는 증거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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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망하는 글쓰기

간혹 갈바람과 이슬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알밤과 상수리열매를 만나는 일은 행운 같은 일이다. 들짐승들과 날짐승들의 몫을 인간이 조금 나눠 갖는다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빚진 심정을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일원으로서 인간이 가져야할 태도다.

이런 마음으로 가을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길에 서면 숲 사이로 난 길은 내 삶의 도서관이 되고, 그 길에서 마음으로 읽은 수많은 사색들은 노래 혹은 시가 되고 수필이 된다. 그렇게 오붓한 길을 걸으면 만든 노래나 글은 육체노동을 통해서 얻는 노래나 글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발바닥으로 쓴 글이요, 노래기 때문이다. 나는 늘 그런 글을 쓰기를 소망한다.

길이 있다는 것은 먼저 걸어간 사람이 있다는 증거다.

회피하고 싶은 길을 걸어가야만 할 때에도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이 있음에 위로를 받는 것이다. 길은 다양한 인생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고, 어떤 인생이 행복한 인생인지에 대한 잣대가 다른 것처럼 좋은 길과 나쁜 길에 대한 잣대도 다를 것이다.


태그:#제주도, #어리목, #절물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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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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