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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28일까지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공동 주최한 '2007피스&그린보트'가 진행됐습니다. 한일 대학생과 시민 등 600명이 승선한 피스&그린보트는 요코하마→하치노헤→쿠시로(이상 일본)→캄차카→사할린→블라디보스토크(이상 러시아)→부산까지 항해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STOP!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 이번 항해에 함께한 강인규 시민기자의 승선기와 기항지 체험을 담은 글을 연속해서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캄차카. 이 이름에서 문명의 때가 타지 않은 자연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활화산·만년설·야생화·불곰·순록·연어떼 등 실제로 캄차카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오고 있다. 놀랄 만큼 잘 보존된 이곳의 환경을 둘러보면 "살아있는 에덴"이라는 칭송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곳이 본연의 모습을 지킬 수 있던 것은 "금지된 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캄차카는 극동의 대륙 끝에 떨어져 나갈 듯 매달린 반도로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지형 이외에도 냉전이라는 역사적 장벽이 이 지역을 지켜내는 데 한몫했다. 이 곳은 소련연방이 해체된 1991년 이후에야 외국인들의 방문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외지인들의 방문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이후에도 캄차카는 여전히 '미지의 낙원'으로서 신비를 잃지 않고 있다. 법적 허용이 지형과 교통,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와 문화의 울타리까지 제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곳은 러시아어를 제외하고는 영어를 포함해 어떤 외국어도 통용되지 않는다. 교통표지판과 관공서의 안내문이 러시아로만 표기된 것은 물론, 간단한 언어를 익히지 않고서는 시장에서 원하는 기념품조차 사기 어렵다. 

 

캄차카로의 여행은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것이 여행자의 기본적 예의'라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상식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이 곳에는 자연보다 훨씬 일찍 마음의 빗장을 푼 사람들이 산다. 이 아름다운 환경과 벗할 자격을 갖춘 아름다운 사람들이.

 

신비의 땅에 사는 사람들, 마음의 빗장을 풀고 있었다

 

배는 새벽에 항구에 도착했다. 캄차카 반도는 '캄차카 주'와 '코랴크(Koryak)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배가 닿은 항구도시는 캄차카 주의 주도인 페트로바플로롭스크-캄차츠키(Petropavlovsk-Kamchatsky)다. 인구는 20만명 정도지만 캄차카 반도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캄차카 반도 내에서 가장 큰 도시다.  

 

러시아의 광대한 대륙으로 인해 지도에서 보면 캄차카 반도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캄차카 반도는 면적이 37만㎢에 달한다. 한반도의 네 배, 그리고 프랑스 전체 면적에 해당하는 넓은 땅이다.

 

새벽부터 정복을 입은 군인과 경찰들이 배의 곳곳을 살피고 있었다. 국방색 제복과 그 위에 달린 계급장, 그리고 대리석처럼 흰 얼굴에 무표정한 얼굴을 한 이들은 아침공기의 서늘함을 더하고 있었다. 갑판에 나가 밖을 바라보니 낡은 아파트 단지와 관공서 건물들이 느슨하게 들어선 도시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아래로 돌리자 배 주변에서 순찰을 도는 여경관의 모습이 보였다.

 

선실이 있는 층의 복도로 되돌아오자, 일을 마친 듯 경찰들이 서너 명씩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로 웃으며 농담을 하고 있었지만, 키가 훤칠한 그들은 그 순간에도 경직된 모습이었다. 제복에 묻힌 이들의 나이를 짐작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대다수가 20대 초반 젊은이들인 듯했다.

 

캄차카에 발을 딛기는 쉽지 않았다. 비자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입국심사에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당국의 수속이 늦어져 상륙이 계속 지연되었다. 마침내 입국도장이 찍힌 여권이 도착했고, 이를 돌려받은 승객들이 출구로 향했다. 입국 심사관들은 다시 출구 앞에서 여권을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여권을 넘겨받은 심사관은 이 장 저 장을 넘겨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다시 한 번 여권을 살펴본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표시를 한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여권을 살펴보니 입국도장이 찍혀있지 않았다. 당국의 실수로 누락된 모양이다. 피스&그린보트 관계자가 내 여권을 받아들고 해당 관리에게 달려가고, 나는 출구 앞에서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이틀간 꼬박 바다를 달려왔는데, 잘못하면 캄차카에 발도 못 디디게 될 터였다.  

 

겉보다 안이 아름다운 곳   

 

다행히 십여 분을 기다린 후 입국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출구를 나와, 근처를 지키고 있던 경찰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비로소 안도하며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하고 있는데, 대학생처럼 보이는 한 여자가 다가왔다.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동양의 이방인이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주위에는 항구 주위를 산책하던 여자의 부모가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낯선 방문자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던 젊은이들이 심심치 않게 악수를 청했고, 팔에 문신을 한 건장한 청년은 우악스럽게 안는 것으로 인사했다. 삼엄했던 입국심사 분위기와 달리, 캄차카 주민들은 친절하고 관대했다.

 

'첫 인상을 배반하는' 분위기는 러시아 여행 내내 계속되었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소비에트 스타일의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5~6층의 허름한 시멘트 건물들은 애초부터 미적 고려는 하지 않은 기능적 설계인데다가, 필요에 따라 옆으로 계속 이어붙여 볼품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페인트칠을 하거나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려 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건축 양식은 '자본주의의 승리'를 예찬하는 언론에 의해 곧잘 '가난의 흔적'으로 보도되었고, 겉을 꾸미는 문화에 익숙한 방문객들에게도 동정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그 허술해 보이는 아파트의 내부를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다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성냥갑처럼 지어진 아파트의 내부는 바깥 모습과 전혀 다르게 깔끔하고 화사하게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 소비에트 시절,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무료로 공급했던 주택들은 최소한의 효율적인 구조를 지녀야 했고, 이에 따라서 외장에 신경을 쓰지 않는 문화가 생겨났다.

 

 

 

코랴크인들과의 만남

 

캄차카에서 인상 깊었던 시간은 코랴크(Koryak) 원주민들과의 만남이었다. 아시아인의 외모를 한 코랴크족은 캄차카 북부지역을 오랫동안 점유하며 살았다.

 

이들은 주로 순록 사냥과 어업을 하며 살았고, 샤머니즘 전통의 종교와 신화, 그리고 예술과 무용 등의 풍요로운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러시아 개척자와 정착민들이 들어오면서 이 지역의 원주민이었던 코랴크족은 소수인종으로 전락해 갔다.

 

러시아인들의 착취와 학대, 그들이 가져온 질병과 맞서 싸우는 가운데 코랴크인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었고, 현재 남아 있는 인구는 8000여명 정도다. 이들의 거주지역이 러시아에 편입되기 시작한 17세기 후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수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진행된 구소련의 핵실험 역시 코랴크인들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대기에 퍼진 방사능이 야생동물과 어류에 축적됨으로써 이들의 주식원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코랴크인들의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로 인해 코랴크인들의 백혈병·암·기관지염 등의 발병확률은 평균적인 러시아인들보다 몇 배나 높아졌다.

 

자치지구 내에서 거주하는 코랴크인 숫자도 계속해서 줄고 있으며, 무엇보다 고유어 사용자들이 급속도로 줄고 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90% 이상의 코랴크인들이 모국어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제 이 숫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전히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고수하는 코랴크인들이 적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 러시아 문화 속으로 편입해 들어갔다.

 

그러나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반드시 혈통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타샤'라는 작은 소녀가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이 소녀에게서 코랴크족의 외모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열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이 소녀는 코랴크 전통무용의 훌륭한 계승자였다.

 

타샤와 비슷한 또래의 '볼리나'가 보여준 전통무용도 관객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훗날 타샤와 볼리나는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문화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멋진 춤을 선보인 볼리나는 치마를 두 손으로 들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코랴크와 러시아 전통 공연을 선물로 받은 피스&그린보트 참석자들은 국악공연과 종이접기 놀이로 보답했다.

 

국악을 듣던 코랴크 공연단은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더니, 급기야는 자신들의 북을 들고는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기를 꺼내 공연장면을 열심히 촬영하는 이도 보였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인 것 같았다. 그 말을 이처럼 실감한 날도 없었으니.

 

 

 

태그:#피스그린보트, #캄차카, #코랴크,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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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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