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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울린다.

 

"어이 동생, 오빠다. 너는 오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남편하고 결혼하기 오래 전부터 알던 내 남자친구 민수(가명)다.

 

나는 17살에 중학교만 졸업을 하고 봉제공장에 취직을 했고 공장을 몇 년 다니다가 야학을 다녔다. 야학을 다니던 열아홉 살 어느 무렵 민수라는 남자친구를 만났고 우린 늘 붙어 다녔다.

 

키도 작고 귀여운 그 아이는 나와 나이가 같았는데 마음이 참 따뜻했고 성격도 온순했다. 오히려 내가 더 남자같이 행동을 하곤 했었다.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선물을 사오고 휴일이면 늘 함께 밥을 먹었다. 바다엘 갔고 야학 앞에 있던 빵집에서 마주보고 많이 웃었다. 민수는 그렇게 오랫동안 내 곁에서 나를 지켜준 친구였다.

 

시골에 홀로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서울에서 머나먼 진도까지 야학친구들과 함께 달려와 주었고, 내가 아프면 어김없이 약을 사들고 달려오기도 했으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라도 달려와 주었던 소중한 친구였다.

 

주위에선 내가 민수와 결혼할 것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민수는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민수는 모든 걸 행동으로 보여줬고 무심한 나는 그저 그 사랑과 배려를 받기만하는 이기주의자였다.

 

오랜 세월을 가족처럼 보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민수가 친구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6년이 흐르고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했고 나는 잔인하게도 민수에게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을 했다. 민수는 많이 씁쓸해 했고 쓴웃음을 지으며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그 이후로도 민수는 변치 않고 여전히 나를 따뜻하게 대해줬고 나 역시도 소중한 우정을 지켜왔다. 하지만 지금 남편에게 민수의 존재를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신경이 쓰였고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우정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다행히 남편은 그 남자친구가 너무 안됐다며 위로를 해주고 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남편은 참 멋진 남자였다.

 

나는 남편의 허락을 받고 민수와 저녁 내내 술을 마시며 그동안 너무나 고마웠고 미안하다며 말을 했고 민수는 그런 나에게 괜찮다며 잘살라고 해주었다. 진심으로 고맙고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 이듬해, 나는 지금 남편과 결혼을 했고 남편에게 민수를 소개시켜 줬다. 우린 함께 술을 마셨고 노래방도 가곤 했다. 민수는 월급을 타면 남편과 나를 불러 저녁을 사주었고 우리도 월급을 타는 날이면 민수를 불러 저녁을 함께 먹곤 했다. 민수는 남편을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고 남편도 민수의 이름을 부르며 친형제같이 지냈다.

 

그러던 중에 민수에게 다른 여자 친구가 생겼다. 민수는 그녀를 우리에게 인사를 시켜줬고 나의 존재를 그녀에게 알려주니 그녀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민수가 그녀와 결혼하던 날, 남편은 내게 민수의 결혼식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결혼식장에 가서 잘살라고 축하를 해주었다.

 

우린 그 후로도 부부동반으로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함께 놀러가곤 했다. 그러다가 민수네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지금도 전화통화만 하고 있다. 내가 민수를 만난 지 어느덧 20여년이 다 되어간다.

 

남자라는 이유로 민수와의 추억을 버리기 싫었고 민수와 영원한 우정을 지켜가고 싶었던 내 바람대로 나는 지금도 민수와의 우정을 지켜가고 있다. 그 사이 나는 아이가 둘이 생겼고, 민수는 벌써 아이가 셋의 아빠가 되었다.

 

사는 게 서로 바쁘다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전화로라도 우정을 지켜갈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남들은 어떻게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우정이 가능하냐고 내게 묻는다. 불가능할 이유는 또 뭘까. 나는 민수와 손도 잡아보지 않았고 뽀뽀도 한번 안 해 본 사이라 가능할까?

 

아무튼 나는 앞으로도 민수와의 우정을 계속 지켜 나갈 것이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내 남자친구라고 소개를 할 것이다. 민수는 내가 막걸리가게를 한다는 걸 알고 가족들과 함께 오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민수와 막걸리 한 사발에 우정을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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