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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놀랜다는 소리에 내가 더 놀래다
▲ "거기 밟지마 호박이 놀래" 호박이 놀랜다는 소리에 내가 더 놀래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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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들어가지마. 호박들이 놀라서 호박 떨어져."
"무슨 호박이 놀라. 놀라긴"
"놀란다니깐, 호박이 어찌나 예민한지 사람들이 그옆을 지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아주 어린 것은 크지도 못하고 그대로 떨어지고 말아."

어찌나 기가막히던지. 한편으로는 '진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호박이 예민해서 놀란다는 소리는 생전 처음 들어본다.

여기 저기 영글어 달린 호박들이 그림 그릴만한 소재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런 호박밭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옆도 뒤도 둘러 볼 사이없이 호박 이파리사이를 헤치고 호박밭으로 들어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정신없이 몇 장을 찍고 있으려니 뒤에서 남편이 호박이 놀란다는 소리에 내가 더 놀라고 웃음이 나왔다.

노란 호박꽃과 초록의 이파리의 모습
▲ 호박밭 노란 호박꽃과 초록의 이파리의 모습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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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그러는 소리에 호박밭에서 나왔다. 남편은 자기가 막대기로 헤쳐 줄테니깐 그때 사진을 찍으란다. 남편의 말대로 남편이 "자 찍어"하면 거기를 찍었다.그러다 호박을 안 딸거냐고 물으니깐 호박도 본인이 딴다면서 나한테는 저만치 가 있으라고 한다. 난 저만치에서 다른 호박을 찾았다.

늙은호박
▲ 호박 잎사이에 살포시 숨어있는 늙은 호박 늙은호박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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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날 약간 덜핀 매력만점 호박꽃
▲ 약간 덜핀 호박꽃 흐린날 약간 덜핀 매력만점 호박꽃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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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은 태풍이 북상한다는 소식과 함께  비가 오락가락 하는 흐린날 씨이다. 어느새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을 본 것이다. 지난 여름 그렇게 비가 많이 내렸건만 그래도 제 할일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그 옆에는 날이 흐려서인가 반쯤 필락말락하는 호박꽃이 매력적으로 서있었다. 난 남편에게 "이 늙은 호박은 언제 딸거야?"하고 물었다. "아직은 좀 더 있어야지 돼"한다. 그 주변을 돌면서 예민한 호박을 조심스럽게 찍었다. 남편은 호박을 따면서도 나를 주시하고 있는듯했다. 난 그런 남편을 안심스키려고 "호박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니깐 안심하고 호박이나 따셔" 했다.

남편이 따온 아롱이 다롱이 호박들의 모습
▲ 주말농장에서 따온 호박들 남편이 따온 아롱이 다롱이 호박들의 모습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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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다 했다면서 비가 내릴 것같으니깐 얼른 집에 가잔다. 단호박과 반찬으로 해 먹을 호박들을 땄다.호박들의 예민한 성격을 남편이 잘 알아서인가 동글 동글 아주 예쁘게 잘 영글었다. 남편에게 "호박이 예쁘게 잘 익었네"라고 하니, "왠지 알아. 식물들은 주인의 발자국을 알고있거든. 그러니깐 이렇게 잘 영글었지"한다.

남편은 주말농장의 채소들에게 아주 푹 빠져 있다.주말만 되면 다른 일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주말농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내가 다음 주부터 성당에 같이 가자고 해도 자신은 주말농장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 당분간 갈 수가 없단다. 그러니 그곳의 채소들도 제 주인을 알아 볼 수밖에. 그나 저나 이젠 저 예민한 호박들에게 미안해서 어떻게 먹지.


태그:#호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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