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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반에 널어 놓은 빨간고추. 이곳에 널어 놓아도 태양초가 잘될 줄 알았지만...
 채반에 널어 놓은 빨간고추. 이곳에 널어 놓아도 태양초가 잘될 줄 알았지만...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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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족히 한 근은 되겠다. 그런데 여기에 널어놓으면 다 썩어. 이것 봐라. 하나 둘씩 썩어 가는 거.  실 넣은 바늘로 고추 꼭대기에 구멍을 내서 하나 하나씩 매달아. 그럼 며칠이면 잘 마른다. 햇볕도 보고 바람도 맞아야 잘 마르지."

친구의 말이다. 난 고추를 채반에 널어도 잘 마를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 말대로 조금씩 썩어가는 고추가 있었다. 친구가 돌아간 뒤 그가 가르쳐준 대로 실로 매달았다. 그리곤 베란다 창문 밖에 널어 놓았다. 가을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베란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
 베란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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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4일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깜빡 잊고 그대로 놔두고 나갔다. 세상에, 이 일을 어쩐다. 오후부터 비가 쭉쭉 쏟아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일, 혼자 발만 동동 굴렀다. 그리곤 최대한 볼일을 빨리 끝내고 집에 도착했다. 잘 마르던 고추는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고추를 집안으로 들이고 마른 수건으로 일일이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 중엔 시원치 않은 것도 생겨났다.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긴 했지만 잘 마를지 의심스러웠다.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고 선풍기의 바람을 이용해서 꾸들꾸들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하루 이틀 놔뒀다가 시원찮으면 냉동실에 넣어넣고 김치할 때 갈아서 쓰라고 위안해 준다.

그렇지만 나도 이번엔 태양고추를 한번 만들고 싶었다. 15일 오후에는 다행히 날이 개이고 가끔씩 햇볕도 나왔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며가며 고추를 쳐다본다.

주말 농장에 열린 빨간 고추가 탐스럽다
 주말 농장에 열린 빨간 고추가 탐스럽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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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주말농장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왔다. 잘 익은 고추를 보니 남편의 정성이 느껴졌다. 해서 잘 말려서 김장할 때 쓰려고 아침 저녁으로 햇볕을 쫓아다니며 말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해준 말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기에 그 방법을 썼는데, 이놈의 건망증 때문에 그만 일이 커지고 말았다.

그래도 오후에 만져 보니 그런 대로 잘 말라가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내일 16일은 비가 더 많이 온다고 하니 걱정도 된다. 햇볕만 잘 뜨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길위에 널어 놓은 빨간 고추
 길위에 널어 놓은 빨간 고추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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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을 오가다 보면 고추 말리는 게 눈에 자주 띈다. 예전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기가 일쑤였지만 직접 말려보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새삼 알게 됐다. 더군다나 집밖에서 말리려면 하루 종일 지키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앞마당의 고추
 앞마당의 고추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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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앞마당에서 빨간 고추를 시원스럽게 널어놓고 말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풍경이 무척 예쁘다는, 단순한 생각만 했다.

아파트에서 태양초 만들기란 진짜 힘들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아파트만 힘들까? 마른 고추가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농부의 수고로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비맞은 고추가 잘 말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태그:#태양고추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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