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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고들빼기를 솎고 있다.
 텃밭에서 고들빼기를 솎고 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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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7일), 밤 10시.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어머니에게서였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면 일단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절대 전화를 안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 전화를 하는 경우란 1년에 한두 번이다.

“무슨 일 있어요?”

난 대뜸 전화를 받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나의 물음에 어머닌 ‘그냥 해봤다’ 한다. 지난주에 오지 않아 무슨 일이 있는지 전화를 했다고 한다. 별일 없다는 사실을 안 그때서야 난 몸은 어떤지, 약은 잘 먹고 있는지, 아버지 건강은 어떤지 등 이것저것을 세세히 묻는다.

“내일 오냐?”
“아뇨. 내일은 못가고 일요일에 갈게요.”

내가 시골에 가는 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토요일이다. 다음 날의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닌 토요일에 오느냐고 물은 것이다.

다음 날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시골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집에 계신다. 어머니가 집에 계시는 경우는 몸이 몹시 아플 때다. 그렇지 않으면 주로 마을 회관에서 놀다가 늦은 시간에 집에 오신다.

예전에 능숙하게 했던 일이다.
 예전에 능숙하게 했던 일이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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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왜 있느냐 물으니 ‘너희들 올 것 같아 회관에 있다 왔다’ 한다. 예전에도 그랬다. 때론 자동차 소리를 듣고 우리인 것 같아 집에 왔다며 환하게 웃으시기도 했다. 어머니 귀는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늘 자식들에게 열어놓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텃밭에서 일하고 계셔.”

텃밭에 가니 아버지가 땅을 파고 계신다. 겨울에 김장할 배추를 심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삽을 받아들고 땅을 팠다. 오랜만에 하는 삽질인지 잘 되지 않는다. 내 삽질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무신다.

삽질을 몇 번 하니 이내 등에 땀이 밴다. 어머니와 아내는 김치 담을 고들빼기를 솎는다. 예전에 마늘을 심었던 곳인데 언제부턴가 고들빼기가 나기 시작했다. 마늘을 심어놓았을 땐 드문드문 나있던 것이 마늘을 캐낸 이후엔 금세 온 밭에 번져 고들빼기 밭이 되어버렸다.

배추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어 두었다
 배추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어 두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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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감나무 밑 팔 땐 조심혀. 쐐기들이 많으니께.”
“뭔 쐐기가 있데요.”
“글씨 말이다. 한동안 안 보이던 쐐기들이 올해에 엄청 많이 생겼다. 저번에 너그 아버지도 쐐기한데 쐬어 고생했어야.”

어머니의 말을 듣고 감나무 잎을 보니 이곳저곳에 쐐기들이 붙어 있다. 그런데 쐐기들 틈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감나무 잎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녀석에게 쐐기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되나 싶으면서도 은근히 염려도 된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옮겨 줄까 하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사람의 손을 대는 자체가 청개구리에겐 위협이 될까 싶어서이다.

송충이(쐐기)가 갉아먹은 자국이 있는 감잎에 청개구리가 앉아 있다. 옆은 막 익어가는 단감.
 송충이(쐐기)가 갉아먹은 자국이 있는 감잎에 청개구리가 앉아 있다. 옆은 막 익어가는 단감.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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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기를 조심하며 흙을 파고 흙을 잘게 고른 다음 배추씨앗을 뿌렸다. 올겨울 김장할 배추다. 아버지는 배추씨를 뿌리고 어머니와 아내는 이런저런 얘길 나눈다. 그런데 고들빼기를 솎는 아내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한마디 한다.

“야야, 너 어떻게 뽑냐?”
“큰 것만 뽑는데요.”
“그러지 말고 큰 것 작은 것 다 뽑아부려라. 이거 너그 도시 사람들이 말하는 웰빙 무공해다. 농약 같은 건 한 번도 주지 않았어야. 긍게 아무거나 뽑아서 먹도 되야.”
“난 어머니가 큰 것 만 뽑으라고 한 줄 알았죠. 근데 어머니, 웰빙도 아세요?”
“알긴 멀 알것냐. 그냥 들은 풍월이지.”

그러면서 둘은 웃기 시작한다. 헌데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들어보는 어머니의 웃음소리이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웃는 횟수가 적어진다고 하더니 정말 어머니가 크게 웃는 소릴 들은 적이 꽤 오래 된 것 같았다.

“어머니 웃는 것 보니 많이 좋아지신 것 같네요.”
“그랴. 니가 엊그제 약 지어준 것 먹어서 그렁가 쪼매 거동하기가 낫다.”
“다행이네요. 운동도 조금씩 하고 그러세요.”
“그렇지 않아도 어저껜 둑길까지 두 번까지 왔다갔다 했더니 장딴지가 아파 혼났다 야. 참 너 모종 옆에 사는 할마씨 알지?”
“네. 왜요?”

“야, 그 할마씨가 나보다 나이가 적은디 치매 걸렸는디 우는 치매 걸렸어.”
“우는 치매도 있어요?”
"그려. 날마다 문밖에 나와서 자식들 욕도 하고 운다닝께.”
“자식들이랑 함께 안 사나요?”
“자식들이야 다 도시 가서 살지.”
“거 보세요. 긍게 어머니는 행복한 거예요. 자식이랑 함께 살지, 또 아직 이렇게 건강하지. 그러니까 아프다고 우는 소리 하지 마시고 웃으면서 사세요. 그래야 어머니도 좋고 자식들도 좋은 거예요. 알았죠.”
“야는? 내가 언제 우는 소리 했다고 그런다냐.”

밭에서 캐 온 고들빼기를 다든고 있다
 밭에서 캐 온 고들빼기를 다든고 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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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마주보며 피식 웃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따뜻해진다.

사실 아들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이러저런 미주알고주알 하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제일 보기 좋다. 물질적으로 이것저것 해주는 것도 괜찮지만 고부간에 웃고 떠들며 얘길 하는 모습을 보면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아마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위가 장모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난 아내에게 이렇게 한 마디 했다. 

“엄마하고 얘기 많이 해줘서 고마워.”


태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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