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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슬슬 산책길에 나서본다. 언제 느닷없이 쏟아질지 모르는 폭우에 대비해 좀 거추장스럽더라도 예비용 우산을 들고 나가는 것이 안전하다. 

 

중랑천변을 따라 걷다보면 계절따라 피고 지는 이름 모를 꽃들로 마치 꿈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건너 편 풀숲엔 누가 저렇게 많은 호박을 심어놓았는지 꽤 널따란 호박밭이 보인다.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져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서 이슬이 된다는 백로가 지난 지도 이틀이 되었다. 이제 머잖아 무성했던 녹색의 잎도 시들고 앙상한 줄기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건너 편 샛강 주변은 낚시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꽤 여러 명의 태공망들이 부동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속에 드리워진 여러 개의 낚싯대 중 하나가 뭔가에 의해 심하게 흔들린다. 때를 놓칠 새라 재빠른 손놀림으로 들어 올린 낚시 바늘에 퍼덕거리며 손바닥 만한 물고기가 딸려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태공들 뒤로는 “우리들은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어요”라고 쓰인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그  아래엔 ‘물고기 일동’이라 쓰여 있다.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게 하는 문구다. 아마도  샛강을 살리기 위해 내걸었던 슬로건인 것 같다.

 

하천을 사이에 두고 한 편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자전거 하이킹을 비롯해 산책과 여기저기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 건강을 다지는 활기찬 모습이, 건너편엔 세상의 온갖 시름을 냇물에 흘려보낸 듯 초연해 보이는 태공들의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마치 딴 세상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60, 70년대 산업화의 물결로 상류에서 흘려보낸 오폐수로 인해 제 빛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던 하천이 급기야는 심한 악취를 내뿜어 그곳을 지나려면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고 차창을 닫아야만 했는데 1990년대 말경부터 정부의 ‘하천 살리기’ 사업과 지자체의 협력이 본격화되면서 노력의 결실로 도심 속 ‘웰빙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하천, 

 

그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은 건 물고기들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엔 동해의 푸른 바다 백사장이 무색할 정도로 너른 모래밭과 물밑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에서 물고기 떼와 어우러져 물장구치며 놀던 곳이었다.

 

수영이 서툴러 배가 볼록해질 정도로 물을 먹어도 아무 탈이 없을 정도로 깨끗했던 냇물. 요즘 이곳을 거니노라면 부쩍 어릴 적 벌거숭이가 되어 뛰어놀던 추억에 젖어들곤 한다. 그때 같이 놀던 동무들도 나처럼 머리가 허연 초로의 모습이겠지~ 그리고 일찍 시집, 장가를 간  애들은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있을 테고….  

 

고층건물과 아파트로 옛 모습은 사라지고 낯설게 변했지만 어릴 적 우리들의 추억만은 고스란히 그곳에 묻혀 있다. 이처럼 어른들은 잃어버린 추억을 되찾고 아이들은 맘껏 뛰어놀며 푸른 꿈을 키우고 수많은 철새와 물고기가 새 보금자리를 틀고 인간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새 생명을 잉태한 아름답고 소중한 샛강을 다시는 병들지 않도록 우리가 잘 보존해야겠다. 


태그:#중랑천, #샛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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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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