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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암에서 다시 갑사 근처로 내려와 금잔디 고개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든다. 크고 작은 골짜기들은 그새 제 몸 안에 감춰 두었던 폭포를 꺼내 길손에게 보여준다. 경기 12 잡가의 하나인 '유산가'의 한 대목을 여기에 그대로 재현시켜 놓은 듯하다.
 
절벽상의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드리운 듯, 이골 물이 주루루룩, 저골 물이 쏼쏼,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지고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영수가 예 아니냐 - '유산가'  일부
 
누가 물을 일러 '다툼이 없다'라고 상찬했던가. 큰 폭포 소리가 끌고나가면 곧이어 더 큰 폭포 소리가 끼어들고 조금 빠른 물소리가 앞을 끌고 가면 느릿느릿한 소리가 섞어진다. 골짜기들은 제 자존심이라도 되는 듯이 자신이 가진 소리 공력을 있는 대로 쏟아 붓는다. 물소리는 다툼 속에도 화합을 보여주고 화합 속에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보여준다.
 
오늘 계룡산은 산 전체가 거대한 국악관현악단 같다. 그리고 난 폭포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음악 중 가장 뛰어난 화음을 자랑하는 '시나위'를 감상하고 있는 셈이다.
 
용문폭포를 지나자, 이윽고 신흥암이 나타난다. 신흥암은 벌써 몇 년째 공사 중이다. 경내가 몹시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곳에서 그 중 오래된 전각인 산신각으로 올라간다.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뎅그렁, 소리를 내고 있다. 심심파적이란 저런 걸 두고 이르는 말일 터.
 
산신각의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산신께선 어딜 출타하셨나. 신선과 장기 한판 두려고 흰 구름 타고 앞산 봉우리에 가셨나? 갑사 사하촌으로 막걸리 드시러 가셨나? 건너편에선 신흥암의 상징이랄 수 있는 천진보탑이 심심한 눈빛으로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천진보탑 전설은 고색창연하건만
 
천진보탑으로 가려고 산신각에서 내려와 보수공사 중인 천진보궁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간다. 천진보탑은 천진보궁 머리 위에 있는 천연 바위탑이다.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든지 400년,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구마라국에 있는 사리보탑에서 수많은 사리를 발견하고 이를 여기저기에다 분장한다. 그때 북쪽을 관장하던 비사문천왕에게도 사리를 주어 이 천연 바위 속에다 봉안해 두게 했다고 한다. 백제 구이신왕 때 아도화상이 비로소 이를 발견하고서 '천진보탑'이라 불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설화의 진위를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이 바위 사리탑은 이따금 빛을 뿜어 한밤중에도 계룡산을 환하게 밝힌다고 한다. 몇 년 전엔 한밤중에 방광을 시작하여 산불이 난 줄 알고 소방차가 출동하는 촌극을 벌이는 바람에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신흥암'이란 암자 이름은 천진보탑의 전설을 무색케 할 만큼 현대적이다.
 
잠시 천진보탑 옆에 비켜서서 앞 봉우리들을 바라보노라니 흰 구름이 봉우리를 안고 돈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계룡산 어느 자락 어느 소나무보다 아름다운 수형을 지녔다. 구름에도 이런 멋진 소나무들과 짝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일까.
 
 
신흥암을 나와 금잔디 고개를 향해 올라간다. 산기슭엔 구름이 잔뜩 끼어 시야가 어두컴컴하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돌을 밟으며 올라간다. 얼마 가지 않아 금잔디 고개 바로 아래에 이른다. 이곳엔 검정 딱따구리가 살고 있다.
 
햇빛 밝은 날, 이곳을 지날 때면 딱딱딱딱, 소리를 내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곤 했다. 쉬지 않고 구멍을 파야 하는 것이 딱따구리의 숙명이자 습성이다. 자신이 왜 구멍을 파는지 묻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깨달음일지라도 묻지 않으면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딱따구리에게도 일상이 지겨울 때가 있는지 모른다.
 
금잔디 고개를 지나 삼불봉 고개를 향해 가다 보살 한 분을 만났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다. 인사를 나누고서 어디서 오는 길이냐 물으니 아침 7시에 갑사에서 출발하여 대자암, 등운암, 관음봉 삼불봉을 거쳐 오는 길이라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갑사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예순 중반이 더 돼 보이지만 걸음걸이가 가뿐해 보인다. 근심을 여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걸음걸이다. 걸음걸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마음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아가페로 승화된 에로스
 
 
 
삼불봉 고개를 내려서자, 속칭 남매탑이라 부르는 청량사지 쌍탑이 바로 지척이다. 근처에서 '청량사'라는 명문이 있는 막새기와가 발견된 까닭에 청량사지라 부르는 공터에 선 2기의 석탑은 위로 올라가면서 부재가 생략되거나 세부 조각 수법이 정연하지 않은 등 고려 중기 탑의 조성 수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남매탑에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라 때 이곳에서 상원이라는 스님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한다. 어느 날 스님은 커다란 뼈가 목에 걸려 고생하는 호랑이를 구해준다. 얼마 후 호랑이는 아리따운 처녀를 업어다 놓고 갔다. 미물이지만 결초보은이라는 게 뭔지를 아는 녀석이다.

혼절했다 깨어난 처녀는 스님의 아내가 될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처녀의 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스님은 처녀에게 그러지 말고 남매가 되자고 제의한다. 스님, 이내 가슴속 타오르는 사랑은 어디다 묻으라고 저더러 중이 되라 하십니까. 몇 번 앙탈을 부려 보지만 처녀는 스님의 제의를 끝끝내 거부하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의남매로라도 곁에 존재하면서 스님을 바라보고 싶다는 손익 계산이 처녀를 그렇게 시켰으리라.

그렇게 해서 타오르던 처녀의 에로스는 잔잔한 아가페로 승화되고 만다. 전설은 스님과 처녀가 비구와 비구니로 지내며 수행에 정진하다가 한날한시에 입적했다고 전한다. 에로스에서 아가페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사랑에서 소유욕만 제거하면 되니 말이다. 이 설화는 일종의 경전이다. 남녀 간의 에로스를 승화시켜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바꾼다면 부처되기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설하려는 것은 아닌지.

 간절함이 없는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계단을 내려가 상원암으로 간다. 상원암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상원암 약수터에서 물을 한 모금 떠 마신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이 상원암 약수터도 이젠 조금만 가물어도 물이 바닥나버린다. 내가 70년대 중반에 이곳에 처음 왔을 적만 해도 삼불봉 근처에도 옹달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원암 경내는 조용하다. 이따금 울리는 풍경 소리가 암자의 존재를 상기시킬 뿐이다. 눈이 차츰 짙은 구름에 익어가자 암자 경내를 도는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온다. 저 아래 해우소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법당 주위를 돌고 또 돈다.

할아버지는 이 빗속에서 무엇을 빌고 계신 걸까. 자손에 대한 발복일까 아니면 극락왕생을 비는 것일까.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할아버지는 내게 부러운 사람이다. 간절하게 소원할 것이 한 가지라도 남아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간절한 것이 없다는 건 마음이 얼마나 삭막하다는 뜻인지!

남매탑을 뒤로 하고 내려간다. 비는 꾸준히 내리고 있다. 며칠 계속해서 내리더니 제풀에 지쳐서 격정을 잃어버렸나 보다. 저만치 아래에서 젊은이 네댓이 올라오고 있다. 길 찾는 눈과 격정만 있다면 비가 온다고 주저하겠는가, 눈이 온다고 서둘러 포기하겠는가.

태그:#남매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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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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