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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고기를 굽는 식탁
▲ . 한우고기를 굽는 식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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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맛이야 뭐 특별히 다를 게 있겠어? 그 맛이 그 맛이지."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도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쇠고기가 한우 고기라는 확신을 갖고 먹을 때는 그 맛까지 달라진다. 요즘 우리들이 사 먹는 음식 중 우리 땅에서 우리가 생산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이 세계화된 지금의 현실에서 굳이 우리 것을 따지는 것이 어쩌면 고리타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 쇠고기뿐일까, 과일은 말할 것도 없고 야채와 각종 나물들, 그리고 우리 전통음식인 김치까지 외국산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음식을 가려먹는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오랜 진통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다시 수입 문이 열리고 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것도 솔직한 현실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 쇠고기를 100% 안심하고 먹기 위해 전북 정읍시 산외면을 찾은 것은 하루 종일 가을비가 내린 지난 4일이었다.

부슬비를 맞으며 김제에 있는 모악산 등산을 마친 일행들은 제법 굵어진 빗속을 뚫고 한우쇠고기로 유명한 정읍시 산외면으로 달렸다. 그런데 막상 산외면에 도착하고 보니 이곳 분위기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낮은 산자락 아래로 논밭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여느 시골과 똑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안쪽으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늘어선 간판들이 대부분 붉은 색조를 띤 한우쇠고기 관련 가게와 음식점들이었다. 그것도 한두 집이 아니었다. 쭉 늘어선 작은 건물들이 온통 붉은 간판을 단 집들이었다.

우선 도로를 따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마을은 크지 않았다. 1km쯤 될까. 그런데 그 거리를 가득 메운 것은 거의 대부분 한우쇠고기를 파는 가게들과 음식점들이었다. 우선 입구의 주차하기 좋은 집을 찾아 들었다.

고깃간 풍경
▲ . 고깃간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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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쇠고기 가격
▲ . 한우 쇠고기 가격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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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놀라웠다. 어떻게 이 작은 시골마을에 이렇게 많은 쇠고기 판매점과 음식점들이 생길 수 있었을까? 내 평생에 처음 찾은 마을이지만 주변의 다른 지역이나 여건으로 보면 면 소재지인 이 마을은 예전 같았으면 작은 국밥집이나 한 곳 있었을 것 같은 작고 한적한 마을이었다.

우선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주인인 듯한 여성이 나와 맞으며 쇠고기는 사왔느냐고 묻는다. 음식점에서 쇠고기를 팔지 않느냐고 물으니 음식점에선 손님들이 사가지고 들어온 고기를 조리만 해준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정육점으로 들어갔다. 정육점 안은 온통 시뻘건 쇠고기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언뜻 보면 서울의 여느 정육점들과 비슷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다른 곳의 정육점들은 돼지고기 등 다른 고기들도 팔고 있지만 이곳의 정육점은 오직 쇠고기와 사골 등 한우 관련 고기와 부속물만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고기를 고르기로 했다.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니 2등급 등심이 600g에 18000원이다. 많은 걸 고를 필요가 없었다. 일행이 다섯 명이니 1200g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1200g이면 일반 음식점에서라면 적어도 6인분~8인분은 될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우리 일행들의 고기 실력은 대체로 평균 이하여서 별로 많이 먹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사가지고 들어간 쇠고기는 그대로 접시에 담겨 바로 식탁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각종 야채와 반찬, 그리고 고기를 구울 수 있도록 참숯불이 피워졌다.

"우선 한 잔 하지."
술잔이 채워지자 성질 급한 일행이 술잔을 집어 든다.
"아니야, 잠깐만 참아, 이 맛있는 쇠고기를 한 점 맛본 다음에 마시자고."
다른 일행이 말린다. 우선 이 한우고기 맛을 본 다음에 마시자는 것이었다.

모두들 이곳의 한우고기는 처음 먹어보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기대도 큰 모양이다. 숯불에 올린 쇠고기는 금방 익었다. 모두들 한 점씩 집어 든다. 상추와 들깻잎에 싸서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쇠고기만 집어 들어 참기름을 찍어 먹는 사람도 있었다.

"음, 이거 부드럽고 맛이 그만인데."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입에서 살살 녹는 것 같은데."
너도나도 맛있다고 한마디씩 감탄사를 터뜨린다. 괜한 말이 아니라 서울에서 자주 먹었던 쇠고기 맛과는 분명히 느낌이 달랐다.

음식점 풍경
▲ . 음식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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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한잔 하지, 일행들
▲ . 자, 한잔 하지,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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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평소 생선을 좋아하여 쇠고기를 즐겨먹지 않던 일행 한 명도 이날은 예외가 아니었다. 다섯 명이 맛있게 먹어대니 고기를 구워주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덩달아 바빠진다. 소주병도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오늘은 웬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느냐고 내가 말렸지만 막무가내다. 이렇게 맛있는 우리 한우고기가 있는데 소주 몇 잔 더 마시는 것이 대수냐는 것이었다. 마치 그동안 쇠고기를 전혀 맛보지 못한 사람들 같았다.

"어, 배부르다. 술기운도 오르고."
그렇게 쇠고기 1200g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뒤이어 된장찌개와 함께 나온 밥은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래도 고기를 많이 먹어 모두들 포만감에 만족한 표정들이다.

"여기 가끔 찾아와서 이렇게 먹어도 되겠는 걸, 맛도 좋고, 값도 아주 싸고."
계산을 마치고 나온 일행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일행들이 맛있게 먹은 그 쇠고기 맛 중에는 분명히 우리 한우고기라는 믿음이 더해준 느낌과 신뢰의 맛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고기 몇 근 사가지고 가야겠는 걸,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혼자만 맛있는 고기 먹고 왔다고 혼나지 않으려면."
일행들은 다시 고깃간으로 가서 몇 근씩의 쇠고기를 샀다. 집으로 가지고 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은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소박한 사랑이었다.

쇠고기를 사며 주인에게 물으니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었다. 본래 농사를 짓다가 몇 년 전부터 소를 직접 도축하여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이 이렇게 된 것은 주민들이 면소재지에 있는 정육점에서 한두 근의 쇠고기를 사다가 옆 가게에 가서 그 고기를 구워 술 한 잔 하던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렇게 소박한 인심으로 시작된 것이 입소문을 탔고 주변 지역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너도 나도 정육점과 고기를 구워주는 식당을 개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마을의 도로변에 위치한 한우만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와 식당이 3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 날은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점심시간도 훨씬 지난 시간이어서 다른 날에 비해 매우 한산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의 영업형태는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3가지의 특징이 있었다.

첫째, 고기는 당연히 믿을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생산한 싱싱한 한우만을 취급한다. 둘째, 가격이 시중가격보다 훨씬 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쇠고기를 파는 정육점과 그 쇠고기를 요리해주는 식당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에 고기를 얼마나 파느냐고 물으니 이 집은 이곳에서도 가장 많이 파는 가게 중의 하나라고 하면서 하루 평균 한우 두 마리씩을 판다고 했다. 주인은 우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에도 전화로 주문 받아 택배로 전국의 여러 지방에 보낼 쇠고기를 포장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값도 싸고 고기 맛도 참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있더구먼."
"손님들에게 친절하기까지 하면 금상첨화겠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일행들이 나눈 말이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정육점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주인이 손님들이 바라는 만큼의 일처리와 친절이 부족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차창으로 바라본 비 쏟아지는 마을풍경
▲ . 차창으로 바라본 비 쏟아지는 마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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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이 본래 농사를 짓거나 축산업을 하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면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님들에 대한 친절과 일처리가 하루아침에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몰려드는 식도락가들이 하루에 이곳 주민수보다 훨씬 많은 몇 천명씩이나 찾는 곳이고 보면 서비스 문제도 결코 소홀히 넘길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쌓은 명성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절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우마을, #산외면, #정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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