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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시’는 괴로워...시의 비만에 대해
 
 하늘은 점점 푸르고 말이 살 찌는 소리가 들리는 천고마비의 계절, 몸의 살을 괴로워 하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와는 달리 영혼의 살이 쪄가는 소리는 괴롭지 않을 터다. 그러나 이 풍성한 가을에는, 청아한 댓잎 소리의 영혼이 맑은 시가 아무래도 읽기 좋지 않을까.

 

  사람의 세계나 시의 세계는 조건이 비슷비슷한 것 같다.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같이 조깅과 등산으로 군살을 빼듯이, 시인 또한 한편의 좋은 시를 완성하려고 살을 말리는 노력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시인 ‘퓨쉬킨’는 ‘황금분할법’에 의해 시를 썼다고 한다. 시는 대개 감성의 산물로 이해하지만, 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파지를 내며 자신이 가진 언어의 비만의 살을 빼야하는, 치열한 퇴고를 반복한다. 시의 구조가 단단해도 너무 살을 작게 입히면 그만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너무 살을 많이 입히면 시의 비만이 되고 만다. 

 

시와 상호연결에서의 공의 매혹   

 

 문학 작품에서 장그리니에의 <섬>의 '공의 매혹'은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고. 일반인이 생각하는 공의 개념과 시 속에 나타나는 공의 형상화와 불교에서 말하는 공의 개념은, 상호의존, 상호연결된 체계라 하겠다.

 

 2001년 1월초, 북인도 보드가야 티베트 사원 맨 꼭대기 층 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는 방에서, 우리나라 유명한 모(某) 철학자 외 대동한 몇몇이 달라이 라마와 대견했다. 그 자리에서 이 철학자가 "당신의 일상의 깨달음을 이야기해 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했을 때, 달라이 라마는 "존재의 무상함과 공의 진리는 매우 강력하게 깨닫고 있지요. 매우 유용하게 쓰이기도 하구요. 특히 공의 개념에 대해서는요"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때 함께 동행한 김용옥 선생도 작은 노트를 꺼내 받아 적기 시작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인 철학자에게 다시 말했다.

 

"니기르주나에 따르면 공이란 상호의존 또는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니기르주나는 2세기 경의 인도인 스승으로, 그의 가르침은 티베트 불교의 토대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의 말은 이어졌다.

 

"공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가득하지요. 공의 진리를 깨닫는 것, 공에 대한 앎을 터득하는 것...나는 내 자신이 공에 대한 약간의 지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공은 상호 의존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넓혀줍니다. 전체적인 시각을 갖는데 그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

 

달라이 라마는 이어서 찻잔에 담긴 '물'에 은유해 우리 생활 속에 있는 일반적인 진리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눈으로 보여주듯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물을 왜곡없이 바라보기 위해 과학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는, 우리 일상의 진리를 흔히 마시는 '물'로, 그 어려운 공의 깨달음을 너무나 쉽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바위가 바위를 받치고 있다.
넘어질 것 같은 바위가
넘어질 것 같은 바위를 받쳐서
바위는 넘어지지 않고 있다.
넘어질 것 같은 바위와
넘어질 것 같은 바위 사이에 틈이 있다.
틈 사이에 하늘이 보인다.
틈으로 보는 하늘은 좁지만
좁아서 더 들여다보고 싶다.
넘어질 것 같은 사람이
넘어질 것 같은 사람을 받치고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넘어질 것 같은 사람과
넘어질 것 같은 사람 사이에 좁은 틈이 있다
틈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걸어가고 있다
<틈>-‘동길산’

 

# 틈과 틈 사이...삶의 여울을 흐른다

 

 생활 속에서 우리는 ' 틈이 없어' 말을 자주 한다. 그 '틈'은 또 다른 '틈'으로 쓰이기도 한다. 동길산의 <틈>의 풍경은 틈과 틈 사이에 형성된 空의 풍경. 절묘하게 바위가 바위를 받치고 있는 풍경의 틈을 형상화하고 있다.

 

 언뜻 언뜻  바위 틈으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틈으로 보는 하늘은 좁지만 좁아서 더 들여다보고 싶다.’ ‘넘어질 것 같은 사람과 넘어 질 것 같은 사람 사이에 좁은 틈이 있다.’ ‘그 틈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램프처럼 온화한 골목길이 이어지고, 그 아슴한 빛은 내시경처럼 삶의 내용을 들여다 보게 한다. 

 

 내장이 다 드러난 투명 전화기처럼. 잔잔한 시의 어조는 한없이 온유하다. 모든 사물의 벽이 사라지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만다. 우리의 삶의 엄명성에도 불구하고, 이 가을날의 쓸쓸한 낙엽이 지는 가로등이 졸고 있는 골목길의 풍경에서, 우리는 '가득히 비어 있는' 공의 매혹에 빠져들기도 한다.

 

 현대인의 삶은 ‘틈’이 없고, 그 틈이 그리운 틈이 되어 한없이 멀어지는 틈이 되고 만다. 틈이 없는 삶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끊임없이, 틈을 메우면서 살아간다. 또 '틈'은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삶을 변화하게 한다. 어떤 규정될 수 없는 가치관처럼. 

 

내 오른쪽 복숭뼈 속에는
동글동글한 물이 출렁거리는데
밤마다 무릎을 풀며
물 흘러들고 나가는 그 소리 듣는다
한 생을 관통하며 흘러내리는 물
가고자 하는 가파른 곳에 나보다 먼저 올라가는
복숭뼈 속의 물
딱딱하게 응고되어 졸아들지 않는
말랑말랑한 그 물소리 만져본다
언젠가 가뭇없이 흩날리어 가버리는 날
끝끝내 내 몸 속에 남아
내 영혼의 집을 물고 있을
<복숭아 뼈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 듣는다> -'김문수'

 

# 몸 속의 풍경, 삶 속의 공의 매혹

 

  동길산 시인에 나오는 공이 바깥 세계와 상호 연결된 공이라면, 김문수 시인이 말하는 공은 몸속에 품은 내면 속의 풍경이다. 여기에서 '복숭아 뼈'는 ‘내 영혼의 집’이 된다. 시인은 날마다,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복숭아 뼈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밤마다 무릎을 풀며 물 흘러들고 나가는 소리’는 몸 속의 절 한채를 상정하고, '복숭아 뼈'는 몸 속 산문(山門) 풍경의 역할을 한다.


 누구나 몸속에 절 한 채를 품고 살지만, 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틈이 없는 삶의 여울 탓이며, 시인은 ‘복숭아 뼈’를 만지면서,  ‘복숭아 뼈 속의 물/ 딱딱하게 응고되어 졸아들지 않는 말랑말랑한 그 물소리를 만져본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우리 몸속의 풍경이든, 바깥 세계의 풍경이든 시는 현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형상화하고, 이 형상화의 세계는 또 우리 삶의 풍경으로 상호연결된다.

 

몸 속에 품은 목탁과 같은 복숭아 뼈에 고인 아픔과 고뇌 그리고 슬픔 따위의 물소리들이 어디론가 졸졸졸 흐르지만, 그 흐르는 물이 어딘가 닿고자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한 생을 관통하여 흘러내리는’ 시의 소리이기에, 이 가을날 읽는 이의 가슴에 공명을 울린다.


태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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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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