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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혜실의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
ⓒ 한길사
흥미로운 글이 눈에 띈다. '컴퓨터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지은이는 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출발점은 이렇다.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동작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그 인물의 동작이 화면에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 문자에서 영상으로 컨버팅해 주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특히 방송 시뮬레이션 작업에 유용하다고.

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좀 더 발전시키면 일반인들이 자신의 창작 글쓰기를 곧바로 영상물로 바꿀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문자화하는 작업에서 다시 자신이 쓴 문자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 210∼211쪽)

무엇보다 이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시상(詩想)이 시화(詩化) 혹은 문자화되는 과정을, 역으로 문자화된 것을 시상으로 돌려놓는다는 점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애초 시인의 시상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꽤 생생한 시적 장면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시 컴퓨터가 시를 쓸 수 있을까? 지은이의 대답은 "그 과정이 인간의 창작 과정과 같다고는 할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꽤 쓸 만한 시를 창작할 수 있다"는 것. 다음은 컴퓨터가 지은 시(원문은 러시아어로 되어 있던 것)라 한다.

밤은 검은 고양이보다도 검고
달이 어슴푸레할 때
이상한 환희가 빛을 찾아서
지친 나래를 물가에 부딪친다.


'댓글'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댓글(댓글의 특징으로 즉흥성과 폭발성, 폭력성과 사생활 침해성, 놀이성 등을 들고 있다)은 이제 글의 일부다. 오히려 글을 보완하고 글의 생명을 연장시키며 완성시켜 나가는 기능을 한다.

댓글은 하나의 사안을 완성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즉 그 글의 완성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기사문은 이제 수많은 누리꾼들의 참여에 의해 새로운 담론으로 탄생하면서 연속성을 부여받는 것이다. (책 45쪽)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야기하기'다. 현재 진행되는 이야기, 상호 작용하는 이야기다. 디지털 매체의 양방향성은 이야기의 상호작용성을 증대시켜 다른 이야기 방식(드라마나 전시 방식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역할놀이로서의 스토리텔링'을 바라보는 관점은 신선하다. 과거 서사시는 축제였고 놀이였다. 시가 읽기가 되면서 놀이적 요소가 차단되기는 하였지만 특히 연극은 여전히 놀이다. '연극'이 '놀이'이고 '연극공연'이 '놀이하기'라고 할 때 '연극'과 '연극공연'의 관계는,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의 관계에 쉽사리 유추된다.

이야기는 활자 매체에 옮겨진 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과 소통, 즉 놀이로서의 상호작용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다시 직접성을 회복하며 이야기성 속에 놀이의 요소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책 164쪽)

덧붙여 지은이는 게임의 놀이성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역할놀이인 TRPG 게임을 디지털 매체에 옮겨놓은 것이 RPG 게임(게이머가 주인공이 되어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게임)이라고 할 때 컴퓨터 게임은 놀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게임의 매력은? "반복과 변조의 구조에 구체적이고 특수한 인물·공간·플롯을 씌우는 것" 이것이 '게임의 스토리텔링'이라는 것.

"이제 문학작품은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텍스트를 중심으로 나누는 현재진행형 스토리텔링이 되어버렸다"고 주장하는 최혜실의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는 이 첨단의 시대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이야기'와 '이야기하기'에 주목하는 책이다.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 - 최혜실의 디지털문화노트

최혜실 지음, 한길사(2007)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최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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