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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어느 신문에 기고하신 글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꾸준히 사회 활동을 하셨던 분이라 그것은 저에게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글을 통해 한권의 책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책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습니다. 제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 분이 맞다면, 그 책은 저에게 틀림없는 선택이 될 것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또 잊고 사는 소외된 삶의 현장 곳곳이 이 책 안에 생생하게 녹아 있습니다. 하루 종일 고물을 주워 몇 천 원씩 번 돈으로 생계를 꾸리는 노인들,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선원들, 장돌뱅이들, 퀵서비스 기사들, 덤프트럭 운전사들, 일용직 노동자들, 조선족, 몽골인, 소록도 간호조무사, 그리고 1평 남짓한 감옥 같은 방에서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작가는 월간 '인권'지에 그동안 기고했던 소중한 흔적을 모아 책으로 펴냈습니다.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전국 방방곳곳은 물론 외국 땅을 밟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작가의 노고에 진심을 담아 존경의 뜻을 보냅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제가 그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아니 신경 쓰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들에 대한 더없이 훌륭한 간접경험을 저에게 선사해줍니다.

제가 먹고 싶은 것 제때 못 먹는다고 투덜거릴 때 누군가의 밥상엔 일 년 내내 반찬이라곤 김치밖에 없었고, 제가 친구들을 술자리로 불러 모아 이성문제가 잘 안 풀린다며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굴었을 때 한 편에서는 '생활'이 아닌 '생존'을 지키기 위하여,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원초적인 것들을 얻기 위하여 절박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사 마신 커피값 4천원이 어느 할머니에게는 손이 덜덜 떨리는 일주일치 반찬값이었고, 제가 어디어디가 못났다며 외모 탓이나 하고 있을 때 소록도의 한 병원에서는 손가락이 다 닳아 없어져 숟가락도 제대로 들 수 없는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고통의 크기를 일률적으로 줄 세우거나 서열화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또한 누군가의 고통이 다른 누구보다 작다고 하여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은 모두 아프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와 동시에 지금 제가 일상에서 겪는 그 고통이라는 것들이 그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먼지와 같다는 것을, 또 제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을 응시하면서 살자고 다짐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곳을 응시하는 일은 때때로 괴로움을 안겨줍니다. 마음이 견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는 몇 번이나 책장을 열었다 닫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눈을 질끈 감아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럴수록 보다 또렷하게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합니다. 눈을 감는 순간 저는 비겁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를 더욱 괴롭게 하는 건 그럼에도 저는 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가끔씩 가볍고 사치스러웠던 지난날의 제 고민들이, 그리고 술자리에서의 무의미한 농담들이 한없이 죄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지나친 책임의식의 발로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과 이렇게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저의 삶을 살 것입니다.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제 마음 한 쪽에는 그들의 자리를 마련해놓고, 그 공간은 영원히 그들을 위해 비워놓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하는 것만이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저의 도리이자 책임이요, 또 의무입니다.

지난 학기, 저는 도서관을 드나들며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에게 얼마동안 인사를 건넨 적이 있습니다. 비록 ‘안녕하세요’ 한마디뿐이었지만, 그것이 지금의 제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또 그들에게 분명 작은 힘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생활이 바빠졌다는 핑계를 대면서 저는 그것을 멈추었고, 결국 그렇게 학기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후회되는 일입니다.

집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밖에 되지 않는 상암에서 얼마 전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눈물을 품고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저는 한 번도 현장을 찾아가본 적이 없습니다. 변명이야 어떻게든 몇 가지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저 신문과 인터넷만을 보면서 분노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발판 삼아 이제 다시 무언가를,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하려고 합니다. 함께 사는 세상입니다. 더불어 같이 가야하는 세상입니다. 비록 저도 그리 윤택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 손이 그들과 맞닿아 있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그저 어쩌다보니 운 좋게 그들보다 조금 더 나은 환경과 조건을 타고났을 뿐입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그들이 아파서 우는 게 아니기에, 실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우는 것이기에, 저는 그 눈물을 닦기 위해서는 마음부터 다독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 어두운 곳을 응시하는 삶, 더불어 사는 삶. 이것이 앞으로 제가 살아갈 삶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아파서 우는게 아닙니다/ 박영희/ 삶이보이는창


태그:#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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