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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클래식카메라(장식용)를 들고
아빠의 클래식카메라(장식용)를 들고 ⓒ 김민수
야생화를 좋아하시는 아빠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이 좋았다. 가끔 아빠가 칭찬을 해주시면 으쓱해져서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내 전용 카메라가 생겼다. 맨 처음에는 사진기를 끼고 살았지만 점점 카메라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학교와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카메라는 내게서 잊혀져 갔다.

어떤 일을 하든지 미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는데 사진도 역시 그런가 보다. 야생화 담는 것을 좋아하시던 아빠는 서울로 이사한 이후에도 여전히 사진작업을 하신다. 물론 야생화가 아닌 다른 것들을 찍으시지만 하루라도 카메라를 만지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힌다고 하실 정도로 카메라를 늘 지니고 다니신다.

지난 휴가 때 오랜만에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섰다. 주로 식구들을 대상으로 스냅사진을 찍었고 가끔 아빠를 따라다니며 야생화를 담기도 했다. 야생화를 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름 휴가 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아빠에게 합격점을 받은 사진은 야생화 한 점과 도라지밭을 담은 사진 한 장뿐이었다.

타래난초
타래난초 ⓒ 김진희
증조할머니 산소에 올라갔다가 무덤가에서 타래난초를 만났다. 작은 꽃이 꽈배기처럼 꼬여가면서 피어나는 모양이 재미있었다. 휴가 때 담은 사진이니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데 신기한 것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그 당시 그 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다 생각난다는 것이었다.

그냥 사진 한 장이 아니라 그 사진 속에 보이지 않는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모를 추억이 들어 있다는 것이 사진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뜨거운 햇살 아래서 타래난초를 담기 위해 눕기도 하고, 쪼그리기도 하면서 땀흘 뻘뻘 흘리셨다. 나와 동생은 대충 찍고 시원한 곳으로 가자고 졸랐지만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모자도 벗어던지고는 열심히 찍으셨다. 나는 아빠의 컴퓨터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타래난초를 본 적이 있다. 타래난초만 백 장이 넘는 것 같은데 왜 또 찍으시는 것일까?

대포항
대포항 ⓒ 김진희
여름 휴가에서 바닷가가 빠지면 재미없을 것이다. 날씨가 흐려서 바닷가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포항에 가서 새우구이와 조개구이를 먹었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였다. 제주에 살 때에는 거의 매일 보던 바다였는데 그때는 바다가 좋은지 몰랐다.

대포항 사진도 다시 꺼내보니 새우와 조개를 구워먹던 순간들, 비가 와서 차로 뛰어가던 순간들,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들 모두 생각이 난다.

도라지밭-달리는 차 안에서
도라지밭-달리는 차 안에서 ⓒ 김진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바라기밭과 도라지밭이 유난히 많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도라지밭을 담았지만 차가 빨리 달려서 초점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빠는 이 사진을 올 여름 내가 찍은 최고의 사진으로 뽑아주셨다.

수채화나 유화같은 느낌이 난다고 하셨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저속셔터로 사진을 찍으면 이와 비슷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흔들린 사진이라 그냥 휴지통에 버리려고 했는데 합격점을 받고 다시 사진을 보니 정말 사진이 달라보인다.

야생화 마니아 아빠가 합격점을 준 두 장의 사진은 이번 여름 휴가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김진희 기자는 중학생 시민기자입니다.


#야생화#마니아#사진#여름#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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