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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피용> 책 표지
ⓒ 열린 책들
푸른 나방(파피용의 뜻은 나방. 그리고 푸른 나방은 작품 속에서 태양범선의 별명)이 물어다 준 이야기는 결코 새롭지는 않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필두로 지금까지 출간된 <파피용>까지 필자의 기대를 저버린 작품은 없었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소설이라는 틀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유머와 철학 그리고 해박한 과학 지식을 맛나게 버무려 놓은 실력은 역시 베르나르다라는 탄성을 불러일으키기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전작들과는 달리 톡톡 튀는 상큼한 맛이 떨어진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파피용>의 가장 재미난 점은 성경의 창세기를 인용하여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통해 베르나르식 창세기 해설을 한번 들여다보자.

커다란 태양범선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홍수 설화에 등장하는, 그리고 노아의 방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거대한 배를 떠올리게 한다. 선택받은 14440명의 사람들과 한 쌍의 생물들을 태운 태양범선 파피용 호는 노아의 방주가 그랬듯 죄악으로 가득 차 버려질 수밖에 없는 세상을 탈출한다.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파피용호의 주민들이 원했던 유토피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구의 많은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푸른 나방 주민들은 갖가지 재앙끝에 단 4명의 자손만 남기게 된다. 그중 유일한 여성인 엘리자베트와 그녀에게 선택받은 남자 아드리앵만이 외계의 초록별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사소한 다툼 때문에 아드리앵과 헤어진 엘리자베트는 한 동굴에서 죽게 된다. 이에 아드리앵은 인공부화를 통해 갖가지 동물들을 번식시킨 경험을 살려 자신의 갈비뼈를 하나 뽑아 에야라는 여자 아이를 탄생시킨다. 똑똑하고 영리하지만 난청인 탓에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에야. 그녀에 의해 초록별의 창조사가 다시 쓰여지게 된다. 아드리앵은 아담으로, 자신은 하와로 그리고 파피용호의 창시자 이브는 야훼로.

창세기를 인용한 전체적인 줄거리와 소재를 빼고도 무언가 연상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19세기의 가장 출중한 모험 소설가 중 하나인 쥘 베른이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많은 독자들을 달로, 지구 속으로 그리고 바다 속으로 인도해 주었던 쥘 베른. 그는 자신의 소설들에 공상과학과 모험 이야기를 결합시켜 많은 독자들에게 단순한 재미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얻게 해주었다. <파피용>은 이런 쥘 베른 소설의 연장선인 듯 하다.

인류의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성경과 쥘 베른의 소설들, 그리고 그 둘을 교합시켜 놓은 듯한 베르나르의 파피용. 진부하게 느껴지는가? 물론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와 뻔하게 보이는 스토리 라인은 베르나르의 전작들에 비해 놀랄 만큼 새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나 뻔한 소재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어서 책을 놓지 못했다. 어떻게 진부한 이야기에서 이런 흡인력을 느낄 수 있었던 걸까? 푸른 나방이 물고 온 마지막 희망을 향한 인간들의 투쟁 이야기가 쥘 베른의 소설들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어서 일지도, 아니면 작가가 재해석한 창조론 이야기가 충격적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내겐 푸른 나방이 물어다 준 이야기는 결코 새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푸른 나방이 물어다준 꿈과 희망은 결코 진부할 수가 없었다.

파피용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열린책들(2008)


태그:#베르나르 베르베르, #창세기, #쥘 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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