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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에서 말라위로 넘어가는 국경의 송그웨 강 다리
ⓒ 김성호
탄자니아 음베야에서 하루를 묵은 나는 다음날 아침 서둘러 '호수의 나라' 말라위로 향했다. 숙소 바로 옆에 대중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승객이 꽉 찰 때까지 30여분 동안을 기다려야 했다. 대중버스인 달라달라를 타고 말라위 국경도시인 키엘라(Kyela)까지 가는 데 3시간 30분이나 걸려 낮 12시쯤 도착했다.

보통 2시간 거리라는데, 아래쪽에 있는 말라위 호수에서 밀려오는 짙은 안개로 미니버스 달라달라가 속도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 음베야에서 투쿠유까지 가는데도 온통 희뿌연 안개가 깔려 있었다. 영국 런던의 날씨처럼 우울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마운틴고릴라를 봤던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룽가 국립공원처럼 안개 속의 마을이다.

말라위 호수 위쪽에 위치한 고원 도시인 음베야는 경사진 언덕 위에 만들어진 도시이다. 국경도시인 키엘라까지는 고원지대에서 말라위 호수 쪽을 향해 계속 내려가는 길이다.

패션쇼 복장의 난폭 버스 여기사

어, 그런데 달라달라의 운전사가 여자이다. 확 눈에 띄는 30대 중반의 여자 운전사. 아프리카 여행 중 버스 운전사가 여자인 것은 처음이다. 운전사가 단순히 여자라서 눈에 띄는 것이 아니다. 마치 파티나 패션쇼에 참가하는 사람처럼 한껏 멋을 부리고 치장을 했다. 그 여자의 차림새.

"머리는 스트레이트파마를 해서 위로 말아올렸고, 두 손가락에는 반지를 무려 3개씩이나 끼었다. 손목에도 링 반지를 걸치고, 귀걸이는 이중귀걸이를 했다. 입술에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이마 가운데는 힌두여인들이 찍듯이 빨간 연지를 찍었다. 어깨에는 얇은 천인 숄을 걸치고, 치마도 빨갛고 노란색 등이 섞인 화려한 색상의 캉가(Kanga)를 입었다. 캉가를 2~3번 둘러서 입었는데, 무릎에서부터 각선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 야외 파티장에 가는 차림새로도 손색이 없다. 잔지바르 향신료 농장에서 보았던 립스틱나무(Lipstick Tree)의 붉은 열매가 어느새 립스틱으로 만들어져 멋쟁이 여자 운전사의 입술로 옮겨와 있다.

차림새는 멋쟁이인데, 운전 솜씨는 거친 정도가 '난폭'에 이른다. 마치 대형 트럭을 모는 거친 남자운전사를 보는 듯 하다. '내가 가니 알아서 피하라'는 식의 운전이다.

말라위 호수의 안개가 조금 걷힌다 싶으면 급속도를 냈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다. 대형 버스가 앞서가자 기어이 이를 따라잡으려 하고, 남자운전사가 모는 차량이 자신의 버스를 앞지르기라도 하면 자신을 '여자 운전사'라고 깔보는 것으로 생각해서 인지 용납을 못한다. 버스가 정차하면 금세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까르르~" 웃는 등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버스가 그렇지만, 이 달라달라도 터미널에서 출발한 지 15분밖에 되지 않아 음베야 시장에서 다시 승객을 콩나물시루처럼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일요일이라 7일장이 열린 것인지 시장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20인승의 달라달라에 거의 40명이 탔다. 원래 한 줄에 3명이 정원인데 보조의자까지 내리고 거기에 한 명씩을 더 태워 한 줄에 5명을 꽉 채운다.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서 승객이 내리면 다시 찰 때까지 20~30분씩 정차했다. 말라위 호수의 안개와 함께 이런 잦은 정차가 버스의 발목을 잡다 보니 늦을 수밖에 없다.

빗질한 한국 녹차밭, 빗질 않나 아프리카 녹차밭

▲ 말라위 카롱가에서 치팀바로 가는 농촌지역의 밭
ⓒ 김성호
국경도시 키엘라에 도착한 뒤 국경마을 송그웨까지는 걸어서 가야했다. 10분 정도의 거리. 말라위 국경인 송그웨(Songwe) 강의 다리를 건너 말라위로 들어갔다. 송그웨 강의 다리에는 송그웨 강이라는 팻말이 있고, 다리 밑으로는 많은 물이 흐르는데 흙탕물이다.

말라위 쪽 국경마을인 송그웨의 버스터미널 주변에는 닭고기와 감자튀김·콜라 등을 파는 작은 식당 겸 가게들이 있었다. 젊은 남자 2명이 한 식당에서 바비큐 식으로 닭고기를 숯불에 굽는 냄새가 코끝을 슬슬 자극한다.

닭고기 냄새에 이끌려 그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때웠다. 송그웨에서 다시 카롱가(Karonga)로 가는 봉고버스에 올랐다. 탄자니아 시간으로는 오후 1시 30분인데, 말라위 시간으로는 낮 12시 30분이다. 말라위 국경을 넘자마자 탄자니아보다 한 시간이 느렸다.

역시 15인승 버스에 30명 정도가 타서 닭장차 신세이다. 나는 배낭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주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미라 자세로 장시간 탑승 준비에 들어갔다. 아프리카 여행에서는 분실 우려 때문에 배낭을 짐칸에 싣지 못하고 항상 들고 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국경에서 카롱가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는데, 바나나뿐 아니라 쌀농사와 파란 녹차 밭이 인상적이었다. 이 지역은 원래 말라위에서도 쌀 재배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말라위 호수의 최북단 도시답게 물이 풍부해 쌀농사를 많이 짓고 특히 녹차도 대량으로 재배한다.

파란 잎을 틔운 녹차밭이 도로를 따라 달려온다. 양옆으로 온통 녹차밭이다. 전남 보성의 녹차밭과 제주도 한라산의 설록차 밭길 같은 푸른 띠가 몇㎞에 걸쳐 이어진다. 보성 녹차보다 키가 작은 것 같다. 보성이나 한라산 녹차밭은 빗질을 한 것처럼 깔끔한데, 말라위 카롱가 녹차 밭은 한 줄이되 머리를 감고 빗질은 하지 않은 수더분한 느낌이다. 중국의 항주 근처 용정 녹차밭이 그랬다. 말라위 녹차는 영국 식민지배 당시 같은 식민지였던 인도로부터 환금작물로 들여온 것.

기후가 따뜻하고 강우량이 많은 언덕배기에 차가 자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똑같은 녹차밭인데도 그 나라의 민족성이 드러난다.

우리의 녹차밭만큼 깔끔하고 단정한 곳은 없다. 보성과 한라산의 녹차밭은 정말 옛날 단옷날 단정하게 머리를 단장한 시골 아낙네를 보는 듯하다. 단오가 되면 창포물에 머리를 감은 아낙네들은 동백기름을 바른 뒤 참빗으로 가지런히 빗어 쪽머리를 튼 뒤 비녀를 꽂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머리를 가꾸는데서 우리 민족의 단정함이 드러난다.

돈을 종이에 싸서 브래지어에 숨기는 아프리카 여자의 지혜

▲ 카롱가에서 치팀바로 가는 길 옆의 목화 밭
ⓒ 김성호
내 옆에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앉았는데, 버스요금을 내는데 왼쪽 젖가슴 있는 곳으로 오른손을 쑥 집어넣더니 돈을 꺼낸다. 꼬깃꼬깃 똘똘 말은 돈을 꺼내 차장에게 건네고, 나머지 돈은 왼쪽 젖가슴에 다시 넣는다. 자세히 보니 돈을 종이에 한번 싼 다음 브래지어 안에다 넣는 것이다. 브래지어가 지갑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돈을 직접 브래지어에 넣으면 젖가슴의 땀에 젖게 되니까 종이에 싸서 넣는 것이다. 아프리카 여자들의 지혜라고 할까. 젖가슴과 브래지어를 지갑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이미 탄자니아와 말라위의 대중 버스에서도 봐온 터.

버스에는 차장이 젊은이 두 명인데, 한 명은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 주로 사람과 짐을 싣는 일을 맡아서 하고, 키가 작은 차장은 버스요금만 받는다. 역할분담이다.

카롱가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갈아타고 음주주로 달렸다. 음주주에서도 버스가 출발하기까지는 한 시간이나 차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음주주까지는 5시간 걸렸는데, 말라위 호수를 따라 달리다 보니 호수를 보는 풍경이 좋았다. 목화밭과 바오밥 나무, 물을 끌어올리는 옛날 우리 시골의 펌프를 볼 수 있었다. 내가 가려는 말라위 호수의 작은 해변 마을인 은카타베이를 가려면 음주주를 거쳐야 한다.

▲ 치팀바 근처의 말라위 호수 어촌 풍경
ⓒ 김성호
내가 지금 봉고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는 말라위 호수는 그 길이가 580㎞나 된다. 말라위는 호수를 따라 남미의 칠레처럼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나라이다. 말라위 길이가 900㎞이니까 전체 3분의 2가 호수에 접해있는 셈이다.

말라위 호수의 애초 이름은 니아사(Nyasa) 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지난 1858년 탐험한 뒤 니아사 호로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으나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나라 이름을 딴 말라위 호로 바뀌게 된다.

니아사라는 말 자체가 '니안자(Nyanja)'에서 유래된 것으로 말라위 부족인 체와족 언어로 그냥 '호수'라는 뜻이다. 우간다의 진자에서 보았던 빅토리아 호수도 당시 현지인들이 '니안자(Nyanza)'라고 불렀는데, 영어 알파벳만 다르지 같은 반투어계로 모두 '호수'라는 의미이다.

말라위는 지난 1891년 영국령 중앙아프리카라는 식민지가 되었다가 1907년 아예 이름 자체도 '호수의 나라'라는 뜻으로 니아살란드(Nyasaland)로 바뀌게 된다. 1953년에는 남로디지아(짐바브웨)와 북로디지아(잠비아)와 함께 강제로 '로디지아-니아살란드 연방'으로 편입되었으나 1964년 말라위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말라위 호는 다른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의 호수들과 마찬가지로 지층이 내려앉아 생긴 계곡에 물이 고여 생긴 호수이다. 푸른 말라위 호에서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의 동부지구대와 서부 지구대가 만난다.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고원에서부터 시작된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의 동부지구대와 서부지구대를 오가며 내려온 나의 배낭여행 코스도 이제 두 지구대가 합쳐지듯 말라위 호에서 만난다.

나는 말라위 호를 따라 수도인 릴롱궤까지 갔다가 모잠비크 중부를 지나 짐바브웨로 빠질 것이기 때문에 한 달 반 이상 계속 된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와의 동행은 이제 만남과 동시에 끝이 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 케냐 나이로비에서 서부지구대인 우간다와 르완다의 비룽가 국립공원을 거쳐, 동부지구대인 탄자니아의 마니아라 호로 빠졌다가 다시 두 지구대가 만나는 말라위 호수로 돌아온 셈이다. 동부지구대는 말라위 호를 따라 모잠비크의 인도양 델라고아만(마푸토만)으로 이어지고, 서부지구대는 르완다의 키부 호와 탄자니아의 탕가니카 호를 거쳐 말라위 호 서쪽을 지나 시레(Shire) 강과 만나 베이라 항에서 인도양으로 들어간다.

시베리아 열차 여행을 느끼게 하는 말라위 호수

▲ 치팀바 근처의 말라위 호숫가 전통가옥
ⓒ 김성호
음주주로 가는 나의 닭장 차는 찜통이지만, 넓고 파란 말라위 호수를 바라보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송그웨에서 카롱가까지의 도로 옆에 녹차 밭이 있다면, 카롱가에서 음주주까지 가는 길에는 목화밭이 즐비하다. 목화는 이미 열매가 지고, 일부 종자에만 하얀 솜털이 달려 있다. 누렇게 물든 목화밭에 한두 송이의 눈꽃이 달려 있다. 목화의 대량재배단지이다.

말라위 호수를 배경으로 서 있는 바오밥 나무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당당하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수백 년은 된 커다란 바오밥 나무가 마을 입구의 당상나무처럼 버티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바오밥 나무가 하나씩은 꼭 있는데, 천하대장군의 장승처럼 위엄이 있다.

호수 근처라서인지 펌프가 집집마다 박혀 있는데,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통해 물을 깃는 여인네들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키가 작은 어린아이들은 껑충껑충 뛰면서 펌프 손잡이를 잡고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말라위 호수를 끼고 달리는 기분은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의 바이칼 호수를 따라 달리는 느낌과 비슷하다. 풍경도 멋지다. 시베리아 열차여행에서는 5월 중순인데도 여전히 호숫가의 하얀 얼음이 파란 호수와 조화를 이루는 바이칼 호수와 그 옆으로 늘씬늘씬하게 자란 자작나무를 보게 된다면, 말라위 버스 여행은 7월의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모래가 푸른 말라위 호수와 어울리고 그 옆으로 덩치 큰 바오밥 나무가 딱 버티고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카롱가에서 은가라를 거쳐 2시간 정도 달렸을 때 치팀바(Chitimba)라는 지역에 도착했다. 치팀바 지역의 오른쪽으로 리빙스토니아(Livingstonia)로 가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리빙스토니아 15'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른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영국의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기려서 붙인 마을 이름이다.

리빙스턴은 1858년 당시 니아사 호(말라위 호)를 탐험하고 노예무역의 폐지에 기여하고 말라위에 기독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리빙스토니아는 바로 리빙스턴이 죽은 뒤 그의 선교단들이 머물던 곳. 말라위 남부에 있는 블랜타이어(Blantyre)라는 도시도 바로 리빙스턴의 고향인 영국(스코틀랜드)의 블랜타이어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 80년대 같은 말라위 경찰의 검문태도

▲ 리빙스토니아 팻말이 있는 치팀바 지역
ⓒ 김성호
말라위 경찰의 검문태도는 권위적이고 불손하기까지 하다. 치팀바에서 조금 내려오자 경찰이 차량을 검문을 하는데,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한다. 젊은이 2명을 검문소 사무실로 데려간다. 경찰이 보기에는 '범죄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겠지만, 여행객인 나의 눈에는 단지 그 젊은이들의 '인상이 나쁘다'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경찰의 근무자세도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다. 경찰의 신분증을 보여주지도 않고, 검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그냥 손짓으로 사람을 멋대로 불러낸다. 경찰의 눈에 들지 않으면 누구나 죄인시하는 태도이다. 깔끔한 옷차림에 승객들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검문을 하던 르완다 경찰의 겸손한 자세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 경찰이 길거리를 다니는 젊은이들의 가방을 멋대로 열어 젖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 인격적 모독을 가하던 80년대가 생각났다.

검문을 위해 차량이 정차하자 20여명의 어린이들이 몰려들어 차량과 승객들을 빙 둘러싼다. 그들의 둥근 쟁반 통에는 물고기가 가득 담겼다. 근처 말라위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파는 것이다. 고기를 보니 멸치같이 가느다란 고기와 붕어 종류, 잉어같이 큰 물고기들도 보였다. 호수해변의 마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거리의 행상들은 그 지역의 특산물을 팔기 때문에, 그들이 파는 물건의 종류를 보면 그 지역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참 불쾌한 검문을 받은 뒤 우리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경찰에 끌려간 두 명의 젊은이를 우리는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경찰이 두 명의 젊은이를 검문소에 잡아둔 뒤 버스의 출발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만약 저 젊은이들이 죄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프리카에서는 대중버스도 그리 자주 있는 것이 아닌데….

배낭여행객에 불과한 내가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에 대해 느끼는 동정은 사실은 우리의 과거가 말라위의 현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의 젊음을 보낸 대한민국의 70, 80년대도 저랬다. 경찰이 "인상이 나빠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거나 "데모할 우려가 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젊은이들을 연행하던 때가 엊그제이다.

우리나라나 아프리카나 어디나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경찰이나 군은 존재 그 자체로 폭력일 뿐이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경찰에 끌려가면서도 아무런 저항이나 항의 표시도 못하는 아프리카의 젊은이와 나는 결코 남이 아니었다. 20여년 전 우리의 모습이 바로 아프리카의 두 젊은이였다. 인권을 경시하는 경찰의 태도는 여행하면서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민주화되기 이전의 우리의 어두웠던 젊은 과거를 되살리기 때문이다.

"과속은 살인" 끔찍한 경고 팻말

▲ 치팀바 근처의 말라위 호숫가 어촌의 전통가옥과 그 가족
ⓒ 김성호
치팀바에서 치웨타(Chiweta)까지 내려오는 길은 말라위 호수와 100m 달리기 라인의 1·2번째 줄을 달리듯 가까이 달린다. 도로와 말라위 호수가 2~3m 거리를 두고 평행선을 이루고 있었다.

호수 주변에는 흙으로 짓고 갈대로 지붕을 이은 전통가옥들이 있어 차를 타고 가면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맑고 푸른 호수뿐 아니라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느낄 수 있는 낭만의 도로이다. 망고나무와 무화과나무가 무성한 전형적인 어촌마을의 풍경이랄까. 15분 정도 말라위 호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도로는 치웨타를 지나며 내륙으로 빠지면서 호수와 멀어졌다.

차는 내륙으로 빠지면서 갑자기 산맥을 넘어가는 험함 길로 접어들었다. 웰러 산맥(Mount Waller, 또는 촘베 산맥 Mount Chombe)의 남쪽 끝자락을 올라가고 있는 것. 이때부터 버스는 대관령을 넘듯이 높은 산을 느린 속도로 산허리를 돌면서 넘어갔다. 당연히 산길 도로 옆에 과속 경고판이 서 있었다.

"과속은 스릴감이 있지만, 살인을 하기도 한다(Speed thrills but kills too)."

아주 직설적이고 끔찍한 내용의 안전운전 홍보 팻말이다. 그렇게 하기를 1시간. 그러나 높은 산을 넘으면서 바라보는 말라위 호수의 전망도 멋졌다. 높은 곳에서 보니 넓은 말라위 호수의 전경이 한눈에 쏙 들어왔다.

산을 겨우 넘었는데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해 어둠이 깔린다. 산 중간에 있는 시골 의 산악마을 집들도 흙집으로 허름하고 누추하기 이를 데 없다. 탄자니아나 우간다, 르완다보다도 말라위의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산을 넘어서는 말라위 호 대신 루쿠루 강(Rukuru River)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을 한참 달려 음주주(Mzuzu)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7시 30분.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칠흑 같은 밤이었다.

오늘도 탄자니아 음베야에서 송그웨 국경을 거쳐 말라위 음주주까지 오는데 꼬박 12시간을 차량을 타고 달려왔다. 별 보고 출발해 달 보고 도착하는 아프리카 여행이다.

애초 계획은 음주주에서 바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은카타베이까지 가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교통수단이 없어 하루를 음주주에서 묵어야 했다. 버스 정류장의 택시운전사가 배낭을 멘 나를 보자 "은카타베이, 은카타베이"라고 외친다. 2200말라위 콰차(MK. 20달러)를 주면 은카타베이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것.

밤길에 치안 등을 고려해 택시운전사의 제의를 거절했다. 내가 음주주에서 묵은 여행객 숙소는 플레임트리 게스트하우스였다. 쌀농사를 짓다 보니 저녁은 숙소에서 쌀밥과 닭고기로 먹었는데, 요리솜씨도 제법이고 직원들이 대단히 친절했다.

식당 옆 숙소 대기실에서는 두 명의 젊은 유럽 여자여행객이 비디오로 타이타닉 영화를 본다. 남녀 주인공이 배 앞쪽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두 손을 벌리는 유명한 '십자가 사랑' 장면이 나오자 서로 따라하다 멋쩍은듯 웃는다.

▲ 치웨타에서 음주주로 넘어가는 웰레 산의 버스안에서 찍은 말라위 호수
ⓒ 김성호

태그:#말라위, #카롱가, #음주주, #음베야, #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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