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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에서 수확한 고구마순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고구마순 ⓒ 정현순
고구마순 껍데기 벗기기
고구마순 껍데기 벗기기 ⓒ 정현순
"아니 이걸 언제 다 벗기지? 그냥 먹을 수도 없고."

지난 주말, 주말농장에서 가지고 온 고구마순이 산더미 같다. 내가 놀래는 소리에 남편은 "걱정마. 내가 도와줄게."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아 난 다짐을 받았다. 남편은 "글쎄 걱정하지 말라니깐. 내가 해준다고." 큰소리 뻥뻥 친다.

크게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의 기대를 걸어봤다. 큰 그릇을 두개 가지고 왔다. 껍데기 벗긴 고구마순과 쓰레기로 나갈 것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남편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러더니 고구마순을 하나 하나씩 벗기기 시작한다. 고구마순을 벗기는 폼이 제법 오래 버틸 것 같았다.

그러나 5분정도 지나니깐 "이게 보기보다 벗기기가 힘드네. 그냥 해먹으면 안 될까?" "그냥 해먹어도 돼지. 하지만 질겨서 맛이 없어요. 시장에 가봐. 여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고구마순 다 벗겨서 팔잖아." 그리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까? 남편이 살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난 담배 한 대 피고 들어오겠지. 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1시간이 흘러도 들어오지 않았다. 난 포기하고 혼자 앉아 고구마순을 벗겼다. 2시간 정도 흐르고 고구마순을 거의 다 벗기자 그제야 들어와서는 "어 아직도 안 끝났어?"하더니 몇 개 남은 고구마순을 벗기는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렇지. 일이 다 끝나기를 기다리다 이제야 들어오는구만.

파,마늘, 풋고추, 홍고추등을 넣고 볶는다
파,마늘, 풋고추, 홍고추등을 넣고 볶는다 ⓒ 정현순
다 볶아진 고구마순
다 볶아진 고구마순 ⓒ 정현순
껍질을 모두 벗긴 고구마순을 펄펄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삶아낸다. 그리고 물에 30분정도 담가 놓는다. 워낙 많이 가지고 와서 한번에 다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속으로 이럴 때 올케가 오면 좋을 텐데.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집도 걸어서도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작은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고 먹을 정도만 볶았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고구마순을 먼저 볶는다. 어느 정도 볶아지면 파. 마늘, 홍고추, 풋고추, 후추, 깨소금, 소금간을 해서 마저 볶아준다. 고구마순은 삶은 것이기에 잠깐 볶아주면 된다. 연하고 담백한 맛이 더운 날씨에 입맛을 돋아준다.

집에 콩나물이나 가지 무친 나물 등이 있으면 고구마순 볶은 나물을 함께 넣고, 계란프라이를 위에 얹고, 참기름이나 들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비벼먹으면 웰빙이 따로 없을 것 같다.고구마순을 볶아 저녁상을 차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나하고 올케가 마음이 통했을까? 동생과 운동하러 나왔는데 우리집에 놀러 온다는 전화가 왔다. 정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케에게 준 고구마순
올케에게 준 고구마순 ⓒ 정현순
잠시 후 동생과 올케가 도착했다. 밥상에 고구마순이 놓여 있는 것을 보더니 "고구마순이네요. 저도 이거 참 좋아하는데." "그래, 그럼 맛 좀 봐." "형님이 한 것이라 그런지 더 맛있어요." "그럼 조금 갖다 먹을래? 껍데기 벗겨 놓은 거 있는데." "그럼 고맙지요. 그런데 힘들게 이걸 어떻게 다 벗겼어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는 어머니가 다 벗겨 주셨는데." "힘들어도 껍질을 벗겨야 먹을만 하지."

올케가 돌아가자 남편이 묻는다. "그거 껍데기 벗긴 거 다 줬어?" "올케가 바쁜 사람이잖아. 난 또 벗겨서 해먹으면 돼지." "완전히 시어머니같네." 그거 잠깐 벗겼다고 내 손톱 밑은 까맣게 고구마물이 들었고 손톱이 갈라져 있었다.

난 남편에게 그런 내손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그러게 내가 해보니깐 힘들긴 하더라"한다. 남편이 채 10분도 해보지 않았지만 그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그러면서 남편은 "그래도 내가 농사짓고 당신이 만들어서 그런가. 맛은 일품이더라"한다.
#고구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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