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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 지붕 위의 소녀
게르 지붕 위의 소녀 ⓒ 이형덕
오전 8시경, 캠프를 출발하여 '홍고린 엘스(Hogoryn Els)'의 사구로 향했다. '노란 모래'라는 뜻이라 한다. 얼마지 않아 바로 사구 앞의 게르에 도착했다. 거기서 20분 거리의 모래 언덕까지 낙타를 빌려 타기로 했다. 비용은 왕복 거리에 8달러였다.

낙타와 사구
낙타와 사구 ⓒ 이형덕
낙타는 말보다 순해 보였다. 코에 나뭇가지를 꿰어 코뚜레를 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낙타를 바라본 적은 처음이었다. 눈이 참 맑았다. 몽골 사람들은 낙타 눈에 바다가 보인다고 한단다. 끝없는 사막을 걸으며 낙타의 눈에서 바다를 보는 몽골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맑다.

한 곁에는 어린 낙타들만 따로 매어 놓았는데, 어미 한 마리가 맴을 돌며 울어댔다. 김영언 시인의 "인도의 타르사막에서 자욱한 별빛을 베고, 황혼녘 구슬프게 피어오르던 낙타 울음소리를 들이키며, 감미로운 모래 바람을 덮고 무념무상 몸을 누였던 때'의 그 울음소리는 아니겠지만, 그런 대로 낙타 울음소리를 드디어 듣게 되었다.

'돌마'님의 말로는, 간혹 이유없이 낙타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몽골의 전통악기인 마두금을 켜주면 낙타가 눈물을 흘리며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고 한다. 모래바람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고의 운명을 짊어진 낙타에게는 바다만큼 깊은 사연이 있는 듯하다.

낙타의 대오
낙타의 대오 ⓒ 이형덕
낙타에 오른 사람들이 줄지어 사구로 향한다. 말을 타고 움직일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비록 짧은 거리이지만 일렬로 줄을 지어 서두름 없이 걸어가는 낙타의 행렬은 마치 머나먼 사막을 건너는 캐러번을 연상시킨다.

홍고린 엘스
홍고린 엘스 ⓒ 이형덕
'홍고린 엘스(Hogoryn Els)'의 사구는 개울이 흐르는 초원지역 사이에 모래시계처럼 쌓여 있다. 멀리서는 낮게 보이던 사구가 가까이 갈수록 산처럼 높아 보인다. 처음 고비를 생각할 때, 대개는 북아프리카의 모래사막을 상상하기 쉽다. 그런데 고비는 대부분 산과 초원이 있는 황량한 벌판이 많고, 그런 모래사막은 3%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것도 알타이 산맥 너머 중국 국경 쪽으로 있다고 한다.

모래 언덕
모래 언덕 ⓒ 이형덕
그나마 모래를 만져 볼 수 있다는 감격에 모두들 서둘러 신을 벗고 200미터 높이의 사구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발목까지 푹푹 빠져 들어가는 모래 언덕을 오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중턱까지 쉼 없이 오르던 걸음들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한다. 캠프장에서 빌린 썰매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썰매는 생각보다 잘 미끄러지지 않았다.

밑에서 사진만 찍던 나도 허겁지겁 뒤를 따른다. 사구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자꾸 흘러내려 오르는 데 애를 먹인다. 숨이 턱에 찬다. 사막을 건너는 이들은 이런 사구를 수없이 넘어야 한다 생각하니 끔찍했다. 순전히 사구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이를 악물고 오른다. 간신히 사구 꼭대기에 오르니 밑에서는 뵈지 않던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사구 너머의 풍경
사구 너머의 풍경 ⓒ 이형덕
장관이었다. 아래쪽과 달리 끝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모래는 사르르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쌓이어 갔다. 켜켜이 새 모래톱을 만들어내는 사구들의 능선이 부드러운 물결 같았다. 멀리 바라뵈는 청록의 알타이 산자락이 눈에 아스라하다.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었다. 그렇게 바람이 어디론가 데려가고, 데려오는 세월에 몸을 맡기고, 그 자리에서 한 줌의 모래로 머무르고 싶었다.

낙타가 기다린다고 아우성치는 소리에 붙들려 달려 내려왔다. 고비를 꿈꿀 때, 끝없이 이어진 모래사막을 낙타처럼 제 그림자를 밞아가며 온종일 걸으리라 마음먹었는데, 내가 모래언덕에 머문 것은 불과 한 시간도 되지 못했다. 배낭 메고 걸어서 다시 오자며 소설가 정환과 다짐하는 걸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돌아오는 길에 낙타를 탔다. 말보다 편하지가 않았다. 키가 큰 데다 비죽 치솟은 등이 엉덩이에 배기고, 좌우로 흔들렸다.

황토 벌판에 혼자 서 있는 자크나무 숲

벌판의 주유소
벌판의 주유소 ⓒ 이형덕
게르를 떠나 차에 기름을 넣으러 갔다. 벌판에 선 주유소였다. 발동기를 돌려 기름을 끌어올리는데, 관리인 한 명이 초소 같은 데에 들어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벌판에서 온종일 그 안에 앉아 있을 그를 생각하자니 낙타보다 더 막막해 보였다.

낙타와 헤어져 몇 시간을 달렸다. 창 밖으로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벌판에서 하기로 했던 점심 식사를 뒤로 미룬 채 차는 계속 앞만 보고 달렸다.

오후 2시경, '불간(Bulgan)'솜에 닿았다. 마을 거리에서는 남자들이 소형 당구대에서 열심히 당구를 치고 있었다. 차는 마을 식당 앞에 세웠지만, 우리는 바람을 막아 주는 어느 건물 벽에 달라붙어 라면과 햇반을 끓여 먹었다.

동네 개들이 아이들보다 먼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검은 곰처럼 생긴 몽골 개들은 양을 지키기 위해 늑대와 싸우기 때문에 몽골 사람들은 가족처럼 여긴다 한다. 개는 신라면 국물에 말아준 밥도 맛있게 먹었다. 개와 우리는 그렇게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다정하게 밥을 나눠 먹었다. 고비에서는 누구든 길 가운데서 먹고, 길에서 잤다.

바이얀작 협곡
바이얀작 협곡 ⓒ 이형덕
오후 3시경에 마을을 떠나, 공룡화석이 발견되었다는 '바이얀 작'이라는 곳에 도달했다. 황토 지질의 협곡이 장대하게 펼쳐지는데, 이곳에서는 코크스를 비롯한 갈탄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고비의 갈탄 지대는 노천 가까이 매장되어 있어 채굴하는데 경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 한다.

자크나무 숲
자크나무 숲 ⓒ 이형덕
'바이얀 작'에는 '자크'나무라는 재질이 아주 단단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벌거벗은 황토 벌판에 유일하게 남은 숲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러고는 끝없는 평원이 이어졌다. 차들이 분주히 다닌 듯 골이 깊게 팬 평원을 달리느라 차는 덜덜 떨었다. 평원에는 지평선처럼 끝없이 이어진 전신주가 전에 본 적이 없이 임립하고, 새로 가설하려고 준비를 하는 곳도 있었다. 그 넓은 평원을 연결하자면 엄청난 물자와 인력이 소요될 듯싶었다. 몽골 사람들에게는 고비야말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며, 또 그 어려움으로 그들을 지킬 수 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멀리서 비를 쏟는 먹구름이 보였다. 며칠 전에 내린 비와 우박으로 양 삼천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말에 서둘러 비를 피해 달아났다.

별이 쏟아지는 엉킈 강가에서

엉킈강
엉킈강 ⓒ 이형덕
지루한 평원이 끝날 무렵, 산자락이 나타났다. 그리고 산을 넘어 '싸이한 캠프'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언덕 아래 게르 여남은 채가 포근히 자리잡은 캠프는 바로 곁에 강을 두고 있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거름에 검붉은 노을에 젖은 강은 며칠 동안 모래벌판만 달려온 여행자에게는 한마디로 경이로운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답다'는 뜻을 지닌 '싸이한(Sayhan; Saikhan)' 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풍경이었다.

폭이 십 미터쯤 되는 개울 정도였지만, 이곳에서는 강이라 불렸다. 강 이름을 물으니, '엉킈' 강이라 한다. 몽골의 전통 양고기 요리인 '헐헉'이 준비된 저녁 식사 자리에는 캠프 여주인이 몸소 나와서 인사를 했다. 한국 관광객들은 잘 오지 않는다며 와인까지 따라주는 여주인은 본업이 의사라고 했다.

나무를 때어 데운 온수로 몸을 씻고 나오니, 어두운 강 위로 드디어 고비의 별들이 나타났다. 그동안 날이 흐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초원의 별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별에 취하여 망원경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붉은 모래사막을 지나, 강에 이르러 만나는 별들은 더욱 맑았다. 검은 가죽을 덮고 낮게 내려앉은 밤하늘은 손을 뻗으면 별들이 쟁그랑 소리를 내며 우르르 쏟아질 듯했다. 빈 자리 없이 하늘을 겹겹이 채워 미처 별자리마저 더듬기 어려웠다. 한 무더기 은하수가 머리 위에서 박하향을 풍기며 흘러갔다. 밤은 별빛만큼 깊어가고, 낙타처럼 누운 검은 언덕 위로 늑대의 눈을 닮은 푸른 달이 떴다. 사람들은 달에 홀려 늑대처럼 울어댔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몽골의 신화 한 도막이 생각났다.

하늘 저편에는 고비보다 더 큰 초원이 있는데, 밤이면 양치는 목동들이 모닥불을 피운다. 목동들이 몸에 덮기 위해 가죽을 펼치는데, 가죽은 오래되어 여기저기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 그 구멍으로 내보이는 모닥불빛이 바로 별빛이다.

자정이 되어 발전기도 멈추고, 사방은 온전한 어둠의 적요 속에 남는다. 멀리 어두운 초원 저 편으로 별 하나가 떨어진다. '별빛에 타박상을 당한' 사람들은 땅바닥에 눕거나, 서로 떨어져서, 이 황홀한 내상(內傷)을 되도록 혼자서 감당하려고 애썼다. 우리 하나, 하나가 이 고비의 밤에 뚫어진 작은 구멍 사이로 별빛처럼 반짝이는 것을 누군가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 사용된 몽골어의 한글 표기는 정확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몽골#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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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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