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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우리가 석로의 중간에서 보았던 세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통로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함곡에게 풍철한이 슬며시 물었다.

“왜 흰 바닥만 밟고 지나게 한 것인가? 다른 오묘한 기관장치라도 되어 있는 것인가?”

풍철한으로서는 자못 궁금한 표정이었다. 함곡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네. 다만 지나오고 나니 그것은 자신이 가야할 곳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네.”

함곡은 우슬과 귀산노인을 흘낏 살피며 말했다. 천하의 함곡이 모르는 것이 있다니.... 풍철한으로서는 오히려 놀랄 일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 대답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 함곡이로구먼....”

대답은 귀산노인에게서 나왔다. 함곡의 눈빛이 대답을 강요했는지도 몰랐다. 우슬이 옆에서 웃고 있었다.

“무슨 특별한 기관장치가 되어 있거나... 오묘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닐세. 그저 단순한 것이지. 함곡의 말대로 자신이 가야할 위치를 선택하는 위치에 불과할 뿐이라네.”

“............?”

그렇게 설명했음에도 풍철한이나 그의 동생들은 모두 의아한 기색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가야할 위치를 선택하는 곳과 세 가지 색깔을 가진 바닥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허나 함곡은 이미 귀산노인의 말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시선을 돌려 멀리 용추 일행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쯧....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게. 사람들은 항상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단 말이야.... 세 가지 색깔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세 가지 색깔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말일세.”

일원(一元)양의(兩儀)삼재(三才)사상(四象)오행(五行)육합(六合)칠성(七星)팔괘(八卦)구궁(九宮)십방(十方)이라.... 대개 기관이나 진식에서 이용하는 것은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삼재....! 그럼 흰색은.....?”

“그렇지. 천(天)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 그곳은 지하가 아니었나? 내가 하늘로 간다는 것은 땅위로 나간다는 의미네. 우리는 땅위로 나서기 위해 흰색을 밟았을 뿐이지.”

참으로 어이없는 노릇이었다. 너무나 간단한 것이어서 풍철한마저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검은색 바닥을 짚거나.... 붉은색을 밟는다면.... 땅속이나....?”

“그렇다네. 땅 속에 있겠다는 의미고.... 사람에게 가고자 한다는 의미지.”

더 이해 못할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땅 속에 있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오. 뭐 뱅뱅 돌게 하거나 하면 결국 제 자리에 돌아올 테니까.... 그렇지만 사람....? 그럼 붉은색을 딛었다면 사람에게 간다는 것인데... 도대체 그 통로에서 어느 사람에게 간다는 것이오?”

귀산노인은 풍철한의 질문에 제법 예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귀산노인이 보기에 풍철한은 덤벙거리는 것 같아도 매우 세심한 구석이 있었고, 중요한 부분은 놓치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이미 지하통로를 지나올 때 이미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혹시 그 지하통로는 이 운중보 내의 다른 전각으로 연결되는 곳이 있소?”

귀산노인이 말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풍철한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는 동안 성질 급한 풍철한이 재차 물었다.

“연결되는 곳은 없네. 그 길은 유일하게 이곳 생사림과 연결되는 통로지. 하지만 자네는 그 통로 안에 다른 사람이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나?”

느긋한 표정으로 마치 선문답하듯 말을 하는 귀산노인의 태도에 풍철한은 뭔가 있음을 직감했다. 자신이 궁금해 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운무소축에서 이곳과 연결된 통로는 그냥 통로로 보기에는 너무나 잘 설계되어 있었다.

“사람이 있소?”

“아마 저들 중 누군가는 운무소축의 바닥에서 통로의 입구를 발견하고 우리를 뒤쫓아 지하통로로 들어갔을 걸세. 그들이 어떻게 선택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우리와 같이 흰색을 선택하는 것뿐이네.”

“.............?”

“그런 선택을 했더라도 그들은 이미 막힌 벽을 보게 되었을 것이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네.”

“만약 검은 색을 선택하거나 붉은색을 선택했다면 어찌되오?”

좌중은 귀산노인의 말에 청각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어서 풍철한이 묻지 않았다면 이구동성으로 물었을 터였다. 귀산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해괴하고 무서운.... 하지만 너무나 궁금해서 죽는다 해도 억울하지 않을 광경을 보게 되겠지.”

모든 사람들의 눈에 더욱 의혹스런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을 두고 귀산노인이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있다는 것이오?”

풍철한이 답답하다는 듯 되묻자 귀산노인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쩌면 우리도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죠. 그 때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우슬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 말에 풍철한이 적당히 물을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릴 때 함곡이 나직하지만 심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역시 예상대로 용추는 모든 것을 파해하고 들어오고 있군...... 하지만 그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라.......이미 우리가 곳곳에서 방해하거나 손을 쓰지 않으리란 사실을 예상했어....음.....”

함곡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심각한 어조였다. 함곡은 설중행 일행이 간 방향을 자꾸 돌아다 보고 있었다. 미리 안배한 인물도 저곳으로 들어올 것이고 설중행 일행이 당도하기 전에 혹시나 그가 일을 처리했기를 바라면서 고개가 돌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정을 모르는 풍철한이 물었다.

“그렇다면 저들이 언제쯤 이곳에 당도하겠나?”

“채 한시진이 걸리지 않을 걸세.”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이곳의 전력이라 해 보았자 중원사괴가 고작이다. 선화와 무화가 그나마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부상당한 곽정흠은 물론 함곡과 귀산노인은 도움이 안 될 터. 우슬이 어떤지 모르지만 거의 실명한 상태에서 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간을 지체하게 만들어야지.”

중간 중간에서 저들을 혼란시키거나 기습을 하자는 풍철한의 말이었다. 그러나 함곡은 고개를 흔들었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네. 진식에 관한 한 용추도 남에게 뒤지지 않을 실력을 가지고 있네. 지금 경계하지 않고 저렇게 나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지.”

함곡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가운데로 몰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황이 그만큼 고민스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풍철한이나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도 심각한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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