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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득표 2위를 차지한 박근혜 후보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치열하다 못해 살벌했던 한나라당 경선이 끝났다. 이명박 후보가 선출되자 곧바로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을 선언한 박근혜 후보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다. 설령 준비된 원고를 읽은 것에 불과하다 해도 의연한 자세로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박 후보를 보면서, 정치적 지지 여부를 떠나 그 기개와 대담함만은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로써 모든 문제와 갈등이 말끔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박 후보 앞에는 여전히 몇 가지 난제가 놓여 있다.

첫 번째로, 박 후보가 이날 보여준 모습처럼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고 이 후보를 돕는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그동안의 경선과정을 통해 박 후보 본인과 측근들이 뱉은 여러 말들에 의하면 이 후보는 도저히 대통령감이 아니며,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되는 위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권교체라는 더 커다란 절대명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아무리 정권교체가 중요하다지만 그것을 위해 '전과범'이며 '땅 투기꾼'이자 '국가적 대재앙'인 대운하를 추진하는, 언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의혹투성이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 역시 참 이해 못할 일이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건 정권교체만 하면 된다는 말인가.

그만큼 박 후보의 이 후보에 대한 공격은 경선과정에서 필연적인 정치적 수사라고 치부하기에는 선을 넘어 버렸다. 설사 그것이 근거 없는 네거티브가 아닌, 실체가 확실한 검증이었다 해도 박 후보는 이 후보를 절대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되는 인물로 낙인찍어 버렸다. 또한 실체가 확실하다면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가 더욱 명백해지는 셈이기도 하다.

즉 박 후보는 이 후보를 돕는 순간 언행 불일치의 오류에 봉착한다. 대통령이 되어선 안되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진정성이 와 닿지 않는 게 당연하다. 보기에 따라 국민에 대한 기만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돕자니 언행 불일치, 모른 척하자니 승복 선언 위배

두 번째로, 가능성은 낮지만 박 후보가 돌연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할 경우에도 역시 문제가 발생한다. 여러 차례에 걸쳐 경선 승복 다짐을 했으며, 평소 원칙을 중요시하기로 유명한 박 후보가 스스로 한 다짐을 깨는 동시에 정당 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저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 정치적으로 성공한 전례도 없을뿐더러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박 후보의 승복 선언이 진심이라는 가정을 할 경우, 박사모를 위시한 박 후보 지지자들의 경선 불복 움직임을 제어할 자격이 박 후보에게는 부족하다. 박 후보의 적지 않은 지지자들이 같은 당의 다른 후보를 이토록 미워하고 증오하며 차라리 여권의 다른 후보를 찍겠다고 하게 된 근본적 이유가 바로 박 후보 자신의 경선 대응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너는 절대 안 된다'가 아닌 '너도 훌륭하지만 내가 더 낫다'는 식의 경선을 치렀다면, 박 후보 지지자들의 분노는 아마 없었거나 혹은 지금만큼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지자들을 깊은 감정의 골로 빠뜨려놓고 이제 와서 추스르려고 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만약에 혹시라도 박 후보가 일단은 승복하는 척한 후 지지자들과 참모들이 이 후보를 흔들어주길 내심 원하고 있는 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탈당을 함으로써 정당 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틀을 깨는 것도 아니고 이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언행 불일치의 모순을 범하는 것도 아니지만, 대신에 당원과 국민 앞에 여러 번 맹세한 경선 승복 다짐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선택의 갈래 중 가장 큰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즉 박근혜 후보의 향후 선택은 그것이 무엇이든 불완전성과 문제 발생 가능성을 내포한다. 가히 총체적 딜레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경선 과정의 네거티브 공세가 자리한다.

경선이 이미 끝난 마당에 가정법이란 의미가 없지만, 박 후보가 네거티브 공세만 자제했어도 이러한 상황이 오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박 후보의 지지율이 이 후보에 비해 뒤처지지만 않았어도 박 후보는 네거티브 공세를 그처럼 심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가 어렵지만 않았어도 이 후보의 지지율이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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