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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십자군 이야기> 표지
ⓒ 길찾기
한 십자군 병사는 그의 원정기에서 "우리 십자군은 이교도 어른들을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아 먹고 아이들을 꼬챙이에 꿰어 구워 먹었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우리 십자군은 투르크 사람과 사라센 사람의 인육을 먹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개조차 먹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십자군 스스로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 이 정도이니 침략을 당하고 있는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의 느낌은 어떠했겠는가? 십자군은 말 그대로 악마의 화신이었다. 전율과 공포 그 자체였다. 십자군들의 만행에 무슬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게 오늘날까지 무슬림이 십자군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자 그들은 또 다른 십자군 원정이라며 비난하는 것도, '알카에다'나 '탈레반'이 미국과의 싸움을 성전이라고 선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새 십자군과 지하드를 수행하고 있다고 철저히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군과의 전쟁을 악마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배우는 세계사 교과서에는 이렇게 원론적이고 개략적으로 적고 있다.

"십자군 전쟁은 셀주크 투르크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위협을 느낀 비잔티움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구원을 요청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호응하여 교황이 성전을 호소하자 국왕을 비롯한 많은 제후와 기사, 상인 농민이 원정길에 나섰다. 약 200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친 원정으로 한 때 성지를 회복하기도 하였으나 끝내는 실패하였다."

비잔티움 황제가 십자군을 요청한 사실도 없었음에도, 아무래도 역사책은 서양 중심이다 보니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십자군은 그렇게 만들어 졌다고하며 얼렁뚱땅 넘어간다. 그런 관계로 전문가가 아닌 한 십자군에 대하여 물으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알아도 위 정도의 수준이다. 더러는 '십자군'이라는 이름 때문에 왜곡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종교 때문에 일어나는 분쟁이 많다. 이것들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여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인질사태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와의 갈등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현 사태를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상황을 정확히 알 필요는 있다.

이를 위하여 오늘날 특히 많이 부딪히고 있는 서방세계와 이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추천하고 싶은 책이 꼭 하나 있다. 자칭 역사 만담꾼이라고 주장하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다. 이 책은 만화로 되어있지만 단순한 만담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인용, 촌철살인적인 유머와 더불어 주장하고자 하는 큰 뜻이 곳곳에 배어있다.

이 <십자군 이야기>는 제목처럼 중세의 십자군의 원정에 대한 지식전달을 위해, 아니면 단지 십자군의 만행만을 폭로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니다. 저자는 '기억은 약한 자의 마지막 무기'라고 말했듯이 저자는 전쟁이 현재에도 계속 되풀이 되고 있기에 이 책에 대한 지식은 전쟁에 맞서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에는 종교에 대하여 "신앙에는 강요란 있을 수 없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은 우리에게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칼'이라고 하는 과격한 종교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13세기 중엽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날 무렵에 활동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말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처음부터 아옹다옹 다툰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이 십자군원정이 있기 전에는 서로 공존하는 문명이었다. 당연한 것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일신교로서 같은 신을 모신다.

유대교는 예수 앞까지인 구약성서만 인정하는 종교이고 이슬람은 예수 역시 한 명의 선지자이고 마호메트를 신의 유일한 사자로 인정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세 종교는 넓은 의미에서 같은 테두리 안에 있다.

저자는 남미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글을 빌려 말한다. 1898년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는 어느 날 자정 백악관 복도를 걷다가 하나님과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자신에게 필리핀 섬을 점령하고 그 섬 주민들을 문명화하고 기독교화 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 결과 필리핀 사람들이 60만 명이 죽었다.

십자군 전쟁 역시 미치광이 은자 피에르가 베드로의 계시를 받았다며 이슬람과 전쟁을 일으켜 이교도의 손에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으로 무작정 출발한 군중십자군은 나아간 지 며칠도 되지 않아 번화한 도시를 만났다.

그 도시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식량이 부족하자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이교도들을 세상에서 일소하기 위해 선택받았다고 확신하고 유대인을 살해한다. 군중 십자군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은 이후 1천년에 걸친 유대인 탄압의 역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었다.

군중 십자군은 가는 곳마다 사고를 저지른다. 헝가리에서 강도와 약탈을 하다 도리어 헝가리 왕의 공격을 받고 동로마 제국으로 도망친다. 여기서도 다시 소동을 일으켜 쫓겨나듯 투르크로 향하게 되는데 잘 훈련된 투르크 기병에 의해 오합지졸 군중 십자군은 전멸하게 된다.

이 후로 200년간 십자군 원정이 계속 되면서 서방세계와 이슬람은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이 <십자군 이야기>는 프롤로그를 곁들여 십자군 원정을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이다. 서양 중심이 아닌 아랍인들과 비잔틴인들의 시각에서 보았기에 서방유럽인들이 쓴 역사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균형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을 할 성스런 이유는 없다. 다만 세속적 필요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침략에 신의 이름이 아니라 더 위대한 명분과 구실을 붙이더라도 그 결과로 남은 것은 살육과 파괴와 미움뿐이라는 것이다.

읽고 나니 너무나 인상적이라 옆 사람에게 한번 권하였더니 그 분 역시 읽고 나서 한 말씀 거들었다.

"십자군 그놈들, 정말 나쁜 놈이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 글.그림, 비아북(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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