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뜬금없이 걸려온 누나의 전화 한 통

“너 휴가는 언제냐? 이제 애들 다 대학교 보냈으니 걱정 없이 나도 휴가 한 번 즐겨보자.”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멀리 갈까요? 남도는 어때요.”
“남도도 좋다. 그런데 나 판소리박물관 가고 싶다.”
“그러면 고창으로 해서 변산으로 가는 코스를 잡아보도록 할께요.”

초등학교 소풍에도 철모르는 동생의 손을 잡고 갈 정도로 어린 시절 누나는 언제나 내 편이었으며 지금까지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철부지 같은 막내동생에게 휴가를 함께 하자고 하는 연락은 반갑기 그지없다. 아무리 짧은 기간 휴가라도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게 마련인데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우리 집 꼬마들 포함 4명의 식구와 공부하는 딸을 제외한 누나집 식구 3명이 7월 30일 늦은 아침 마침내 전라도를 향해 출발하였다.

▲ (사진 1, 선암사 일주문 앞에 선 누나 가족들)
ⓒ 김성후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언제나 마음이 푸근해지는 선암사이다. 한 때는 이곳이 좋아 미친 듯이 찾은 적이 있었으며 지금도 눈을 감고 천천히 길을 따라 가면 선암사의 영상이 떠오를 정도로 좋아하는 곳이다. 그런 까닭에 누나와 함께 가는 여행의 첫 장소로 부끄럽지 않은 곳이다.

선암사로 올라가는 비포장 길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길이라 언제나 맑고 시원하게 우리를 맞아준다. 7월 말 그렇게 더운 뙤약볕의 고통은 이 숲길로 인해 사라진다. 불교에서 아미타불이 계신 서방극락정토를 안양(安養)이라고 하고 청량(淸凉)이라고도 한다지. 지금 선암사 올라가는 이 길이 바로 청량한 서방극락정토가 아닐까 싶다.

내가 촉촉하게 젖어있는 선암사 숲길을 좋아하는 까닭은 자신을 낮추는 마음인 하심(下心)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화물차에 대형 물통을 싣고, 여기에 연결한 파이프에 구멍을 내서 길 위에 물을 뿌리는 트럭을 모는 스님을 간혹 만날 수 있다. 크고 화려함을 좋아하고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사찰이었다면 감히 스님이 그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찰의 세속화된 권력을 꼬집는 농담이 있다.

“스님! 스님들께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아세요?”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문을 닫는다 아닌가?”
“아닌데요. 스님께서 냉장고 문을 열고서 ‘저기 처사님들과 보살님들. 그 코끼리 냉장고에 넣으세요."

이 농담이 한국 불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이라면 흙길에 스님이 직접 물을 뿌리는 아름다움이 아직 남아있기에 이곳 선암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무로 만든 장승도 만나고, 부도밭을 지나서 보물로 지정된 승선교(昇仙橋)라는 다리도 만나고, 다리 저편에 2층의 누각인 강선루(降仙樓)도 눈에 들어온다. 더운 여름에 지쳤는지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계곡에서 놀겠다고 한다.

아이들과 헤어져서 삼인당이라는 연못의 배롱나무를 바라본다. 보통 “제행무상·제법무아·일체개고(諸行無常·諸法無我·一切皆苦)”를 삼법인(三法印)이라 하는데 여기 안내표지판에는 일체개고 대신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 것인들 중요하지 않으랴.

▲ (사진 2, 선암사 대웅전과 석탑을 돌아보고 있는 중)
ⓒ 김성후

일주문을 지나 2기의 삼층석탑이 서있는 대웅전을 만난다. 그리고 그 옆의 설선당(說禪堂)의 출입문을 이야기한다. 설선당은 ㅁ자형 건물로 밖에서는 단층으로 보이나 안은 중층 건물로 1층은 스님들의 거처와 공양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위층은 수장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웅전 쪽으로 난 설선당의 문을 열면 곧바로 부엌이 나와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움칫 놀라고 만다. 옛날 부엌은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일반인들이 쉽게 자신들의 거처로 들어오지 못하기 하는 장치로 출입문과 부엌을 함께 만든 것이다.

이어 대웅전 뒤로 인위적인 모습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정원을 뒤로하고 원통전(圓通殿)의 문창살을 본다. 정(丁)자 모양의 건물로 100일 기도 후에 정조 임금의 아이를 얻게 되어 대복전이라는 현판을 내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인연이 닿으면 볼 수 있는데 행여 못 보더라도 후회는 하지 말자며 선원으로 향한다. 마침 선원이 보수공사 중이라 쇠파이프와 나무가 이러 저리 얽혀있는 가운데 선원 안의 통나무 물길과 크고 작은 통돌을 깎아 만든 물확을 만날 수 있었다. 누나는 조카가 해인사에서 삼천 배를 올린 공덕이라고 한다.

▲ (사진 3, 선원 내 층층이 이어진 물확을 바라보면서)
ⓒ 김성후

돌아내려오면서 만나는 선암사의 보물 해우소를 만난다. ‘뒤깐’이라고 적힌 글을 보면서 맘음 편하게 웃는다. ‘깐’이라는 글자는 ‘ㄲ’이 아니라 ‘ㅅ’과 ‘ㄱ’을 합쳐서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이곳은 자연 그대로 만들었으며 문이 없다는 특징을 말해주자 들어가 보곤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 (사진 4, 선암사보다 더 유명한 선암사 해우소)
ⓒ 김성후
선암사에서 내려와 담양의 명옥헌으로 향한다. 보름달이 뜨면 볼까하다가 해질 무렵도 분위기는 좋을 것 같아서 곧바로 내달렸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늦은 시간이라 찾는 사람도 없어 여유롭게 올라간다. 누나는 내 꿈이 이렇게 시골에 기와집 짓고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명옥헌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이 다만 이렇게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것이 참 맛이 아니냐고 하니까 누나는 “그래! 여유 맞어. 우리네 삶에서 이런 여유가 얼마나 있었을까?”라며 맞장구를 친다. 앞으로 이런 시간을 자주 갖자고 하면서 소쇄원 부근의 숙소로 향한다.

▲ (사진 5,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활짝 핀 명옥헌 전경)
ⓒ 김성후

태그:#선암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