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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비디오광시곡 특별전'이 열리는 KBS 신관 입구. 아래 <자화상(self-portrait)>(1989). 그의 데드마스크와 닮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인다.
'백남준 비디오광시곡 특별전'이 열리는 KBS 신관 입구. 아래 <자화상(self-portrait)>(1989). 그의 데드마스크와 닮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인다. ⓒ 김형순
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을 추모하는 '백남준 비디오광시곡'이 KBS 신관에서 오는 12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휘황찬란한 우주 비행선을 탑승한 것처럼 환상적이다. 기상천외하고 익살맞은 그의 상상력이 하이테크 예술과 만나 연주한 비디오 아트는 그야말로 한편의 광시곡 같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그가 남긴 기발한 재치와 장난기는 한 줄기 샘물처럼 이번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한다.

천재 익살꾼의 보물창고

백남준은 비디오를 종이처럼 활용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이번 전은 어려서 세 개의 유리로 만들며 놀았던 알록달록한 만화경이 된다. 요즘처럼 놀 줄 아는 인재가 드문 시대, 그는 온갖 미디어를 가지고 정말 놀 줄 아는 천재이자 무당이자 익살꾼이었다. 그가 모아놓은 보물창고를 보는 듯하다.

그가 그렇게 진정 잘 놀 줄 알았다는 것은 5개 국어를 하는 지성인이 있었고, 시대정신을 꿰뚫어보는 진정한 세계시민이었고, 한국예술의 근간이 되는 샤머니즘의 다이내믹한 힘과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줄 아는 전방위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거북이(Turtle)> 150×600×1000cm 1993. 이번 특별전의 대표작으로 신령한 동물인 거북이는 호랑이와 함께 한국을 상징한다.
<거북이(Turtle)> 150×600×1000cm 1993. 이번 특별전의 대표작으로 신령한 동물인 거북이는 호랑이와 함께 한국을 상징한다. ⓒ 김형순
<거북이>(1993)는 독일에서 1993년 처음 제작됐고, 국내에선 처음 선보인다. 166개 모니터와 3편의 영화가 담겨 있으며, 이번 전시회의 압권이다. 변화무쌍한 색채와 현란한 형체로 장관을 이루어 사람들 탄성을 자아낸다. 신령한 동물인 거북이는 호랑이와 함께 한국을 상징하고 예술의 영원성을 뜻하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자꾸 21세기를 맞이하면서 한국인의 기상을 맘껏 펼치며 전세계지구인의 혼을 빼놓았던 <호랑이는 살아있다>(1999년 12월 31일 방영)를 연상시킨다.

동서양 쌍방통행과 세계평화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1984). 그 내용을 다시 보면 백남준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가 알 수 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1984). 그 내용을 다시 보면 백남준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가 알 수 있다. ⓒ 김형순
백남준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일본과 독일에서 공부했고 뉴욕에서 활동했기 동서양을 제대로 이해한 다문화 국적자이다. 그는 누구보다 동서양 징검다리 놓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양과학은 동양정신과 만나야 제대로 된 하모니를 이룬다고 한 그의 지론을 옳았다.

이런 배경을 비추어 볼 때 세계평화와 화합을 위한 대동굿 아니 위성 비디오버라이어티쇼로 풀어내어 1984년 전 세계에 방영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나 1986년 <바이 바이 키플링>, 1988년 <손에 손잡고> 등 3부작은 가장 백남준답다.

이번 기회에 3부작 중 첫 작품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더 꼼꼼히 볼 필요가 있다.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여 세계최초로 진행된 쌍방향방송으로 그가 얼마나 시대를 꿰뚫으며 앞서간 선각자임을 알 수 있다. 백남준의 자평이 떠오른다.

"나는 이것을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자랑할 수 있다. TV문화는 레이더로 시작되었으며, 레이더는 쌍방향이다."

백남준식 에로티시즘 < TV침대>

< TV침대(Bed) > 18개 모니터 230×200×150cm 1972/1991. 백남준의 에로티시즘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여성의 위력을 은근히 부각시킨 것 같다.
< TV침대(Bed) > 18개 모니터 230×200×150cm 1972/1991. 백남준의 에로티시즘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여성의 위력을 은근히 부각시킨 것 같다. ⓒ 김형순
< TV침대 >(1972/1991)는 1972년 원작을 1991년에 재제작한 것으로 신체화된 예술인 < TV브라 >나 생물화된 예술인 < TV정원 > 등과 맥을 같이하다. 이 침대를 그의 예술적 분신인 샬로트 무어만과 TV첼로를 연주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니 그녀를 통해 내비친 관능적 에로티시즘과 섹스얼리티의 환상을 읽을 수 있다.

< TV침대 >에 작은 모니터를 보면 완전히 누드인 여자 위에 총을 든 군인이 올라타고 있지만 번번이 거기에서 떨어지는 모양은 백남준식 페미니즘, 여성의 여신과 같은 우월성과 모성의 위력을 내비치고 있는지 모른다.

갑자기 백남준이 한 말 "넥타이는 멜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가 생각난다. 그렇다면 모니터침대 위에서 잠을 자는 것만이 아니라 음악도 연주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보다.

우정과 존경, 그리고 인간적 교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사진 석판화 비디오테이프 모니터, 265×188×95cm 1990. 아래 <보이스의 목소리(Beuys/Vox)> 1988. 백남준은 친 혈육 같은 그를 이런 작품으로 되살렸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사진 석판화 비디오테이프 모니터, 265×188×95cm 1990. 아래 <보이스의 목소리(Beuys/Vox)> 1988. 백남준은 친 혈육 같은 그를 이런 작품으로 되살렸다. ⓒ 김형순
백남준은 나라별로 그를 지원하는 '백남준 사단'이 있을 정도로 주변에 팬도 많았고, 또한 그 자신도 존경하는 인물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다소 시니컬한 언론까지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기마민족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존경하는 한국인물 정약용, 김유신, 세종대왕뿐만 아니라 서양의 존경하는 인물, 스승, 동료를 로봇으로 만들었다.

백남준은 서양인으로 노자, 선불교, 주역 등 동양정신을 꿰뚫고 있었던 존 케이지를 큰 스승으로 삼았다. 당연히 그의 이름이 붙인 로봇은 만들어졌다. 이번 전에서는 전위예술의 전폭적 지지자로 전 지구적으로 많은 예술가의 사랑을 받은 <거트루드 스타인>(1990)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이놈', '저놈'하며 친 혈육보다 더 혈육처럼 지냈던 요셉 보이스, 그는 2차 대전 중 중앙아시아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타타르족의 보살핌으로 회생한 후 샤머니즘에 경도된 인물로 백남준은 그를 남다른 애정으로 대했다. 그래서 이런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90)>가 태어났다.

백남준은 1987년 요셉 보이스의 추모집, <보이스의 목소리(Beuys/Vox)>를 냈고 그와 관련된 유품이 전시되었다. 여기 모자는 보이스의 대표적 퍼포먼스인 <죽은 토끼를 어떻게 그림으로 설명할까>(1965)를 연상시킨다.

로그인 더하면, 벌목은 덜하고

<로그인을 더 할수록 로깅(벌목)은 덜 한다(More Log-in : Less Logging)> 325×210×53cm 1993. <비디오 스쿠터(Video Scooter)> 182×195,6×195,6cm 1994.
<로그인을 더 할수록 로깅(벌목)은 덜 한다(More Log-in : Less Logging)> 325×210×53cm 1993. <비디오 스쿠터(Video Scooter)> 182×195,6×195,6cm 1994. ⓒ 김형순
이번에는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되었던 <로그인을 더 할수록 로깅(벌목)은 덜 한다>를 보자. 로그(log)의 원뜻은 원목을 지칭하는데 환경문제에 대한 강한 암시를 풍기며 재치 있는 제목을 달았다.

이 작품은 TV모니터와 늘어뜨린 전선으로 한 구루의 수양버들나무를 형상화한 일종의 비디오조각이다.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백남준은 아마도 이 세상의 모든 나무가 더 온전히 보전되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그 아래 <비디오스쿠터(Video Scooter 1994)>는 소형오토바이인 스쿠터를 의인화한 것으로 스쿠터를 20개의 TV를 결합하여 바닥에 놓인 TV화면에서는 도로 이미지가 송출된다. 전자음악을 전자비전으로 확장시킨 배경도 들여다볼 수 있다.

예술의 인간화, 기계의 생명화

<네온TV(내 마음에 비 내리고)> 54×66×25cm 1990. <네온 TV(사랑은 10,000마일)> 60×60×25cm 1990. 소품이나 정겨움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네온TV(내 마음에 비 내리고)> 54×66×25cm 1990. <네온 TV(사랑은 10,000마일)> 60×60×25cm 1990. 소품이나 정겨움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 김형순
잘 알다시피 백남준은 서양인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내는 틈을 타 하이테크를 예술화하는 데 성공했고 드디어 비디오 아트라는 새 장르를 창시했다. 그리고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은 결국 정보의 독점을 막지 못하고 가진 자만의 독재와 독선만 뿌리내리게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렇게 인간화된 예술은 주장한 것이다.

<네온TV연작>은 소품이지만 그의 이런 예술철학이 잘 드러난다. 그가 늘 주장하는 예술의 인간화, 기계의 생명화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네온TV, 내 마음에 비 내리고'나 '네온TV, 사랑은 10,000마일' 등 제목부터가 정감 어린 지구인의 보편적 사랑과 정서를 대변하는 것 같아 자꾸만 그곳으로 눈길이 간다.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

<탑(Tower)> 43개 TV 475×220×220cm 2001. <색동연작> 아크릴염색 1996. 가장 한국적인 색채인 색동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탑(Tower)> 43개 TV 475×220×220cm 2001. <색동연작> 아크릴염색 1996. 가장 한국적인 색채인 색동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 김형순
그는 세계인이면서 한국인이었기에 한국적인 것, 한국적 색을 세계화하는 데 누구보다 애썼다. <탑>(2001)이나 <색동연작>은 바로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색동옷감을 입혔다. 샤머니즘에서 유래한 이런 오방색계열은 백남준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치게 좋아하고 우리를 신명나게 했던 2002년 월드컵에서처럼 엑스터시에 빠지게 하는 색이기도 하다.

끝으로 이번 전(KBS주최)이 <로봇 K-456>, < TV물고기 >, < TV정원 > 등 그의 대표작을 다수 볼 수 있는 '백남준 참여TV전(경기문화재단주최)'과 하나 되지 못하고 따로 전시가 된 점은 못내 아쉽다. 두 단체의 의견차에도 이는 백남준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전시기간: 10:00~20:00 월요일 휴관. 그림설명: 매일 오전11시, 오후1, 3, 5시 
홈페이지: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전 http://www.kbsnamjunepaik.com
관람요금: 성인 1만0000원 청소년 7000원 어린이 5000원 
교통정보: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하차 3번 출구. 여의도공원 쪽 20분 정도 가면 KBS 글자보임.


#백남준#비디오아트#굿모닝 미스터 오웰#TV침대#요셉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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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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