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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숙원, <말구멍의 아기장수>
ⓒ 새문사
'전설'은 "오늘의 물음에 대한 어제의 해답"이라 말하는 지은이 안숙원의 <말구멍의 아기장수>는 한국문화콘텐츠의 이해를 위한 전설의 재발견이다.

전설을, 지은이의 재해독에 따라 '아기장수형', '원소형(怨沼型)- 탐욕에 대한 징치', '일괴형(日怪型)- 천재지변을 다룬', '물괴형(物怪型)- 괴물과 관련한' 등등으로 분류하였다.

'섹슈얼리티'로 분류된 장 안에서는 '소서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왜 우리의 역사에서 삭제되었을까? 그 배경을 추리해보고 있다.

그녀는 비류, 온조 형제끼리 도읍지 선정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바람에 크게 상심하며 끝내는 온조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중략) 이후 백제사가 온조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천륜을 저버린 그(온조)의 실덕을 은폐하기 위해 소서노는 역사에서 삭제된 게 아닐까. 게다가 모성애를 신비화하는 가부장사회로선 아들과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을 벌인 '나쁜 어머니' 소서노 역시 좋게 봐 줄 수 없었으리라. (53쪽)

'구지가(龜旨歌)'가 나온 곳 즉 김해 구지봉(龜旨峯)의 이야기는 한국인 최초의 집단신명으로 풀었다. 그리고 영양 황씨 부인당 전설은 원한과 해한의 메커니즘으로 접근한다. 집단의 신명이든 개인의 해한이든 이러한 이야기와 전설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개인적인 한의 표출이 푸념과 넋두리, 신세 한탄, 팔자타령의 하소연이라면, 동학혁명, 8ㆍ15광복 같은 것은 민족적인 한풀이의 역사적 사건이다. 원한의 매듭이 있으면 해한의 풀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소위 한국인의 흥과 신명도 한풀이의 순간에 경험하는 엑스타시요, 서로간에 쌓인 긴장의 해소, 화해의 극치에서 솟구치는 감정이다. (24~25쪽)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혼사장애'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 유화부인과 해모수의 혼사담도 같은 유형이다.

온달이 바보라는 것과 공주와의 신분적 차이는 혼사장애의 극적 요소를 위한 인물구성이지 그가 진짜 바보사위라고 보긴 어렵다. 그는 훌륭한 자질을 타고난 천품의 소유자로서 공주의 양마술 따위의 내조에 힘입어 그 잠재력을 발휘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84쪽)

아기장수 전설은 우리나라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이야기로 미래의 지도자,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갈망하는 민중의 욕구를 반영한다. 지은이가 찾아간 아기장수 전설의 현장은 충남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뒤편 해변에 있는 '말구멍 바위'다. 전설은 이렇다.

▲ 말구멍 바위(충남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해변 소재).
ⓒ 새문사
한 노파가 바닷가를 지나오는데 동굴로부터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 그 안을 들여다보니 한 마리 말이 인기척에 달아났다. 이상한 일은 그 일이 있고부터 동굴 근처에 있던 둥근 돌이 나날이 자라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동네에 퍼지고 관가에도 알려지자 고을 원은 그것을 깨뜨리라 명령했다. 깨뜨려 보니 그 안에는 날개 달린 한 아기가 있었다. 고을 원은 마지막 깃이 나지 않아 날지 못하는 이 아기를 죽이라고 시켰는데 아기가 죽은 후 동굴에서 말이 뛰쳐나와 돌에 머리를 부딪히고 죽었다. 이 말은 천마로 장차 나라를 다스릴 인물이었던 아기장수가 죽자 따라 죽은 것이다.

아기장수는 부모(주로 어머니)에 의한 1차죽음과 관군에 의한 2차죽음을 거듭하는 것이 비극성을 고조시키며 집단을 위한 희생양의 성격 (중략) 우리 고전에 등장하는 영웅적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과는 달리 아기장수얘기는 희랍 비극의 개념에 부합하는 서사물이라고 하겠다. (89쪽)

궁예의 흔적이 있는 철원과 포천. 지은이는 궁예를 '문화영웅(culture hero)'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문화영웅들은 자신의 입무식(入巫式)을 치러낸 샤먼들로서 집단의 이상을 대변하는 전체적 자아이다. 문화영웅에겐 샤먼으로서의 개인적 입사식이 예비적 테스트라면, 집단 공동체의 과업을 성취하는 것이 본격적 시험이 된다. 또 문화영웅이 성취한 내용이나 역할에 따라 원초적 문화영웅, 역사적 문화영웅(궁예는 여기에 해당된다), 정치ㆍ사회ㆍ종교적 문화영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94쪽)

조선 후기 이른바 '책 읽어주던 남자' 아니 소설 구연해 주던 전문직업인 '전기수(傳奇叟)'를 만나게도 된다. 전기수들 중에는 부유한 가정을 찾아다니며 소설을 읽어주던 부류가 있는가 하면, 도시를 중심으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을 택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 소설을 읽어주던 부류도 있었다.

관심을 끄는 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 드라마의 한 회 한 회 끝나고 이어지는 대목이 그렇듯이, 전기수는 워낙 재미있게 읽는 데다가 읽다가 아주 흥미진진한 대목에 이르면 문득 읽기를 멈추어 청중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재미에 푹 빠진 청중들은 계속 듣기 위해 다투어 전기수에게 돈을 던지게 된다고(이를 일컬어 요전법(邀錢法)이라 한다).

서울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살았다. 매달 초하루에는 제일교 아래, 초이틀에는 제이교 아래, 그리고 초사흘에는 배오개에, 초나흘에는 교동 입구에, 초닷새에는 대사동 입구에, 초엿새에는 종각 앞에 앉아서 낭송했다. 그렇게 올라갔다가 다음 초이레부터는 도로 내려온다. 이처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가는 다시 내려오고 하면서 한 달을 마친다. (208쪽)

전설을 정의할 때 대개 역사적 물증이 있는 이야기라 한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오늘날에도 어떤 형태로든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 재생되는 이야기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설은 우리의 문화 원형이며 서사의 원천이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다시 읽히고 거듭 해석된다. 그리고 이 독해 과정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도 어김없이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전설의 현장으로 가보는 것도 자못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말구멍의 아기장수

안숙원 지음, 새문사(2007)


태그:#전설, #소서노, #말구멍의 아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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