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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신간을 출간한 황석영, 김훈, 신경숙 등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 컬처뉴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물론 당시는 국민학교였다), 내 고향의 옆 동네인 강진(전라남도)에 국어선생님과 친구 몇이서 견학을 간적이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이 유배기간 머물렀던 다산초당에 간 것이었는데 내려오는 길에 김영랑 생가에 들렀었다. 널찍한 마당 한 켠에 있던 연못과 그 앞에 세워져 있었던 시비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비에는 김 시인의 대표작품인 '모란이 피기까지'가 적혀있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당시 초등학교 국어책에 나왔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의 시인 김영랑을 떠올리게 됐고,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해 귀동냥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가 유복하게 살았음을 보여주던 널찍한 기와집과 돌 시비, 연못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나의 첫 '문학기행'이었다.

최근 들어 이러한 '문학기행'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지난달 예스24 주최로 각각 네티즌이 뽑은 '한국의 대표작가'와 '차세대 우리작가'에 선정된 황석영씨와 은희경씨는 지난 12일부터 전북 고창, 부안 등 전라도 일대의 문학 속 무대를 답사하는 '문학기행'을 독자 200여 명과 함께하고 있다. 이슈가 되는 두 인물이 함께 다니다 보니 언론은 연일 두 사람의 행적을 함께 밟으며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역사소설 <리진>을 펴낸 신경숙씨가 소설의 무대가 된 경복궁 경회루와 홍릉, 여주의 명성황후 생가 등을 독자들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고, 지난 5월에는 베스트셀러 <남한산성>의 저자 김훈씨가 한국관광공사 등의 주최로 독자들과 함께 이번 소설의 작품 배경인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을 찾았었다.

김별아씨의 <논개>를 출간한 문이당도 온라인서점 인터파크, 문화관광부 등과 공동으로 오는 28일 작가와 독자들이 소설의 무대가 된 진주성을 둘러보는 '작가 김별아와 함께 떠나는 진주성 방문' 행사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문학'의 현장을 찾는 다는 것은, 작품 속 배경을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 이상으로 문학이 우리의 삶의 공간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작품 속 공간이나 작가의 삶의 공간을 직접 보는 것 자체로도 미술책 속의 <모나리자>를 미술관에서 직접 대면했을 때나 고흐의 생가를 찾았을 때의 감동이 있다. 나의 첫 '문학기행'도 그러했었다.

하지만 요즈음 '문학기행'은 나의 첫 문학기행과 좀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작가들이 이 '기행'에 '동행'하는 것인데, 그래서 이러한 문학행사 앞에는 '000과(와) 함께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문학의 현장을 평소 동경해온 작가와 함께 본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행복한 체험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즈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문학기행들을 보면 일명 '스타급' 작가들이 포진되어 있다. 문학의 현장도 보고, 스타작가와 함께하는 여행이니 문학 독자에게 이 만큼 매력적인 자리가 또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문학기행 행사에서 또 하나의 경향이 감지된다. 바로 이들 '스타급' 작가들의 줄 이은 신간 출간과 '문학기행'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작가와 함께 문학의 현장을 간다"는 행사취지의 이면에는 '신간대박'을 꿈꾸는 출판 마케팅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문학기행을 연일 쏟아내는 기사들도 간접홍보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문학'과 '독자'의 거리가 멀어질 대로 멀어진 작금의 문학현실에서 이러한 '문학기행'이 일반 대중들에게 '문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문학의 현장'이 주는 의미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의 소박하고 아름다웠던 '문학기행'이 이즈음 출판홍보용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태그:#문학기행, #출판마케팅, #황석영, #은희경,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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