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밥도둑 '갓김치'는 냉장고에서 15일 가량 숙성시켜 먹는 게 최고라 합니다.
ⓒ 임현철
'맛'의 묘미에는 별 게 다 있습니다. 정성스레 만든 음식의 기찬 맛에서부터 세상사는 맛, 여행의 맛, 사랑의 맛, 자식 키우는 맛, 살림하는 맛, 사업체 키우는 맛, 벗 사귀는 맛, 독서의 맛, 글 쓰는 맛, 즐기는 맛 등 참으로 가지가지입니다.

그 중 어느 것이 제일 나을까? 하나를 꼽으라면 쉽게 '이것이요'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 맛'은 사람에 따라, 연령에 따라,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제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중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과 시의 궁합(?)에 대해 생각의 한 토막을 펼쳐볼까 합니다.

'갓'하면 여수 '돌산'이 떠오릅니다. 이곳 갓이 '톡' 쏘는 맛이 독특하고 향이 진한 탓일 터. 그동안 저는 돌산 갓김치의 알싸한 맛만 알았는데 최근 새로운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갓김치에 관한 시(詩)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 녀석은 생갓김치, 숙성갓김치, 신갓김치 중 신갓김치를 제일 좋아합니다. 이게 녀석의 밥도둑입니다.,
ⓒ 임현철
바로 조선시대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유순(柳洵 1441-1517)이 쓴 시입니다. 안용근 저, <전통김치>에서 발췌한 시를 잠시 감상해 봅니다.

갓김치 시를 이수에게 보냄(山芥沈菜寄耳叟)>

하늘이 이 작은 것을 내렸는데(天生此微物)/ 타고난 성질이 홀로 이상하여(賦性獨異常)
저 벌판과 진흙을 싫어하고(厭彼原與隰)/ 높은 산 언덕에 뿌리 박네(托根高山岡)
봄에 나는 보통 풀을 시시하게 여겨(春榮陋凡草)/ 눈 속에서야 싹이 돋네(雪裏乃抽芒)
가는 줄기 한 치도 못 되니(細莖不盈寸)/ 어디 있는지 찾기도 어렵다(尋討何茫茫)

이따금 산속의 중들이(時有山中僧)/ 도망자 잡듯 뜯어서(採掇如捕亡)
사람들에게 내다 파는 것을(賣向人間去)/ 곡식과 함께 사오누나 (䨀歸雜稻梁)
생으로 씹으니 어찌 매운지(生啖味何辣)/ 산에서 전하는 묘법에 따라(妙法傳山房)
끊는 물에 데쳐 김치를 만드니(湯燖淹作葅)/ 금시 기특한 향내를 내는구나(俄頃發奇香)

한번 맛보니 눈썹이 찡그러지고(一嘗已攅眉)/ 두 번 씹으니 눈물이 글썽하네(再嚼淚盈眶)
맵고도 달콤한 그 맛은(旣辛復能甘)/ 계피와 생강을 깔보고(俯視桂與薑)
산짐승과 물고기의 맛(山膏及海腥)/ 갖은 진미가 겨룰 수 없네(百味不敢當)
내 식성이 괴벽한 것을 즐겨(我性好奇僻)/ 보면 매양 미칠 듯 좋아한다(每遇喜欲狂)

어머니가 그런 줄 알고(慈母知其然)/ 슬며시 한 광주리 보냈네(殷勤寄一筐)
꿇어앉아 그 정에 감격하며(跪受感中情)/ 봄에 빛나는 은혜를 어이 갚을까(春暉報何方)
이 마음 그대에게 알리고 싶고(此心要君知)/ 이 맛 혼자 맛보기 어려워(此味難獨嘗)
작은 함에 담아서(收藏一小榼)/ 군자의 집에 보내니(往充君子堂)
바라건대 국물을 마시면서(願且醊其汁)/ 함께 겨울의 향기를 보전하세(共保歲寒芳)


'갓김치', 김치의 사군자 중 하나

▲ 젓갈, 마늘, 새우, 고추 등을 함께 갈아 양념을 만든 후 일부는 갓김치를 버무리고, 일부는 주문에 따라 판매도 합니다.
ⓒ 임현철

▲ 소금에 절인 갓의 물기를 빼 다듬기를 합니다.
ⓒ 임현철

▲ 유빈인 생갓김치를 더 '맛'있어 합니다.
ⓒ 임현철
이 시는 갓김치의 향과 톡 쏘는 맛은 산 짐승과 물고기의 맛 등 어떤 진미도 겨룰 수가 없다는, 산 중에서 스님들이 즐겼다는,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군자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용, 겨울의 별미 국물김치 등에 대한 찬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겨울의 향을 보전하는' 한 방법으로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매화(梅花)·난초(蘭草)·국화(菊花)·대나무(竹)를 '사군자(四君子)'라 한다면, 혼자 생각으로 얼음 동동 띄워진 '갓김치·싱건지·백김치·총각김치'와 더불어 '김치의 사군자'로 불릴 만합니다.

더 나아가 재미를 증폭시키는 것은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알려진 맹사성 관련 일화에 등장하는 갓김치입니다. 이는 이륙(李陸 1438-1498)의 <청파극담(靑坡劇談)> 중 '골계담(滑稽談)',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조 초에 맹(孟) 재상은 아내가 잠들면 몰래 계집종 방을 찾았다. 계집종은 맹 재상에게 '절편 떡같이 고운 부인을 놓아두고 어째서 저같이 천박한 종을 찾습니까?' 물으니, 맹 재상은 '아내가 절편 떡이라면 너는 갓김치이다. 절편 떡은 갓김치를 먹어야 맛이 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남자 주인이 품는 계집종을 '갓김치종'이라고 하게 되었다." - 안용근 저, <전통김치>에서 -

▲ 갓 상태를 검사하고 주문에 따라 절인 상태에서 포장하여 택배로 보냅니다.
ⓒ 임현철

▲ 갓김치 담기
ⓒ 임현철
갓김치, 육류·어류 어느 것과도 어울려

하필이면 조선시대의 성윤리 단면을 그렸을까 싶지만 이 글에서 나타내려는 의도는 갓김치가 그만큼 '입맛 당기는 맛'이라는 데 있을 것입니다. 즉, 어떤 음식에도 궁합이 맞는다는 이야기겠지요.

이를 증명하듯 여수 돌산갓 영농조합 김성원 과장은 "돌산갓김치는 여름에 방독면을 쓰고 일할 만큼 톡 쏘는 맛이 강하고, 오래 두어도 물리지 않고 제 맛이 난다"면서 "갓김치는 삼겹살, 고등어 등 육류와 어류 어느 것과 어울려도 좋고 시어 먹지 못할 경우, 부침개나 찌개 또는 조림도 곰삭은 맛을 낸다"고 자랑입니다.

▲ 주명순 돌산읍장.
ⓒ 임현철
주명순 돌산읍장은 돌산갓의 특성에 대해 "알칼리성 토질에 해풍을 맞고 자라 독특한 맛을 낸다"면서 "돌산갓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여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역 명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돌산갓 연구 전담부서를 두고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고무적인 일입니다.

입맛 없을 때, 제가 가장 선호하는 갓김치 맛의 비법(?)은 먼저 손을 깨끗이 씻은 후, 갓김치를 손바닥에 쫙 펴서 밥을 얹어, 상추쌈처럼 돌돌 말아 입에 넣은 것입니다. 이걸 선호하는 이유는 대, 줄기, 잎사귀 등 부위별로 나눠 먹기보다 갓 한줄기 전체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식욕(食慾)의 으뜸은 '맛'입니다. 그리고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뒤따릅니다. 무엇을 먹든 간에 즐겁게 먹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삶의 활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즐겁게 먹는 방법 찾아보실래요?

▲ 숙성된 갓을 손에 펼쳐 쌈처럼 싸 먹는 '맛'도 그만입니다.
ⓒ 임현철

▲ '돌산갓김치' 담기가 끝나면 포장하여 택배로 보냅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와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