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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둑 : 14일 오후 4시30분]

낙동강 하구둑의 무지개... 연석회의 참가단체 240여개로 불어


▲ 경부운하 정책검증단 참가자들이 '사기 그릇'을 깨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병기
퍽-퍽-퍽-.

'경부운하 사기' 깨어지는 소리입니다. 정책검증단은 답사 마지막 코스인 부산 낙동강 하구둑에 도착해 경부운하라고 적힌 사기그릇을 망치로 깨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최근 수질과 생태계의 악화 때문에 둑을 헐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낙동강 하구둑은 이명박씨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임했을 당시 만들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경부운하 건설은 매국노보다 못한 짓"

부산시민운동단체연합, 부산 하천살리기시민연대, 부산민중연대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만길 부산 환경운동연합 의장은 경부운하를 제1공약으로 들고나온 이명박씨를 향해 "매국노보다 못한 짓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습니다.

"근대 초 제국주의 시대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는 온 국민의 질타의 대상이다. 하지만 매국노는 국토를 절단내고 허무맹랑한 개발주의를 전파하는 것에 비할 때 양반이다. 이제 식민지는 대부분 원래 주인의 손으로 들어갔다. 매국노에 의해 잃어버린 국가는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고 제국주의와 싸워서 다시 쟁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에 의해 절단난 국토는 되찾을 수 없다. 여러분들의 소중한 발걸음이 그들에게 국가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빈다."

1박2일간의 경부운하 정책검증단의 일정. 첫날을 그나마 비를 절묘하게 피하면서 현장 답사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둘째날은 우중답사. 쏟아지는 빗물을 맞으며 강물을 찾아 다니는, 그야말로 물 속을 헤엄치며 다닌 쉽지 않은 일정이었습니다.

이들을 더욱 힘빠지게 만든 것은 정책검증단이 경부운하 예정지를 돌아가면서 수차례 연 기자회견장에 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들과 동행한 <오마이뉴스>를 제외하곤 말이죠. 유력 대선 후보가 내건 대표공약, 그리고 만약 그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국토환경 등에 있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사안임에도 '검증하지 않는 언론',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하는 언론'의 직무유기를 보면서 검증단원들은 대부분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 기자회견을 하는 사람들 뒤로 뜬 무지개.
ⓒ 오마이뉴스 김병기
불교연대 개별단체들, 연석회의 참가 결정

하지만 이날 행사의 사회를 본 이성근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이 말 한마디에 검증단원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습니다.

"조금 전에 불교환경연대에 가입한 100여개의 개별단체들이 '경부운하 반대 연석회의'에 참여한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정책검증단을 이끈 김상화 단장은 "우리는 141개 단체로 출발했으나, 불과 이틀만에 240여개 단체로 불어났다"면서 "이명박 후보가 오는 20일 한나라당의 정식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면 연석회의 참가단체는 눈덩이 불 듯 1만개의 단체가 참여하는 거대 기구로 정식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경부운하 사기'가 깨지기 직전, 낙동강 하구둑 너머로 무지개가 떴습니다. 무지개를 본 지 까마득한데…. 혹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낙동강변-구미·칠곡·대구 지역 : 14일 오후 3시]

▲ 경북 칠곡군 낙동강변에서 골재를 채취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김병기
"먹는 물 둘러싼 갈등 해결 비용은? '국민계산서' 만들자"


정책검증단은 오전에 영강 하류와 낙동강이 흐르는 구미, 칠곡, 대구 지역을 탐사했습니다. 비가 간간히 흩뿌려 조사하는 데 애로를 겪기도 했습니다. 특히 저는 캠코더와 카메라, 그리고 필기도구까지 챙겨야 했기 때문에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장비 때문에 마냥 비를 맞고만 있을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우산을 들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계속됐죠.

사실 경부운하 예정지 현장은 지난 6월 이 지역을 답사할 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 비가 계속 내렸기 때문에 수위가 많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실제 수변 공간이 지난번 답사 때보다 많이 잠기기는 했지만 평균 수심보다 많아야 2-3m정도 올라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낙동강의 유역 면적이 엄청난 양의 강물을 흡수할 수 있을만큼 넓은 것입니다.

경부운하는 '물전쟁' 야기할 것

이곳에 100~300m의 뱃길을 낸다면 무슨 현상이 일어날까요? 김상화 단장은 우선 먹는 물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고 우려했습니다.

"73년부터 낙동강 유역을 답사해왔다. 처음 답사할 때 이곳의 수심은 2~3m였다. 지금은 1m, 3m, 7m…. 종잡을 수 없다. 골재채취로 인해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겼고, 물의 흐름을 정체시키는 조그마한 모래 섬도 생겼다.

칠곡군은 이곳 7개 골재채취장에서 연간 200만 루베의 모래를 파서(97년 이후 3년간 통계) 열악한 자치단체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 대구는 골재채취로 골치가 아프다. 대구 인구 74%의 식수원을 제공하는 취수장에서 모래가 섞인 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170억원을 들여 2.5m 높이의 고무 보를 만들었다. 흙탕물을 1차로 걸러주는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부운하를 만들면 전방위적인 준설 공사가 계속되어야 한다. 먹는 물을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먹는 물을 둘러싼 자치단체들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게 다 비용이다. 경부운하를 건설하려면 14조~20조원이 든다고 이명박씨는 주장하는 데 강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갈등해결 비용까지 합쳐서 '국민 계산서'를 만들어야 한다."

강정 취수장 옮기는데만도 1조4천억... 전국의 취수장을 다 옮기면?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6월 답사 때 만난 문창식 대구 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도 두가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대구의 먹는 물 문제를 해결하려면 천문학적인 추가비용이 들 것이고,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대구가 내륙항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이명박씨의 주장은 대구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이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6월에 쓴 취재수첩을 다시 꺼내들고 문 위원장의 발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낙동강에 배가 뜨는 데 현재의 달서구 강정 취수장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최대 133만톤의 물을 취수한다. 하지만 취수원 이전 문제는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검토했다가 사실상 포기한 사항이다. 현재의 취수원을 안동댐으로 옮기면 1조4000억원이라는 예산이 들었다. 구미 윗쪽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8000억원이라는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했다. 경부운하가 건설된다면 대구 뿐이겠는가. 전국적으로 볼 때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대구가 중부 내륙항? 배로 운반할 물품이 대체 무언가

그리고 이명박씨는 내륙항으로서의 대구를 얘기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 산업의 특성을 보면 운하를 통해서 물류 비용을 줄일만한 산업이 아니다. 과거에는 섬유 중심의 산업이 활발했지만, 이젠 중국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자동파 부품, IT 산업, 디자인, 패션 산업이 주력이다. 앞으로도 거대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의 전환은 힘들 수 밖에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 상황이 이러한 데 벌크 등의 화물 운송에 적합한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대구가 발전할 것이라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 위원장은 이어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준설을 하면 수질이 좋아진다고 말하는 데, 가장 큰 수질오염원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이 지역의 경우 구미 등에 위치한 첨단 공단에서 나오는 난분해성 물질이 골치거리이다, 고도의 정수처리를 해도 계속 검출되는 이런 물질이 강바닥의 모래를 퍼올린다고 해서 정화가 되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정책검증단이 이날 대구를 떠나기 앞서 화원유원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단장은 "대구 표를 얻기 위한 이명박씨의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재난'일 것"이라면서 "이 재난을 막는 데 대구 시민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습니다.

▲ 화원유원지 앞 다리공사 현장. 물살은 세지만 수심은 얕다.
ⓒ 오마이뉴스 김병기
[문경시청 : 14일 오전 9시 5분]

▲ 신현국 문경시장에게 결의문을 전달하고 있는 경부운하 정책검증단.
ⓒ 오마이뉴스 김병기
신현국 문경시장, "관광수익 기대"..."자연훼손의 절경지될 것"


"지역발전 전략 차원에서 봤을 때 경부운하를 근본적으로 찬성합니다."

신현국 문경시장의 말입니다. 예상된 답변입니다. 경부운하가 국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문경의 지역 경제 회복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경부운하 정책검증단은 14일 오전 기자회견을 위해 문경시청을 방문했고, 시장께 '결의문'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즉석에서 10여분간의 면담이 성사됐습니다. 김상화 단장과 신 시장은 평소 안면이 있던 터라 쉽게 면담이 받여들여진 듯합니다.

우선 김 단장은 신 시장에게 자치단체 재정 상황 등 고충을 이해는 하지만, 환경파괴적인 경부운하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서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신 시장의 입장은 명확했습니다.

▲ 신현국 문경시장.
ⓒ 오마이뉴스 김병기
- 경부운하를 찬성하는 것은 문경시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입니까?
"그렇습니다. 지역의 관광 사업과 물류 등 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순기능이 있다고 봅니다."

- 이 지역에 중부내륙철도가 만들어지는 데 물류 측면에서는 크게 이로울 게 없는 것 아닙니까?
"물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철도와 운하 등 다양한 수단이 필요합니다."

-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한번 경청해 보셨나요?
"지역 주민 대다수는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문경의 천혜의 자연 자원이 훼손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개발은 역기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개발하느냐의 문제겠죠. 환경친화적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쫓기는 시간 때문에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대화를 통해 신 시장은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관광 수익 등 지역에 많은 이로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검증단도 이에 대해 공박할 말은 많아 보였지만, 예정된 기자회견과 일정 때문에 경부운하 반대 결의문을 신 시장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예고되지 않았던 만남을 마무리했습니다.

정책검증단은 문경시청을 방문하기에 앞서 문경교에서 잠시 하차했습니다. 간밤에 비가 그토록 쏟아졌건만, 지난 주 내내 비가 끊이지 않았지만, 문경교 아래 강바닥은 그야말로 '발목 수심'. 예상대로라면 이곳이 백두대간을 뚫고 문경쪽으로 나오는 출구지점입니다. 배가 운행할 수 있는 수위를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물을 충주호에서 퍼올려야 할까요? 또 문경시장은 천혜의 자연을 자원삼아 관광 수익을 거두려고 하는데, 경부운하 건설로 자연이 파괴된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 지점에서 핸드마이크를 든 김석태 문경발전연구소 이사장은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이 지역에는 갑문과 도크가 6개정도 들어설 것"이라면서 "엄청난 인공구조물이 생긴다면 이곳은 '자연훼손의 절경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지역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신 시장. 하지만 유람선을 타고 26km의 조령터널을 지나 문경에 와서 숙박할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콘크리트 구조물로 뒤덮일지도 모를 자연경관을 희생하면서까지 경부운하를 건설할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주민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수순입니다. 당신의 임기는 4년이지만, 지역 주민들은 대대로 선조들이 물려준 자산을 토대로 공동체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씨는 아직까지 이런 질문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고, 그 흔한 정보조차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신 시장이 이명박씨의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조령터널 출구 예정지역. 조령천은 비가 왔지만 수심이 얕다.
ⓒ 오마이뉴스 김병기
[진남계곡 숙소 : 저녁 8시]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던 시절의 추억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녔다."

문경에서 석탄산업이 번성했을 당시에 전해져 내려오는 우스개 한토막입니다. 지금은 이 우스개가 과거의 영화로웠던 시기를 씁쓸하게 추억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1993년 문경탄광이 문을 닫은 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문경을 떠났다고 합니다. 따라서 경부운하를 통해 관광산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 어느 곳보다 큰 지역입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저녁 식사를 한 식당의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입니다. (식당 앞의 영강을 가르키면서) 저기를 어떻게 파겠다는 건지, 대부분 바위인데 저기에 어떻게 배가 다니게 하겠다는 건지…. 가능할까요?"

충주 달천쪽에서 백두대간을 뚫고 나오는 지점이 이곳 영강과 조령천입니다. 이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내일(14일)할 예정입니다. 우선 이날 저녁을 먹은 뒤 둘러앉아 하루 일과를 정리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종의 전략회의였습니다.

"이명박씨가 수도권 취수원을 옮긴다고 했을 때 팔당 상류지역 주민들은 큰 기대를 했다. 취수구가 옮겨지면 그동안 주민들의 재산권을 제약했던 13개 규제법, 56개 시행령, 154개의 고시가 없어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간 나왔던 각종 용역보고서를 보면 취수구를 옮길 수 없는 상황이다. 허구였다. 왜 허구인지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홍보가 필요하다."(이광우 한강유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

"이명박씨측은 국민들의 식수로 사용되는 한강과 낙동강의 수질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얘기하는 건 강변여과수다. 하지만 강변여과수로 식수를 제공하는 창원시의 경우 주변 지역에서 경작을 할 수 없도록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나마 현재 창원의 경우 강변여과수로 생산해내는 식수량은 하루 6만㎥이다. 경부운하를 건설하면 식수 문제를 해결해야 할텐데, 시민들의 식수 공급을 위해선 경부운하 500km 구간 양안에 빼곡히 파이프(관정)를 박아야 한다. 이런 상식적인 얘기를 국민들에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장지영 연구원)

"경부운하에는 4가지 키워드가 있다. 식수, 경제성, 환경·생태, 안전 문제 등이다. 우리의 취수원인 한강과 낙동강에 배를 띄우면 식수가 오염될 게 자명하다. 이를 대중들에게 설득하면 된다."(불교환경연대 정우식 사무처장)

결론은 경부운하 공약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고, 만약 현실화될 경우 국민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알려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녁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오늘 일정 중에 비가 간간이 흩뿌리기는 했지만 조사에 불편을 줄만큼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시원스레 내리는 빗줄기. 우리 일행 중 일부는 밤이 늦도록 그 비를 안주 삼아 경부운하를 토론했습니다.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시절, 지하 갱도에서 일을 마치고 광부들이 가끔 고단한 몸을 달랬을법한 진남계곡에서 말입니다.

통일신라가 본 우리나라의 중앙

"통일 신라가 본 우리나라의 중앙이 이곳입니다."

이광우 위원장이 국보 6호인 '중앙탑' 앞에서 한 말입니다. 충주 가금면 탑평리에 우뚝 서 있습니다. 목계나루터에서 탄금대교쪽으로 이동하다가 우리 일행이 잠시 쉬어간 곳입니다.

신라 탑중에 유일한 7층 석탑이라고 합니다. 지난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 부여에서 본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국보 9호)의 수려한 조형미에는 뒤떨어지지만, 규모는 크더군요. 당나라 군대와 연합해 백제를 굴복시킨 통일신라가 그 기상을 드높이기 위해 이곳에 깃대를 꽂았지만 백제의 예술성마저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위원장은 "GPS로 찍어봤는 데 한반도의 중앙은 강원도 양구 펀치볼이 있는 곳"이었다고 말하더군요. 잠시 '중앙'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운하를 통해 제2의 국운융성을 꾀할 수 있다고 고집스럽게 말하는 이명박씨가 한번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경부운하를 좀더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각으로 보아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충주 팔봉교 : 13일 오후 6시]

2조3000억 들인 석회암 터널... 물 닫으면 녹는다


ⓒ 오마이뉴스 김병기
충주의 비경 중의 하나인 수주팔봉. 달천의 상류인 이곳의 물은 지난 6월말에 왔을 때보다 크게 불어나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발목 수심'이었는 데, 팔봉교에 서서 강물을 내려다보니 강바닥의 자갈이 훤히 내비칩니다.

'무릎 수심'? 지난주 내내 비가 온 것을 고려하면 강바닥 전체가 거대한 암반으로 볼 수 있는 이곳의 수심은 크게 변한 게 없습니다. 강폭이 좀 넓어졌고, 물살이 세다는 것을 제외하곤 말이죠. 그만큼 수량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경부운하가 건설된다면 이 근방 어딘가부터 터널이 시작될 겁니다."

김 대표가 다리 교량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 일행들에게 지형을 설명합니다. 바로 눈앞에는 수주팔봉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다 파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강바닥은 모두 암반입니다. 이 바닥을 언제 팔 수 있을지."

장지영 연구원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 말을 잇습니다.

"이명박씨의 주장대로라면 이 근방 어딘가에 배가 45m 높이로 수직 상승할 수 있는 초대형 리프트가 건설됩니다. 그리고 26km 길이의 조령터널로 이어집니다. 터널의 폭은 26m, 높이는 22m입니다. 일반 도로건설 때 뚫는 터널보다 2-3배의 규모입니다. 이곳을 2500톤급의 배가 통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장 연구원은 이어 "이명박씨는 이 터널 공사비만도 2조3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고 하는 데 배가 왕복할 수 없는 단선 구간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라면서 "한쪽에서 배가 오면 다른 한쪽에서는 대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상하행선이 교차해서 운행하려면 5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백두대간 통과 구간은 석회암 지대입니다. 석회암은 물이 닫으면 녹는 성질이 있습니다. 하지만 운하에는 항상 물이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난공사 구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씨는 30개조로 나눠 터널 공사를 동시에 진행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안전에 이상이 없을까요? 이명박씨의 일방적 주장을 믿어야 합니까?

ⓒ 오마이뉴스 김병기
[탄금대교 앞 : 13일 오후 5시]

탄금대교 앞에서 '물전쟁'을 떠올리다


▲ 탄금대교 근방에서 다리공사 한창.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저 다리를 다시 건설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 오마이뉴스 김병기
가야의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충북 충주의 탄금대. 우리 일행은 조정지댐 근방인 탄금대교 앞에 잠시 정차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버스 안에서 이광우 위원장은 마이크를 잡고 연신 자신의 가족사부터 시작해 이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느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이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자결했다는 곳이라고 합니다. 탄금대교 앞쪽까지 쳐들어온 일본군에 맞서 싸웠지만, 패배했고 신립장군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열변을 토하더군요.

이 위원장의 말을 듣다가 문득, 강은 우리의 역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만약 경부운하가 건설된다면 이런 역사, 그리고 강과 함께 흐르는 다양한 우리의 공동체 문화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탄금대교 앞은 충주댐에서 내려오는 강물과 달천의 합수머리입니다. 이명박씨의 경부운하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남한강을 거슬러온 배는 이곳에서 달천쪽으로 강물을 갈아타고 조령터널을 지나 문경쪽으로 운행합니다. 달천은 한강물과 낙동강물을 잇는 지점이 되는 겁니다. 이명박씨는 그래서 "한강과 낙동강물이 만나고, 한강의 물고기와 낙동강의 물고기가 만난다"면서 "끊어진 물길을 이으면 사람의 마음도 이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낭만적인 말입니다.

▲ 달천 표지판
ⓒ 오마이뉴스 김병기
하지만 김상화 대표는 이곳에서 '물전쟁'을 떠올렸습니다.

"달천을 따라가다보면 수량이 극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령터널을 뚫어 이쪽의 물을 문경쪽으로 넘기겠다는 게 이명박씨의 구상입니다. 하지만 충주댐에는 낙동강으로 줄 물이 없습니다. 낙동강을 둘러싸고도 각 자치단체들끼리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형국인데, 경부운하까지 건설된다면 이제 백두대간을 정점으로 물을 둘러싼 큰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장지영 연구원은 자세한 분석을 곁들였습니다.

"이명박씨측은 당초 충주댐에서 주운 용수를 공급한다면서 평상시 충주호의 수위가 141m이기 때문에 125m로 조정하면 이곳으로부터 주운용수 14억톤을 낙동강으로 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충주호의 평상시 수위가 125m이고 홍수 때에만 141m까지 높아지기 때문에 사실상 주운용수로 줄 물은 없습니다. 이게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자 최근들어 하동댐과 도곡댐 등 주운용수 공급댐 2개를 만들어 2.3억톤의 물을 낙동강에 공급하겠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남한강 본류구간을 운행하던 5000톤급의 배에 실린 짐은 2500톤급의 배에 옮겨 실어야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느린 운송수단인 운하, 중간에 또 하역과 선적작업을 한다면 어느 세월에 서울과 부산을 오갈 수 있을지….

신립장군은 패배했지만, 정책검증단은 이곳 탄금대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목계나루터 도착 : 13일 오후 3시 41분]

목계나루터에서 목격한 구시대의 유물 '경부운하'


▲ 목계대교
ⓒ 오마이뉴스 김병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산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계나루터에서 제일 먼저 우리 일행을 맞은 것은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였습니다. 이곳에 나루터가 있을 당시 떠돌이 장사꾼들의 삶과 애환을 토속적 언어로 풀어낸 민요조의 시입니다.

▲ 목계나루터 비.
ⓒ 오마이뉴스 김병기
신경림 시인의 시비 바로 옆에는 이곳이 나루터였음을 설명해주는 안내문이 적혀 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500년전 조선조 초에는 중부 내륙지방의 인구가 소규모로 분산 거주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자급자족시대. 식생활에 필요한 소금, 해산물 등 생활필수품을 싣고 와서 소규모 포구에서 물물교환 상거래를 했다. 조선조 후기에는 인구가 증가해 상거래 양이 많아졌고, 지리적으로 조건을 갖춘 목계나루터가 내항으로 발달했다. 그러나 목계 이상의 상류는 봄, 가을 갈수기에 수심이 앝아 수백섬을 실은 큰 배(장삿배)가 운행할 수 없었다."

그 이후인 1930년경 이 지역에 도로가 개통되면서 목계나루터는 시들해졌고, 73년 목계대교가 건설된 뒤에는 사실상 나루터로서의 명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민일동'이라고 적힌 이 팻말은 '운하'가 구시대 유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도로와 다리 건설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간 뱃길의 흔적. 내항이 형성됐을 당시에는 신경림 시인의 시구에 등장하듯 방물장수가 봇짐을 지고 부산하게 목계장터를 떠돌아 다녔겠지만 지금은 목계나루터 팻말만이 과거의 기억을 아스라히 떠올리게 합니다. 이곳에서 '구시대의 유물' 경부운하를 목격한 셈입니다. 문득, 경부운하를 통해 제2의 국운융성을 가져온다는 이명박씨의 주장이야말로 이곳의 시계를 100여년전으로 되돌리려는 퇴행적 주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목계나루터 앞에 앉아있던 목계의용수난구조대원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니 "지금은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깊은 곳은 수심이 6m정도될 것 같다"면서도 "평소에는 저 아래 지역의 경우 바지를 걷고 건너다닌다"고 말하더군요.

5000톤급의 배를 이곳에 띄울 수는 있겠지만,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까요.


[팔당댐 도착 : 13일 오후 2시]

팔당-잠실 구간은 화강암반층, 수중폭파해 6-9m뱃길 내겠다니


▲ 수문을 열고 물을 방류하고 있는 팔당댐.
ⓒ 오마이뉴스 김병기

쏴-쏴-쏴-.

거칠게 귓전을 때리는 물소리. 팔당댐은 5개 수문을 열고 기염을 토하듯 초당 수백톤의 물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먹장 구름 사이로 잠시 내비친 따가운 햇살이 오히려 시원스레 느껴지더군요. 경부운하 정책검증단의 첫 기착지입니다.

옆의 사람 목소리조차 알아듣기 힘든 상황이어서인지 이강우 한강유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은 핸드마이크를 들고 이곳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광우 위원장
ⓒ 오마이뉴스 김병기
"팔당댐의 수문 구조물의 높이는 20m입니다. 이명박씨는 이 곳에 배를 통과시키겠다는 구상입니다. 도크식, 크레인식, 엘리베이터식 등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배가 이곳을 통과하는데만도 4시간정도 걸립니다."

자신의 고조할아버지가 이곳에서 사공을 했다는 이 위원장은 특유의 입담으로 우스개를 곁들여가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곳은 다 암반입니다. 여기를 6-9m 깊이로 판다는 데 수중 폭파를 하게되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겁니다. 팔당댐부터 잠실수중보까지의 거리는 14.7km. 지질학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의 강바닥은 유명한 화강암반층입니다."

그는 이어 "팔당댐과 잠실수중보 사이의 평균 수심은 2.2m이고, 갈수기 때에는 1.4m에 불과하다"면서 "화강암 지대인 이곳을 6-9m정도 판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짓"이라고 성토했습니다.


[출정식 : 13일 오전 11시]

▲ 전국 141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경부운하 반대를 위한 연석회의'는 13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후보에게 경부운하 공약 철회를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안녕하세요. 저는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입니다.

또 다시 답사 길에 올랐습니다. 올해 들어서만도 4번째입니다. 지난 2월 생태지평연구소 박진섭 부소장, 장지영 연구원과 함께 '운하의 나라' 독일과 네덜란드를 탐사한 데 이어 지난 5~6월에는 2차례에 걸쳐 경기도 여주, 충주 달천, 문경, 구미, 대구 등 경부운하 예정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오늘(13일) 다시 길을 떠납니다. 지금까지의 답사가 그러했듯이 마음이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홀가분하게 떠나는 그런 여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저한테 많은 위안이 되는 것은 이번 답사 길에 동행이 부쩍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답사 길에 동행했던 사람은 불과 2~3명이었는데, 이번에는 20여명이 대절버스에 몸을 싣고 이명박씨의 '제1공약' 검증 길에 나섰습니다.

비단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전국의 141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부운하 반대를 위한 연석회의'가 구성됐고, 13일 오전 서울 세종문회회관 앞에서 출정식을 한 정책검증단(단장 : 김상하 낙동강 공동체 공동대표)의 현장 답사 길에 취재차 동행하는 것입니다. 생태지평과 <오마이뉴스>가 지난 10여개월동안 쏟아낸 수많은 특집기사(경부운하, 이명박 발목잡다)가 단순히 공허한 외침이 아니었다는 방증입니다.

이명박씨는 틈만 나면 경부운하 반대론자들을 향해 "10년동안 경부운하를 연구한 100명의 학자가 있다"고 강변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수십년간 우리나라 '강 지킴이'로 일하고 있는 141개 단체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경부운하를 반대하겠다고 나선 것일까요?

▲ 지역에서 올라온 시민단체 회원이 경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의 펼침막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그들과 함께 1박2일간의 경부운하 예정지 답사를 하면서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개발주의 망령이 국토를 배회하고 있다."

이들이 오늘 출정식에서 발표한 결의문의 첫 구절입니다. 이번 답사를 통해 오는 대선을 앞두고 떠도는 그 망령의 실상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검증 버스' 안에서 말입니다.

혹시 검증단에게 물어볼 사항이나, 경부운하와 관련해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이 글에 댓글을 달아주십시오. 정책검증단과 협의해 답변을 달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첫 기착지인 팔당댐에 도착했군요. 5개의 수문에서 세찬 강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강물을 보면서, 문득 이명박씨가 만약 경부운하를 계속 추진한다면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 #한반도대운하, #한나라당, #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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