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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 ⓒ 허선행
침엽수림의 타트라 국립공원
침엽수림의 타트라 국립공원 ⓒ 허선행
침엽수의 호위를 받으며 드디어 우리의 숙소인 타트라국립공원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어제도 깨끗하고 쾌적한 호텔에 묵었었지만 오늘은 들어서는 길부터 더욱 맘에 든다. 주변의 나무와 풀밭, 빨간 지붕을 보니 저절로 '언덕위의 하얀 집'이란 노랫말이 흥얼거려졌다.

호텔 앞 풀밭 광경. 저 나무막대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궁금하다.
호텔 앞 풀밭 광경. 저 나무막대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궁금하다. ⓒ 허선행
어떤 용도로 쓰이는 건지 모르지만 같은 모양의 나무막대가 풀밭 곳곳에 꽂혀있어 궁금하기도 하고 석양이 아름다워 모두 풀밭으로 나갔다. 사진도 찍고 일상의 탈출에서나 해 볼 수 있는 '나 잡아 봐라'를 하면서 캠코더로 즉석 영화도 찍고 주변산책을 했다. 멀리 바라보던 아름다운 풀밭은 가까이 가봤다. 하지만 양과 소의 배설물이 있어 밟을까봐 조심스러웠다.

언덕에 서서 오스트리아 가기 전에 연습을 미리 해 두어야 한다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흉내를 내며 '도레미송'을 여럿이 각자의 음계를 맡아 부르기도 했다. 나는 '도'음을 맡았는데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 처음부터 웃음바다가 되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달려 온 2007년 중 가장 한가롭고 즐거운 시간이다. 지금 한국은 34℃를 넘는 기온에 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린다는데 피서를 온 것 같다. 피서치고 좀 멀리 왔지만 말이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페치카에 장작이 지펴져 있었고, 우리 일행이 앉아 있는 모습이 귀족들의 모습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한 여름인데도 페치카에 불이 켜진 식당
한 여름인데도 페치카에 불이 켜진 식당 ⓒ 허선행
어제 가이드가 폴란드 역사에 대해 설명 할 때 귀족이야길 하도 많이 들어서 환상이 비친 것처럼 말이다. 우리를 배려해서 동그랗게 모양낸 밥까지 얹어 나온 저녁은 훌륭했다. 집에서 먹던 밥처럼 차진 밥이 아니고 아남미라 끈기가 없어 아쉽긴 했다.

여기서 더 바라면 욕심쟁이지 싶어 뜸이 덜 든 밥이라고 생각하며 허겁지겁 먹었다. 누군가 가져온 고추와 고추장을 찍어 먹으며 행복해하는 분들을 보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국 사람인 듯했다. 우리끼리 먹는 오붓한 식탁이라고 낙지젓갈에 파래 김부각까지 내놓은 분이 있어 행복한 저녁을 들고 있는데 와인까지 곁들이니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분위기에 취해 맥주도 먹어보고 와인도 한 잔하니 몸 따로 마음 따로 긴장이 풀어져 기분이 좋아졌다. 이래서 술을 즐기게 되나보다. 여행 와서 술 배우게 생겼다. 무어라 꼭 집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이야길 들으며 즐거워하는 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하니 더 바랄게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식당 옆 베란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추위가 느껴질 정도니 한 여름의 행복한 밤이다.

내 방으로 돌아와 짐정리를 했다. 내일은 서둘러 출발해야 헝가리에 점심에 도착한단다. 누가 모닝콜을 하지 않았는데도 새벽 3시30분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새벽부터 환한 바깥풍경도 보고 남편과 이번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아침식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보다 여자는 화장하는 시간이 더 걸리기에 서둘러 하는데도 남편은 벌써 창밖에 나가 내 이름을 여러 번 부른다. 창밖의 세레나데도 아니고 내 이름을 부른 것 뿐 인데도 기분이 좋다. 부지런히 내려가 보니 그새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 한 바퀴 산책을 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른다며 우리 일행 분들과 남편이 손을 흔드는 게 보인다. 부부가 서로 찾아다닌 꼴이다. "우리 마누라 없어진 줄 알고 걱정했다"는 남편의 장난어린소리도 듣기 싫지는 않다. 이렇게 서로를 찾게 되고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니, 여행이라서 가능한 것은 아닐까?

동구의 알프스라 일컬어지는 타트라 국립공원을 벗어나 헝가리로 향했다. 목적지는 부다페스트! 오늘은 어부의 요새. 성이슈트반 성당도 가고 다뉴브 강 유람선도 탄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앞으로 6시간을 버스로 이동해야 한단다.

부다페스트에서 먹은 김치찌개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마이크를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돌아가며 애창곡도 한곡조하니 지루하지 않았다. 평야와 달리는 차가 무료해질 무렵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라는 말에 모두들 기운이 나는 눈치다. 현지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내색도 못하고 몰래 라면을 먹던 부부의 목소리에 특히 힘이 들어간다.

드디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저 멀리 물이 보인다. 제 각각 냇가다 강이다 옥신각신하는데 알고 보니 다뉴브 강이란다. 그런데 재미난 일은 그 유명한 다뉴브 강보다 김치찌개에 관심을 두는 눈치다.

김치찌개는 애초의 우리 생각과 달리 별 맛이 없었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던 걸까? 오히려 현지식이 더 낫다는 생각들을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던 밥에 김치까지 있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춧가루까지 더 넣어 먹었다.

오이무침에 무생채까지 반찬은 많지 않았지만 타국에서 처음으로 밥다운 밥을 만났다. 고향음식이나 시골밥상을 받은 느낌으로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두부를 골라먹는데 입 천정이 얼얼하다. 매운 음식을 그동안 먹지 않아서 입이 놀랐나보다.

음식을 날라다 주는 종업원들은 헝가리사람으로 보여 이 식당의 주인은 누구냐고 했더니 생각대로 한국 사람이란다. 주인은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현지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에서 먹는 맛을 내기 어렵다고 한다. 아쉬운 대로 한식을 맛 본 날이다.

가이드가 싫어하는 관광객이 있다?

기온이 34℃! 지난 주에 무려 39℃까지 올랐었다는 말에 그래도 오늘은 조금 났구나 싶다. 자꾸만 그늘로 들어가고 싶은데, 어부의 요새 위에 올라가야 국회의사당과 다뉴브강을 잘 볼 수 있단다. 우리 일행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늘로 들어가고, 유럽인들은 그대로 햇볕에 앉아 있다. 꼭 일광욕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양산을 쓴 사람은 묻지 않아도 모두 한국인이다.

가이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줄 아느냐고 묻는다. 모두 의아해 하고 있는데 "책 들고 오는 사람. 세계사 선생님, 연대 묻는 사람"이라고 알려 준다. 우리 일행은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일행 중에 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담당하는 분이 계셨고, 그 분은 유럽에 관한 책을 항상 가지고 다니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분의 입장에서는 알고 있는 만큼 질문도 많이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이드가 우리 일행 중에 그런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들려 우리는 그 선생님께 모두 시선을 주며 웃을 수밖에. 배꼽 쥐게 하는 가이드의 언변도 여행에 따라오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헝가리 전경
헝가리 전경 ⓒ 허선행
한낮의 더위로 뜨거워서 올라서기가 꺼려졌지만 부다페스트며 국회의사당, 다뉴브강까지 보이는 곳이라니 '어부의 요새'로 올라가야 했다. 어부의 요새는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새를 만든 곳이라고 하는데, 7개 고깔 모양의 탑으로 되어 있다. 나라를 세운 일곱 마자르족을 상징한다고 한다.

어부의 요새
어부의 요새 ⓒ 허선행
마차시 교회는 여러 가지 색의 타일지붕이 특이하게 보였으며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라고 한다. 외관을 수리중이라 좀 복잡했다. 이곳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해서 신경이 온통 가방으로 갔다. 다들 가방을 몸 앞으로 돌려 멨다.

마차시교회 내에 있는 왕관
마차시교회 내에 있는 왕관 ⓒ 허선행
여행 중에 가장 더운 날이다. 안으로만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성이스트반 성당에 들어섰다. 성당 중앙 돔의 높이가 96m라는데 마자르족이 처음으로 자리 잡은 연도를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영웅관장에는 가브리엘 천사동상을 중심으로 역대 왕과 영웅들을 조각해 놓은 곳이다.

성이스트반 성당의 돔 내부
성이스트반 성당의 돔 내부 ⓒ 허선행
용사의 광장
용사의 광장 ⓒ 허선행
오늘은 어제에 이어 너무나 많이 걸어 힘든 하루였다. 저녁 때 굴라쉬 스프를 먹으러 가는데도 모두 더위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굴라쉬 스프는 헝가리의 대표음식인데 파프리카를 사용한 스프다. 유리나라 육계장과 비슷한 맛이었다. 파프리카에 소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 등이 들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악사들이 전통악기를 연주해 줘서 그나마 피곤이 풀리고 흥이 났다.

굴라쉬 스프와 빵을 먹으며 악사들의 연주를 들었다
굴라쉬 스프와 빵을 먹으며 악사들의 연주를 들었다 ⓒ 허선행
저녁을 먹은 후 다뉴브 강으로 유람선을 타러 갔다. 낮에 보던 전경과는 많이 다르다. 비가 자주 와서 전 세계 사람들 중 수백 명을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글루미선데이'의 배경이 되었다는 곳이라지만 오늘은 햇볕이 따가운 날이었기에 저녁바람이 상쾌하고 노을도 멋지다.

헝가리를 모두 렌즈에 담으려는 우리 일행 중의 막내
헝가리를 모두 렌즈에 담으려는 우리 일행 중의 막내 ⓒ 허선행
우리 일행 중에 가장 막내인 대학생은 올해 한 명문대학에 입학을 했다. 지인의 딸인데 딸 둘이 시집가면 언제 네 식구가 함께 여행 할 수 있겠냐며 큰 맘 먹고 이번 여행을 왔단다. 단체 사진 찍을 때도 어른들은 무표정하게 찍기 마련인데 갖가지 귀여운 포즈를 취해 우리 일행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다뉴브강에서 세체니다리와 야경을 찍으려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몰래카메라처럼 살짝 뒤에서 찍어봤다. 이번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중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젊음이 부러워서일까?
#알프스#타트라#헝가리#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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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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