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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일주문. ⓒ 김대갑
낙산사와 더불어 동해의 대표적인 해수관음사찰인 등명낙가사는 멀리 신라시대까지 그 연원이 올라간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선덕 여왕 때 자장 율사가 지었다고 하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수다사'였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의 왜구를 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절을 창건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확인된바 없는 전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연원이 사실이든 아니든 동해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는 사찰의 고즈넉한 향기는 일주문을 지나는 순간 온 몸을 휘감고 돈다. 오달지게 불어오는 해풍의 상큼함과 더불어….

등명낙가사에는 절의 폐쇄와 관련된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고려를 쿠데타로 뒤집고 등장한 조선 왕실은 숭유배불이란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행한다. 그리고 그 정책의 희생양을 부지런히 찾고 있었는데, 바로 등명낙가사가 걸려든 것이다. 등명낙가사가 한양의 정동 쪽에 있어 궁궐에서 먼저 받아야 할 태양의 기운을 먼저 받는다는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그 결과 등명낙가사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대만힌국 정동' 표시.
'대만힌국 정동' 표시. ⓒ 김대갑
이 외에도 등명낙가사에는 절의 폐쇄와 관련된 전설이 2개 더 전해져 온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 왜병들의 방화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시 조선 왕실과 관계가 있다. 조선 시대 어느 왕이 안질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래서 점술가에게 물어보니, 한양의 정동 쪽에 있는 어느 절에서 쌀뜨물을 동해로 흘려보내 용왕이 놀라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왕은 특사를 파견했고, 특사가 와서 보니 절 앞바다가 뿌옇게 변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찰을 폐쇄했다고 한다. 이 전설 안에도 '숭유배불'이란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숨어 있다.

등명낙가사는 지난 1956년 경덕스님에 의해 재창건 되었다. 절에는 몇 가지 볼거리가 정갈하게 숨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의당 오백나한이라 할 수 있다. 이 오백나한은 인간문화재이자 도예가인 유근형 옹이 심혈을 기울여 청자로 구운 작품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나한군집으로써, 나한 들 하나하나의 표정이 모두 달라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돌 탑 사이로 보이는 동해.
돌 탑 사이로 보이는 동해. ⓒ 김대갑
오백나한전에 가서 참배의 예를 깊숙이 올린 후, 영산전과 극락보전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극락보전 옆의 오솔길을 따라가면 만월보전이라 쓰여 진 약사전이 나타나는데, 이 약사전에서 동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장쾌함은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어찌 그리 동해의 물이 푸르고 청청한지. 조물주가 인간에게 내린 가장 신비한 색감은 분명 푸른색일 것이다.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불쾌감과 유쾌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색이 바로 푸른색이 아니더냐. '블루'라는 색깔이 주는 이중성을 유감없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약사전 앞이다.

약사전 앞에는 5층 석탑이 하나 외롭게 서 있는데, 원래 자장 율사는 똑같은 석탑을 세 개 세웠다고 한다. 그 한 기가 약사전 앞에 세워졌고, 또 하나는 약수터 옆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절이 바라보는 동해안에 세웠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탑을 만들었던 돌 조각과 탑의 기초가 바다 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등명낙가사에서는 사찰의 오래된 향을 느끼지는 못한다. 예전에 조성된 모든 흔적이 깡그리 사라졌기 때문에 잔잔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그리움이 없다. 그러나 그런 그리움과 향은 없어도 동해를 바라보는 넉넉한 품새만은 느낄 수 있다. 그 넉넉한 품새는 일주문을 지나가기 전에, 붉은 기운을 발하는 약수터에서 발견 할 수 있다.

붉은 색깔의 약수.
붉은 색깔의 약수. ⓒ 김대갑
등명낙가사를 둘러 본 사람은 반드시 이 약수를 먹어 보아야 한다. 이 약수를 처음 먹어 본 사람은 시큼하면서도 톡 쏘는 맛에 약간 비위가 상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약수는 철분을 다량 함유한 탄산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 색깔도 약간 붉은 빛이 감돈다. 그러나 맛은 다소 이상해도 몸에 좋은 약수임에 틀림없다. 특히 부인병이나 신경쇠약, 빈혈증 등에 약효가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물로 피부염이 난 곳을 씻으면 약간의 효과를 볼 수도 있으니 진정한 의미의 약수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런 귀한 약수를 아낌없이 대중들에게 나누어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넉넉한가.

동해의 숨겨진 사찰, '등명낙가사'. 진정한 정동의 지위를 가진 이곳에서 푸른 물감으로 채색된 동해를 바라보며 작은 위안을 삼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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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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