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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김선희 기자] 여성들이 지방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여성 귀농자, 문화예술인, 여성 농민운동가 등 주로 외지에서 지역으로 들어간 여성들이 젊은 피, 새로운 일꾼이 되어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7월 2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개최한 제3회 '국가 균형 발전의 성주류화 포럼'에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변화와 혁신을 이뤄낸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간의 경험을 나눴다.

6년 전 전북 진안군으로 귀농해 생태농업을 해온 김선화씨. 그는 최근 진안군 최초의 여성 마을 간사로 채용돼 여성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농촌마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 부래미 마을이 시댁인 고경필씨는 5년 전부터 마을 홍보 담당을 맡아 아름다운 마을 조성과 체험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마을 혁신을 이뤄냈다.

경기도 안성의 대안미술 공간 '소나무' 최예문 관장은 2002년 남편과 함께 안성에 정착한 후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교육으로 안성을 문화예술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데 일조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전문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오미란씨는 광주·전남 지역혁신연구회 교육국장으로 일하며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 혁신을 이루도록 '사람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여성 리더로 불리는 이들이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녹록치는 않았다.

"남자들이 하는 논농사는 '누워서 하는 농사'라고 말할 정도고 사실 쪼그려 앉아서 하는 힘든 밭농사는 거의 여성 노동력으로 채워지는데, 육아와 가사를 여성이 전담하다 보면 결국 귀농 3년 이내에 탈농을 하게 된다"는 게 김선화씨의 설명이다. 그가 마을 간사로 채용되면서 특히 젊은 여성 귀농자들이 지역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 진안군이 홍삼 특구로 선정되면서 원광대 한방약초벤처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는 새로운 지역 발전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공식 직함이 마당쇠일 정도로 부래미 마을의 변화를 위해 헌신해온 고경필씨 역시 체험 프로그램 운영에서 누락된 지역민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다. "어려운 농가일수록 먼저 돕고 싶은데 서비스 만족도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는 그는 "전화로 1시간씩 욕을 퍼부을 때도 있지만 덕분에 오래 살겠거니 생각한다"며 의연함을 보였다.

그는 주민들과 합심해 쌀농사로 2억의 수입을 벌어들이던 부래미 마을에 체험 프로그램과 농산물 직거래를 도입,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마을 여성들이 남편이 주는 생활비에만 기대지 않고 대부분 개인통장을 갖게 되었다. 강당, 세미나실, 숙소 등을 갖춘 부래미 그린스쿨 건립을 앞두고 “솔직히 앞으로 운영할 걱정 때문에 잠이 안 온다”는 그이지만 2015년 주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겠다며 포부를 밝히는 모습이 당차다.

전기, 전화도 연결되지 않은 경기도 안성시의 골짜기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대안미술 공간 ‘소나무’의 터를 닦은 최예문씨도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의 거부감을 우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교류”하기로 결심했다. 소나무에서는 현대미술 전시와 작가와의 만남,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한다. 그는 2005년 문화관광부 공모로 지역 예술인들의 작업실을 연계해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해 높은 호응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시와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3년째 열리고 있다. 여성들의 참여를 위해 천연 염색 프로그램을 도입, 올해는 안성시민 6000명이 참여하는 대형 공동작업 ‘평화의 조각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안성시는 최근 ‘세계적인 예술문화의 도시’로 비전을 설정하고 예술마을 가꾸기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역 혁신에 앞서 지역을 가꾸고 이끌어갈 사람을 혁신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오미란씨는 전국적으로 주민 대상 혁신 교육에 앞장서왔다. 전여농 창립을 주도했던 그는 주로 남성 농민들만 참여해온 지역 혁신 교육에 여성의 참여를 강조했다. 오씨는 “의도적으로 부녀회장, 여성 이장을 교육에 참여시킬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지자체나 남성들이 여성을 혁신 리더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균형위원회나 분권위원회에 참여하는 여성도 균형위 1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역의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한 그는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여성들은 늘 소외된다”며 “참여정부의 거대 담론인 분권, 혁신에서 여성은 완전히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하지만 “여성은 남성과 달리 지역에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자유롭다”며 여성들이 가진 조정·융합 능력의 강점을 제시했다. 실제 여성위원장이 지역 혁신을 추진하는 마을의 경우 섬세한 프로그램들이 민주적으로 잘 진행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진안군의 김선화씨 역시 지역 활동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고 했다. “지역에선 남성들은 인맥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해요. 사업을 끌어와 건물만 지어놓으면 다 끝난 걸로 생각하죠. 유지, 관리, 운영으로 연결하지 못해요. 반면 여성들은 그런 일을 더 잘하죠.”

여성들이 지역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활약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분에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여성 리더들의 하나같은 주장이다. 오미란씨는 마을의 여성 이장이나 여성 위원장의 비율을 늘리고, 혁신 리더 육성에서 여성을 배려하는 지자체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김선화씨는 젊은 여성 농민들이 교육을 받고 사회적 활동도 할 수 있도록 육아 지원 제도를 주문했다. 또 여성들도 농민으로 인정받아 교육에 참여하고 사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농정부의 부부 공동 명의 발급을 주장했다.

이날 포럼의 사회를 맡은 여성정책연구원 김경희 박사는 “지역의 여성 리더 키우기가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며 균형 발전과 지역 혁신에서 여성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태그:#여성, #귀농, #정책,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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