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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일은 양평현장에 가야 하니까 아침은 5시에 간단히 먹고 가야겠어."

서울과 경기도 인근의 건설현장에서 전기공사를 하는 직업 특성상 현장이 집 하고 멀면 새벽밥을 먹고 출발해야 한다. 시계를 새벽 4시 반에 맞추어 놓고 일어나자마자 얼굴에 물을 묻히고 준비해둔 공구며 작업복을 챙기면 그 사이 아내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차려둔다.

오늘은 누룽지탕이다. 혹시 중국요리 가운데 찹쌀 누룽지를 튀겨서 해물과 채소를 넣어 만든 고급음식을 생각하시면 곤란하다. 그냥 말린 누룽지를 물 넣고 팍팍 끓인 말 그대로 누룽지탕이다.

사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눈뜨자마자 위장에 뭘 채운다는 행위는 위에 부담이 가고, 입맛도 없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어느 TV프로그램을 보니까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어야 건강하다고 의사선생님이 목에 힘을 주어 강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죽으면 죽었지 아파서는 안 되는 가장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먹기 싫어도 먹어둬야 한다. 일단 위에 넣어두고 천천히 되새김질하면 된다.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탄 다음 팔당대교를 건너 계속 양평으로 가다가 6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양평군 월산리가 나온다.

양평은 2008년도에 전철이 들어서고 서울과 가까운 이점 때문에 별장이나 전원주택이 많이 생기고 있다. 요즘은 유치원 같은 교육기관이나 교회에서 생활관을 많이 짓고 있다.

가다가 같이 일할 사람들이 기다리는 성남 모란시장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 말없이 눈인사만 하고 하나 둘 차에 탄다.

"배 안고파?"
"밥도 못 얻어먹었어? 새벽에 일 나가면서 밥도 못 얻어먹고 나왔냐? 나 같으면 일 안 간다."
"자식, 돈도 쥐꼬리만큼 벌어다 주고, 마누라 새벽잠 설치게 하면서 유세는."
"반장님, 가다가 김밥집 있으면 세워줘요. 대충 한 줄 사서 시장기나 때우지. 뭐."


은색 쿠킹 포일에 감긴 1000원짜리 김밥을 몇 번 씹다가 목에 넘기고 나서 다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다.

현장에 도착하니 목수와 철근 아저씨들은 벌써 손과 발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다. 지난번 현장에서는 흑룡강 성에서 온 조선족 아저씨 팀이 움직였는데, 이곳은 나이가 들긴 했어도 안양에서 온 국내팀들이 걸쭉한 농담을 뿌리며 철근을 세우고 그 철근에 옷(거푸집)을 입히고 있다.

우리는 그 철근과 철근 사이에 피브이씨(PVC) 파이프를 넣고 나중에 콘센트나 전화 텔레비전이 놓일 자리에 맞추어 적당한 높이로 L자를 만들어 세운 다음 시멘트가 못 들어가도록 테이프를 발라둔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얼추 철근과 철근 사이에는 온갖 배관이 이리저리 나무뿌리처럼 자기가 갈 곳으로 뻗어가고 있다.

식사는 차를 타고 20분쯤 가면 있는 낚시터 주인아저씨에게 사정사정해서 배달을 부탁했다. 목수, 철근, 전기, 설비팀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다. 이번에는 젓가락이 빠져서 숟가락으로 밥과 국, 반찬을 먹어야 했다.

간혹 볼 멘 소리가 나오지만 우리가 아쉬운 입장이라 식당 아저씨와 싸우면 밥을 먹으러 읍내로 가야 한다. 그러면 밥 먹고 잠시 쉴 시간도 없다. 배가 어느 정도 차면 공사현장 근처 그늘로 간다.

노가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흔히들 말하는 3D업종의 선두 주자다. 요즘 건설현장에서 30대는 찾아보기 힘들고, 20대는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나도 내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은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나는 노가다가 일본말인지 한국말인지 유식한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일본말 '도카타'가 우리식으로 노가다라고 발음된다고 했다. 하지만 소설가 황석영씨의 <어둠의 자식들>에 노가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꼭 맞는 것 같지는 않다.

노가다의 뜻을 정확히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평생 남의 집이나 아파트, 빌딩을 수백 채를 지어도 자기가 쉴 17평 공간 하나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노가다들의 낙은 무엇인가. 대개가 하루 일하면 하루 품삯이 나오는 일당 장이 인생이다. 이들은 의료보험도, 고용보험도, 산재보험도 거리가 멀다. 그래서 더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 산다. 비가 오면 놀고, 눈이 오면 쉬고, 몸이 아프면 앓고, 한 달 동안 죽도록 일한 임금을 떼어도 큰 소리 한번 지르고 쉽게 체념하는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손가락 마디마다 옹이진 그들의 거친 손과 햇볕에 그을린 주름진 얼굴을 보라. 이들이 못 배우고 똑똑하지 못해서 당연한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을 헛산 거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하늘까지 올라간 고층빌딩과 모래알처럼 많은 아파트는 그냥 모래와 철근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강원도에 가까운 이곳은 지리상으로 경기도지만 강원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오늘 경기지역 일기예보는 맑다고 했는데, 무슨 변덕인지 검은 구름이 저만치 보인다.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다. 비가 아니더라도 서둘러 배관을 하고 국도를 빠져나가야 한다. 주 5일 근무가 된 다음부터 금요일 오후부터 놀러 나온 차들이 길을 막으면 길에서 3시간은 까먹어야 한다.

작업공구를 한 사람은 챙기고 나머지는 마무리를 시작한다. 나는 도면을 들고 혹시 빠진 곳은 없나 점검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건물 속 시멘트 안이 온통 철근과 피브이씨(PVC) 파이프와 각종 전선이 혈관처럼 지나다니는 것을 알까. 그 철근 속에 스민 노가다들의 땀과 눈물이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을 밝히고 더운물을 콸콸 쏟아지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

좌우간 우리 몸에 작은 뼈가 하나만 빠져도 중심을 잡을 수 없듯이 배관도 하나라도 놓치면 나중에 양생된 시멘트 옹벽을 해머 드릴로 깨부숴서 배관을 다시 해야 한다.

모든 배관은 돌고 돌아서 중간에 끊어진 곳 없이 한 곳에서 만나도록 설계되어있다. 우리네 삶도 언젠가는 원점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다행히 빠진 곳이 보이지 않는다. 계곡 사이 흐르는 물에 땀을 대강 걷어내고 우리 팀은 하나 둘 더블 캡에 오른다.

읍내 슈퍼에 들러 시원한 캔 맥주를 한 캔씩 돌리면 갈증이 조금 해갈되려나, 운전자만 빼고 모두 땡볕에 지쳤는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그래 푹 자두게나, 내일은 평택 현장이니까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야겠지. 노가다의 땀내 나는 하루가 한강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양수리 근처에서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MBC 여성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양평#노가다#건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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