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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송림.
보경사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송림. ⓒ 문일식
매표소 입구에서 천왕문까지 가는 길과 펼쳐진 송림의 느낌이 참 좋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드는 길은 자갈로 깔아 다소 인위적인 맛을 풍기지만, 길옆으로 펼쳐진 우아한 송림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발아래 밟히는 자갈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하다. 짧지만, 인위적이고 현실적인 길과 고풍스럽고 예스런 느낌의 송림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보경사 천왕문 사이로 5층석탑과 적광전이 보인다
보경사 천왕문 사이로 5층석탑과 적광전이 보인다 ⓒ 문일식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때인 603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지명법사가 중국 유학을 다녀올 때 팔면보경을 전해 받게 되는데, 이 팔면보경을 묻고, 절을 지은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보배로운 거울을 묻고 지은 절이라 하여 보경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600여년 후 고려 고종 때 원진국사가 대대적인 중수를 하고, 여느 사찰처럼 오랜 세월 동안 모진 풍파를 겪고 중창과 중수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진국사의 이곳에 머물던 때를 기려 입적한 뒤 세운 원진국사비와 그의 부도가 보경사 경내에 남아있다.

일주문을 시작으로 천왕문을 거쳐 오층석탑과 적광전, 대웅전이 남북의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고, 대웅전 뒤편으로는 팔상전,산신각,원신각,영산전,명부전이 'ㄱ' 형태로 앉아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려는데 다른 사찰에서는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신방목이다. 신방목은 기둥 밑에 초석을 받치듯이 앞뒤로 받치는 짧은 각목을 말하는데, 특히 앞면에는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하게 된다.

보경사 천왕문 앞 사자모습을 하고 있는 신방목.
보경사 천왕문 앞 사자모습을 하고 있는 신방목. ⓒ 문일식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는 태극무늬가 많은데, 이곳 보경사 천왕문의 경우에는 좌우에 사자를 한 마리씩 조각해 놓았다. 앞발은 잔뜩 힘을 주고, 뒷다리는 포개 앉아 있다. 근엄함을 대변하는 듯 풍성한 꼬리가 무척 인상적이다. 사자라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을 버텨온 터라 조각도 옅어지고, 힘이 없어 보인다. 여름날 더위에 지친 강아지 모습이거나 잔뜩 웅크린 개구리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그래서였나보다.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적광전에도 사자를 새긴 신방목이 있다.

보경사 천왕문과 적광전 사이에 있는 오층석탑의 자물쇠 문양
보경사 천왕문과 적광전 사이에 있는 오층석탑의 자물쇠 문양 ⓒ 문일식
천왕문과 오층석탑, 적광전의 공간은 간격이 그리 넓지 않다. 오밀조밀한 여느 가정집의 마당 같은 느낌이다. 서 있는 오층석탑은 금당탑이라고도 불리는데, 보수하면서 석재를 갈아 끼워 한복 저고리에 양복바지를 입혀놓은 느낌이 든다. 여느 석탑처럼 몸돌에 자물쇠가 천왕문과 적광전을 바라는 쪽으로 새겨져 있는데, 특히 적광전 쪽에 새겨진 자물쇠는 매우 현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마치 진짜 자물쇠를 채워 놓은 듯 그 오랜 시간동안에도 또렷하다.

보경사에는 큼지막한 비사리 구시가 있다. 비사리 구시는 부처님의 공양을 마련하는 구유를 말하는데, 비사리는 '벗겨놓은 싸리의 껍질'을, 구시는 '구유'를 말한다. 대체로 거찰에는 그 옛날 영화로웠던 시절을 대변하는 듯 하나씩 있게 마련이다. 보경사의 비사리 구시는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나라의 제사 때 절을 찾는 사람들이 밥을 퍼먹을 수 있도록 쓰인 도구이고, 약 4000명분의 밥을 담았다고 한다.

보경사 대웅전 뒷편에 있는 비사리 구시.
보경사 대웅전 뒷편에 있는 비사리 구시. ⓒ 문일식
비사리 구시는 대체로 전각 뒤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세가 컸던 시대의 산물인데, 지금 쓰이지 않는다하여 건물 뒤편에 옹색하게 놓인 모습이 무척 안Tm럽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눈길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는 소나 말이 쓰는 구유로 전락하고 만다. 아쉬울 뿐 이다.

대웅전 뒤편에 올라서면 높은 기단위에 고만고만한 전각들이 지붕을 나란히 5채가 연달아 있다. 맨 왼쪽부터 부처님의 생전 8가지 모습을 안치한 팔상전, 불교와 토속신앙의 한 면을 보여주는 내연산 산신을 모신 산신각, 보경사를 거쳐 간 스님들의 영정을 보관하는 원진각, 부처의 16명 제자인 나한상을 안치한 영산전, 그리고 마지막에 'ㄱ'자로 꺾인 지하세계를 관장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명부전이 그것이다. 전각들이 모두 다닥다닥 붙어있어 필연적으로 맞배지붕을 얹은 모양이다. 마치 단단히 스크럼을 짜고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보경사를 한 바퀴 둘러봤으니 이제 내연산에서 굽이굽이 이어져 내려오는 12폭포 둘러봐야 한다. 보경사를 품어 안은 내연산은 문수봉과 930m에 이르는 향로봉 사이에 있는 산으로 예전에는 종남산으로 불리다가 신라시대 진성여왕 때 견훤의 침입으로 이 산에 머무른 후 내연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연산을 오르는 사람도 많지만, 대체로 연산폭포까지의 트레킹을 즐기는 유람객들이 더 많은 것 같다. 12개의 폭포는 쌍생폭포를 시작으로 쌍폭인 관음폭포와 그 위로 같이 어우러져 최고의 폭포로 각광받는 연산폭포를 지나 복호폭포, 시명폭포로 마무리 된다. 이제 영화 '가을로'에 나왔던 그 길을 곱상하니 걸어볼 시간이다.

보경사 담장을 따라 만들어진 시멘트 수로를 따라 맑디맑은 물들의 걸음이 무척 힘차다. 어제 내린 비로 더욱 맑아진 듯하다. "오늘 폭포구경 한 번 제대로 하겠구나" 싶었다. 괜히 신바람이 난다. 얼마가지 않아 물길 건너편으로 서운암을 지난다. 이곳 서운암에는 11기의 부도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마치 작은 안식처처럼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돌담 위로 부도의 상륜부가 언뜻언뜻 보이는데 내려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12폭포 유람을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내연산 12폭포 중 상생폭포
내연산 12폭포 중 상생폭포 ⓒ 문일식
적당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12폭포 찾아가는 길은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인 듯 하지만 돌이 많아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운암을 지나면서부터 만나는 물줄기는 한동안 사람들과 함께 한다. 흐르는 땀을 잠시 씻어주고, 맑은 물속에 발을 담그며 시원한 휴식을 주기도 한다. 가장 먼저 만나는 폭포는 상생폭포다. 커다란 바위 양 옆으로 굵은 물줄기를 뿜어낸다. 어제 내린 비로 수량이 많다보니 낮은 폭포인데도 그 위용이 당차다.

내연산 깊은 골짜기로 바람이 불고 있다.
내연산 깊은 골짜기로 바람이 불고 있다. ⓒ 문일식
서서히 계곡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도란도란 재잘재잘 대며 흐르던 물줄기는 어느새 저 아래로 작별하고, 나는 구름을 타고 오른 듯 저 아래 깊은 계곡을 바라보고 있다. 깊은 골짜기 속으로 바람이 드나들고, 산자락을 훑으며 지나가는 바람은 나뭇잎을 요란스럽게 흔들어댄다. 나뭇잎이 춤을 추자 나무들이 춤을 추고, 나무들이 춤을 추니 산 전체가 춤을 춘다. 어느새 산자락은 한바탕 일렁임이 인다. 덕분에 흐르던 땀방울도 이내 멎었다. 시원하다.

어느새 보현암 입구까지 이르렀다. 이 깊은 산속에 작은 암자가 있다. 재밌는 것은 입구에 어울리지 않게 자판기가 서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지만 잠시 쉬어가며 따뜻한 커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괜찮은 여유이자 휴식이다.

내연산 12폭포 중 관음폭포와 연산폭포를 만나러가는 구름다리.
내연산 12폭포 중 관음폭포와 연산폭포를 만나러가는 구름다리. ⓒ 문일식
보현암에서 관음폭포와 연산폭포에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관음폭포 앞에 당도하니 더욱 더 멋진 절경이 사방을 감싸고 있다. 관음폭포 위로 기암절벽이 병풍을 두른 듯 하고, 관음폭포 옆으로는 둥글고 깊게 파인 관음굴이 보인다. 관음 폭포 위로는 연산폭포의 위용을 감상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구름다리가 있다. 밝은 주황색의 구름다리가 유난히 눈에 띈다.

관음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또한번 떨어져 끝없는 계곡여행을 한다. 관음폭포 앞 반석에 앉아 수려한 경치를 둘러보는데도 그리 지루하지 않다. 두 손을 뒤로 짚으며 다리를 꼬고 앉아 풍경을 담아도 좋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 폭포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시 눈을 붙여도 좋을 듯하다. 관음폭포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다면 연산폭포에서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학소대의 기암절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폭포수도 장관이지만, 구름다리 끝에 서서 바라보는 폭포는 마치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학소대를 타고 떨어지는 유난히 흰 포말과 폭포 끝에서 깊은 소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검은 물색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거기에 잿빛 하늘까지…. 둘러보니 나무들만 컬러다.

비온뒤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산폭포
비온뒤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산폭포 ⓒ 문일식
구름다리 시작점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구름다리와 연산폭포가 어우러진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아침도 거르고 올라온 이곳에서 간단한 아침을 나눈다. 빵과 우유, 제법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지만, 유난히 맛있다.

주변에 사는 녀석인지 다람쥐 한마리가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을 탄 자연 속에는 뭇 야생동물도 사람을 탄다던데…. 이곳 다람쥐도 예외는 아닌가보다. 빵조각 하나 던져주니 이내 물고 멀찍이 내려앉아서 먹는다. 다람쥐가 단팥빵을 먹는 모습이란…. 그래도 경계하는 모습은 갖추었으니 그나마 사람의 손을 덜 탄 듯하다.

시원한 계곡에서 시원함을 맛보고 있는 동료.
시원한 계곡에서 시원함을 맛보고 있는 동료. ⓒ 문일식
하염없이 떨어지는 폭포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다. 내려가는 길도 쉬엄쉬엄 여유롭다. 양말을 벗어들고, 물에 발까지 담그니 오늘 여정의 여유는 절정에 이른다. "아 좋다~~"라는 말이 몇 번이나 나왔던가. 이제 내연산은 그만큼 머릿속으로 깊숙하게 각인되고 있었다. 발바닥이 뽀송뽀송해지고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다. 나는 듯한 발걸음, 보경사가 가까워 질 무렵 문득 아쉬움이 고개를 든다.

"나 지금 포항에 있는 내연산에 와 있거든. 근데 산이 되게 좋다 .폭포가 12개나 있는데 다 예쁘고, 올라가는데 힘들지도 않아서 너도 좋아할 것 같고, 다음에 같이 한번 와 볼까 해서…", 영화 '가을로'에서 김지수가 유지태에게 남기는 메시지다. 내연산, 친구나 연인끼리 같이 한 번 와볼만한 아름다운 곳인 것만은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내연산과 보경사 여행은 어떻게 할까?

★ 찾아가는 길 : 
포항에서 7번국도 영덕방면, 화진교 건너기전 좌회전 후 직진하면약 7km지나 보경사 입구 도착

★ 여행정보 :
보경사 입구 상가 주차장에 주차 후 보경사 매표소까지 걸어가거나 매표소 주변 리조트에 댈 수 있으나 확인해야한다.
(주말은 아무래도 힘들 듯...)
보경사 매표소 앞에 공터가 있지만 주차 불가능하다.
보경사 입구에서 연산폭포까지 넉넉하게 3시간(보경사 포함)이면 된다.
12폭포는 보경사를 지나서 가야한다.(입장료 대인기준 2,000원)
먹거리는 보경사 입구나 보경사 매표소 입구 앞에 식당이 많고, 
숙박은 보경사 매표소 입구에 연산파크(http://www.yeonsanspa.com/main.html)가 있어 온천도 같이 즐길 수 있다.
보경사 입구 상가에는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곳이 많이 있다.


#내연산#12폭포#보경사#연산폭포#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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