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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회 거창국제연극제
ⓒ 성하훈
지난 27일부터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고 있는 경남 거창군 위천면의 수승대 주변은 아침부터 피서객들로 가득 찬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와 폭염을 피해 시원한 강가를 찾은 사람들로 물가와 주변 숲 속이 빼곡할 뿐이다.

그 주변으로 거창연극제의 홍보부스와 천막극장 등이 보이기는 하지만 낮시간대 수승대 계곡은 그저 단순한 피서지에 불과하다. 연극제를 알리는 깃발이 펄럭이고 애드벌룬이 하늘에 떠있기는 해도 무더위의 열기는 연극보다는 시원한 물가에만 관심을 갖게 만든다.

거창국제연극제가 생기를 띠는 시간은 무더위가 시나브로 사그라들 무렵. 하루의 피서를 마친 사람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해거름을 즐기려 할 때쯤 낮시간 내내 잠잠히 있던 배우들과 극장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켜며 극장 주변이 분주히 움직인다.

▲ 물놀이를 즐기며 야외공연을 보는 피서객들
ⓒ 거창국제연극제
물론 오후 시간대 야외무대 무지개극장에서 펼쳐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온 화려한 민속 음악과 춤이 물가에 있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며 연극제 기간임을 각인시켜 주기는 한다. 강변에 설치된 무대를 통해 시원한 물놀이를 즐기며 볼 수 있는 현란한 공연은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거창연극제가 수승대 주변의 피서객들에게 안겨주는 선물이다.

매일 오후 5시쯤이면 어김없이 광장 한가운데 나타나 마임을 펼치는 독일 스타피큐렌 <사커맨>도 연극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호각 소리와 함께 축구선수 모양의 인형을 들고 와 축구공으로 관객들에게 장난을 거는 모습에 모여든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마임에 동참하며 '순결한 욕망과 그 끝없는 상상'을 즐길 마음의 준비를 다진다.

강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물가를 벗어나고 어둠이 주위에 내리깔릴 즈음 낮 동안 잠잠했던 극장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이곳저곳 활기가 느껴지는데, 이때부터 연극제는 관객들에 대한 유혹을 시작한다.

시원한 바람 속 정취 있는 야외극장의 낭만

▲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축제극장
ⓒ 김아리라
저녁 7시를 넘어 수승대로 들어오는 차량은 대부분 거창연극제에 올려지는 작품을 보러온 관객들. 어둠이 짙게 깔리며 천막에 불이 들어오고 8시를 전후해 막을 올리는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면 활기를 찾은 무대의 조명은 생기가 넘친다. 물가에서 즐기던 물놀이 피서가 연극을 만나는 문화 피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언제 더웠느냐 싶을 정도로 계곡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야외극장에서 즐기는 연극은 대학로 지하공간의 갇힌 실내에서 보던 연극과는 다른 맛을 선사한다.

돌담으로 둘러쳐진 돌담극장과 돌거북 등위로 비석이 버티고 서 있는 구연서원에 위치한 거북극장은 그 자체로도 매우 특색있는 공연장이다. 타원형의 노천극장 형태를 띠고 있는 축제극장 또한 가장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유력 작품의 공연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 구연서원에 마련된 거북극장 입구
ⓒ 성하훈
지역의 소소한 공연행사에 불과했던 거창연극제가 국제연극제로 발돋움한 데는 정취있는 곳에 꾸며진 야외극장의 역할이 컸다. 14세기 교황이 살았던 교황청 건물과 중세 오래된 건축물들이 극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아비뇽을 벤치마킹한 것이 이처럼 특색있는 공연장을 만들어놓은 기초라고 한다.

이런 야외극장은 연극뿐 아닌 뮤지컬 마당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소화시키며 거창연극제에서 만나는 연극의 맛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이 때문인 듯 거창국제연극제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피서지에서의 저녁시간, 술잔을 기울이거나 딱히 정해진 일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늦은 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찾는 연극공연은 또 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후 연극을 한 편도 못 봤으나 거창연극제가 연극 볼 기회를 제공해 줬다"는 윤호영 주부는 지난해에 이어 2회째 거창연극제에 참여한다고 했다. "시간이 안 맞아 <한여름 밤의 꿈>을 못보고 독일 연극을 선택했다. 올해도 작년처럼 6편 정도의 작품을 관람할 계획"이라며 연극제에 대한 들뜬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경에서 왔다는 조시원씨는 올해로 4회째 참여한다는 마니아 관객. 연극과 뮤지컬을 기회 되는대로 자주 본다고 소개한 그는 관람을 마친 서도소리 풍물굿에 대해 "두 팀이 같이 공연을 하는데 통합해 주는 기획이 아쉽다"며 예리한 관람평을 던져주기도 했다.

거창연극제가 아니면 쉽사리 연극을 접할 수 없는 지역 학생들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감나무극장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던 중학생들은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제목이 끌려서…"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시아의 아비뇽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 한국서도소리의 <철물이 재수굿>
ⓒ 성하훈
▲ 가면을 쓰고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종일 집행위원장
ⓒ 성하훈
지난 27일 연극제 개막식에서 명예위원장 자격으로 단위에 오른 이강두 의원은 "거창연극제가 세계적으로 '거창'한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거창연극제는 대외적으로 아시아의 아비뇽을 꿈꾼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막식의 느낌은 거창연극제가 단순한 지역축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엿보여줬다. 연극인들보다는 연극제를 지원하는 관(官)의 위치가 커보였기 때문이다.

행사적인 내용보다는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개막식에서 관객들에게 가면을 나눠주고 그것을 착용하게 한 이벤트나 외국인 연출가가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개막선언을 한 것은 국제연극제의 의미를 드러내려는 시도로 신선했다.

그러나 그 의도를 제대로 살린 사람은 가면을 쓰고 나와 인사말을 한 이종일 위원장과 개막선언을 맡은 하르베씨 뿐이었다.

개막식에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이나 축사를 한 연극인 또한 이종일 집행위원장과 연극협회 박계배 이사장 두 사람뿐. 거창군수와 경남도 행정부지사, 명예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역 국회의원의 축사나 격려사 등은 지역적 특성상 꼭 필요한 부분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대외적으로는 아시아의 아비뇽을 꿈꾼다는 거창연극제를 지역축제로 국한시키는 듯한 인상을 갖게 했다.

특히 도지사를 대신해 축사를 한 부지사는 "(전임 군수였던 현 지사가) 고향인 거창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고 예산지원 등에도 많이 신경 쓰고 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 못해 죄송하다"고 말해 이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 한국을 빛낸 연극인전
ⓒ 성하훈
10년여만에 세계 유수한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정치인이나 관료가 단상에 오르는 것은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개막선언을 하는 부산시장이 유일하다는 것을 거창연극제가 새겨볼 대목이다.

또한 멋진 야외극장이라는 하드웨어에 비해 거기에 수반되는 소프트웨어가 충족되지 못하는 부분도 국제연극제에 걸맞은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공연 간간이 극장으로 침범하는 외부의 소음이나 대사 전달력이 약한 음향시스템은 야외공연을 기대만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약점으로 보여졌다. 외국 작품 공연시 내용과 엇갈리는 자막. 외국관객들을 위한 영문자막 제공 등도 거창국제연극제가 관객들을 위해 좀 더 배려할 부분으로 여겨진다.

생명평화운동가 이야기 마당, 평론전 등 예정
제19회 거창국제연극제 주요 공연 작품 및 부대행사

▲ 연희단 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거창국제연극제

19회째를 맞는 이번 거창연극제를 관계자들은 10, 50, 210으로 표현한다. 10개국 50개 작품 210회 공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부터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 거창국제연극제는 오는 15일까지 뛰어난 작품들이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이미 인천시립극단의 <한여름 밤의 꿈>이 멋진 오프닝을 장식했고 7월 31일까지 독일 인형극단 헬미의 <귀신놀이로의 초대> 극단 신화의 <아구찜과 삼겹살> 등 10여개 작품의 상연이 끝났다.

8월 1~2일 대표적인 마당극패 진주 큰들문화센터가 거북극장에서 이산가족의 애절한 사연을 <순풍에 돛달고>에 담아 한판 놀이판을 펼치며, 한국의 대표적 연출가 이윤택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공연이 9~11일까지 3일간 예정되어 있다.

3일~5일 제의와 놀이의 <무하유지향>과 4일~6일 극단 성좌가 펼치는 <소나무아래 잠들다> 또한 주목되는 작품. 외국작품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은 6~7일 일본 제7극장의 <반녀&규상>이나 12~13일 일본 퍼핏파크의 <순환업보> 등을 선택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부대행사로 주목되는 것은 8월 10일 오후 3시에 예정된 '한반도 생명과 평화를 위한 액팅'의 <생명평화 6인에게 듣는다>. '한반도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개인의 역할'을 주제로 도법(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단장), 이병철(전국귀농운동본부장) 황대권(생태운동가) 박두규(시인) 김민해(풍경소리 발행인) 김경일(성공회 신부)이 김규항씨의 사회로 2시간 동안 생명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특히 한반도 생명과 평화를 위한 액팅은 준비과정에서 이례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는데, 북한소개관 운영, 통일교육 커뮤니티, 통일OX퀴즈 준비되어 있어 경찰이 행사 내용을 알기 위해 방문하는 '특별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전무송씨의 특강 <연극과 나의 길> 8월 4일 오후 2시에 예정돼 있고 학술세미나가 '야외극의 뉴 프로젝트'를 주제로 8월 5일 개최될 예정이며, 평론가들이 작품을 평하는 'KITF평론전'이 해당되는 작품의 공연이 끝난 직후 관객과의 대화 형식으로 14일까지 매일 펼쳐진다. 극단 민중의 <귀족수업>은 8월 3일 공연 뒤 평론이 예정되어 있으며, 4일에는 경기도립극단의 <결혼>, 5일에는 극단 성좌의 <소나무아래 잠들다> 등이 평론가들과 만난다.

태그:#거창국제연극제, #연극, #야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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