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누드사진'은 야하고, 자극적이고, 탐미적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감에 부풀어 지난 27일 인사동에 위치한 김영섭사진화랑을 찾았다. 김영섭사진화랑은 오는 9월 3일까지 개관 4주년 기념 누드사진전 'Body'를 전시한다.

푹푹 찌는 바깥 날씨와 달리 화랑 안은 시원했다. 아담한 화랑 안은 고동색 나무 바닥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옅은 노란색 조명이 흰색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사진들을 운치 있게 비추고 있었다.

벽을 따라 아라키 노부요시, 빌 브란트, 호소에 에이코, 헤무트 뉴튼, 이리나 이오네스크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야한 사진' 보러 간다는 생각에 들떠있던 기대와는 달리 사진들은 별로 자극적이지 않았다.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위 말하는 야동에 나오는 '벗은 몸'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사진의 '수위'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너무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누드사진이라면 그저 '벗은 몸을 찍은 야한 것'이라는 잘못된 통념 때문일 수도 있다.

여체의 왜곡... 거부감 혹은 신선함

일본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작품의 대부분은 에도시대 풍속화인 유키요에와 게이샤 등 에로티시즘과 연결되어 있다. 다양한 포즈로 꽁꽁 묶여있는 여자를 찍은 '결박 시리즈'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결박 시리즈의 하나인 <신세기>(2000)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성의 상체가 밧줄로 묶여 있고, 발가벗은 하체는 음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음부 옆으로는 살이 접혀 생긴 주름 몇 줄이 보인다.

결박 시리즈에는 일본의 억압된 성문화에 대한 비판과 사창가를 전전했던 그의 유년시절이 녹아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하체만 벗은 몸으로 밧줄에 돌돌 묶여 있는 여성의 모습에 거부감이 들 뿐이었다.

▲ 빌 브란트 <누드의 원근법>(1961)
ⓒ 빌 브란트

빌 브란트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이다. 그는 <누드의 원근법>(1961)에서 인체의 한 부분만을 확대하여 촬영하는 대담한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해 현실에 없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사실 흑백이라는 것도 현실의 공간이 아니다.

또한 그는 여성의 곡선을 아름답게 찍는 것이 특기이다. <누드의 원근법> 속 여성의 허리에서 엉덩이,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선의 부드러움이 사진을 통해 느껴졌다. 그리고 허벅지의 크기가 과장되어 있음에도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어색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 호소에 에이코, <해바라기 노래>(1992)
ⓒ 호소에 에이코

일본작가 호소에 에이코의 '루나 로사' 시리즈는 여체를 다양한 기법으로 왜곡시켜 표현한다. 루나 로사는 사진 인화 기법의 하나이다.

그는 11살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때 보았던 잔상이 사진 작품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사진 속 검은색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그의 잔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흉터를 반영한다.

<해바라기 노래>(1992)를 보고 있으면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보다는 특이한 인화기법과 사진이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강렬한 분위기에 매료된다.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필름의 인화기법만을 이용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입은 몸 vs 벗은 몸... 성인 몸 vs 어린아이 몸

헬무트 뉴튼은 패션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60년대 <보그>, <퀸>, <엘르>, <플레이보이> 등 세계적인 패션 잡지와 일하면서 패션 누드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 헬무트 뉴튼, <입은 몸>(1981)
ⓒ 헬무트 뉴튼

▲ 헬무트 뉴튼, <벗은 몸>(1981)
ⓒ 헬무트 뉴튼

<입은 몸>(1981)은 패션쇼 무대에서 멋진 옷을 입고 있는 모델들의 사진이고, <벗은 몸>(1981)은 같은 포즈로 알몸으로 서 있는 사진이다. 패션쇼를 보며 '저 사람의 벗은 몸을 어떨까'라는 상상은 해봐도 실제로 사진으로 대비시켜 보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보통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입은 몸>에서는 남성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벗은 몸>에서는 확연히 여성임이 드러나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모델들의 몸매가 빼어나다 할지라도 체모까지 드러낸 벗은 몸으로 포즈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 이리나 이오네스크, <거울의 신전>(1977)
ⓒ 이리나 이오네스크

이리나 이오네스크는 퇴폐적이지만 고전적인 신비함을 담고 있는 사진들로 유명하다. 9살 난 친딸을 모델로 한 누드 사진 시리즈 <거울의 신전>(1977)은 윤리적인 비난을 받았지만 동시에 작품성 역시 인정받았다.

2차 성징이 채 시작되지 않은 어린 여자 아이를 누드모델로 인식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놀라웠다. 이리나는 옷을 입은 아이들은 한없이 천진난만하고 순수해 보이지만 다른 각도로 보았을 때 성인 이상의 에로티시즘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을 사진으로 증명했다.

9살 난 그의 딸은 사진 속에서 고혹적이고, 매혹적이고, 깊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사진 앞에 놓여있는 방명록에는 '훔쳐가고 싶다', '어쩔 수 없는 건 여체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누드는 솔직하다', '에덴동산이 생각난다' 등 다양한 감상이 적혀있다.

나도 방명록에 한 마디 남겨야겠다.

'누드사진이 반드시 야한 사진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군요. 벗은 몸이라는 하나의 소재가 작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왜 남성 누드 사진은 별로 없을까요?'

"그냥 취향 대로 느끼면 됩니다"
[인터뷰] 큐레이터 한영혜(27)씨

- 누드사진 전시회를 열게 된 계기는?
"누드는 몸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말합니다. 벗은 몸을 그냥 찍으면 'naked'이지만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면 'nude'가 됩니다. 'naked'가 아닌 'nude'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 끝에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 전시회를 통해 관람객이 어떤 것을 느끼길 바라나?
"그냥 그 사람의 취향, 성향 대로 느끼면 됩니다. 사진작가가 기획한 대로 배워가는 것은 현대적 시각이 아닙니다. 보시는 분의 역사와 느낌, 취향 대로 느끼면 됩니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보는 사람을 위해 열어놓은 공간을 본인이 확장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진이 A라는 것을 표현한다고 해 A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전근대적인 사고입니다."

- 전시회를 보러오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연령대는 남녀노소 다양합니다. 특히 저희 화랑은 다양한 나이대의 골수팬이 많습니다."

- 전시회를 본 후 사람들의 반응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사진들이 눈에 딱 와 닿는다고 합니다. 대체로 몸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 앞으로의 전시계획이 있다면?
"올해 초반에는 근대 사진작가와 원로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많이 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현대 사진작가와 젊은 사진작가의 개인전을 열 생각입니다. 현대사회의 삶과 밀접한 사진들을 많이 보여줄 예정입니다. 또한 한국 작가들의 전시회에 주안점을 둘 생각입니다."

태그:#김영섭사진화랑, #누드사진전, #빌 브란트, #호소에 에이코, #헬무트 뉴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