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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산은 소양댐과 춘천댐 사이에 있다. 아침 이른 시간이면 물안개 피어올라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작은 도봉산이라고도 한다.
용화산은 소양댐과 춘천댐 사이에 있다. 아침 이른 시간이면 물안개 피어올라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작은 도봉산이라고도 한다. ⓒ 윤희경
제일 먼저 만난 꽃이 참나리다. 폭염 아래서 만난 참나리 꽃은 키가 훌쩍한데다 화려한 꽃 매무새로 눈이 부시다. 그러나 줄기는 흑자색이고 점이 나 있다. 겨드랑이에도 흑자색 실눈을 하나씩 끼고 있다. 이를 구슬 눈(주아)이라 한다.

황적색 꽃이 옷을 홀라당 벗고 밑에서부터 피어올라간다. 꽃무늬가 호랑이 얼룩을 닮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여섯 장의 꽃잎은 피어나자마자 '볼 테면 보란 듯' 뒤로 돌돌 말려 온 몸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꽃잎마다 검은 반점이 박히고 부끄러워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참나린 키가 훌쩍하고 아름다운 꽃이지만, 시리고 서러운 세월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요.'
참나린 키가 훌쩍하고 아름다운 꽃이지만, 시리고 서러운 세월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요.' ⓒ 윤희경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길게 꽃 밖으로 나와 있다. 꽃 밥은 짙은 적갈색이다. 립스틱을 짙게 바른 여인처럼 보기만 해도 서늘해온다. 꽃 밥을 손으로 '톡' 건드리면 역겨운 냄샐 풍기며 손등에 달랑 내려앉는다.

참나리는 황적색 꽃잎을 빼놓고는 줄기와 주아 모두 흑자색이다. 그리고 꽃마다 검은 반점이 박혀 있고 땅만 내려다보고 핀다. 또 냄새도 역겹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랜 옛날, 양지말에 처녀와 총각이 사랑을 했단다. 둘이는 곧 결혼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심술궂은 원님 아들이 이들의 사랑을 훼방 놓고 시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는 처녀에게 총각을 버리고 자기 곁으로 와 같이 살자고 했다. 그러나 처녀가 끝내 마음을 열지 않자 죽여 남몰래 양지말 산 속에다 묻었단다.

붉은 얼굴엔 검은 티 반점이 들어와 박혀 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역겨운 냄새가 난다.
붉은 얼굴엔 검은 티 반점이 들어와 박혀 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역겨운 냄새가 난다. ⓒ 윤희경
다음해 여름부터 복 때가 되어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대지가 끓어오르면 산과 들에는 서러운 꽃이 피어난다. 참나리 꽃이다. 서러워 하늘을 쳐다보지 못한다. 원님 아들이 가까이 다가서면 여지없이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마요'하며 짙은 적갈색 꽃물을 쏟아내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자 여전히 역겨운 냄새가 난다. 뿐만 아니다. 그 때마다 검은 실눈(구슬 눈, 정식 명칭은 '주아')을 사르르 뜨고 접근하는 남자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어쩌다 꽃 밥을 잘못 건드리면 몸에 날아와 지워지질 앉는다.

주아로 영양번식을 하다 익으면 땅에 떨어져 발아를 한다. 이를 구슬눈, 또는 실눈이라고도 한다.
주아로 영양번식을 하다 익으면 땅에 떨어져 발아를 한다. 이를 구슬눈, 또는 실눈이라고도 한다. ⓒ 윤희경
참나리 수술은 상징적일 뿐이다. 겨드랑이마다 주아를 만들어 놓고 영양번식을 한다. 꽃이 지고 얼마 있다 주아가 땅에 떨어져 발아를 한다. 스스로 만들어 발아하기 때문에 모체와 형질이 똑같다.

쓰리고 서러운 수많은 세월을 살다보니 줄기도 검고 주아도 검고, 붉은 꽃잎 엔 온통 검은 티 반점이 가득하다. 서러워 얼굴을 들지 못한다. 운명을 뒤틀어 놓은 하늘이 미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일까, 참나리의 꽃말은 '순결, 존엄'이다.

하늘말나리는 참나리와는 달리 하늘을 보고 당당히 피어난다. 잎이 우산을 닮아 우산말나리라고도 한다. 주근깨가 박혀 깜찍스럽고 귀엽기 그지없다.
하늘말나리는 참나리와는 달리 하늘을 보고 당당히 피어난다. 잎이 우산을 닮아 우산말나리라고도 한다. 주근깨가 박혀 깜찍스럽고 귀엽기 그지없다. ⓒ 윤희경
서럽고 시린 참나리를 대신해 하늘만 보고 피어나는 꽃이 있다. 하늘말나리이다. 자주색 반점에 주근깨도 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 신들에게 참나리님의 서러운 사연을 전해 드리고 올게요, 너무 서러워하지 말고 노여움을 푸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당당한 하늘말나리가 오늘따라 더욱 시원해 보인다.

타래난초는 배배꼬여 뱅글뱅글 돌아가며 밑에서부터 피어난다. 잔디밭이나 무덤가 밭둔덕에 많다. 잔디 뿌리에 있는 박테리아를 교환하며 공생한다고 한다.
타래난초는 배배꼬여 뱅글뱅글 돌아가며 밑에서부터 피어난다. 잔디밭이나 무덤가 밭둔덕에 많다. 잔디 뿌리에 있는 박테리아를 교환하며 공생한다고 한다. ⓒ 윤희경
휘파람을 불며 털레털레 하산을 하다 어느 무덤가를 보니 하늘을 보고 밑에서부터 피어나는 분홍색 꽃이 또 있다. '타래난초'다.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풀꽃. 한쪽으로만 고집스레 피어나 몸을 비비꼬는 실타래, 배배 꼬여 빙글빙글 돌아가며 꽃을 피운다. 타래난초. 아이스크림 스크류바처럼 볼수록 시원하다. 아, 멋쟁이 타래난초.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우측상단 주소를 클릭하면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참나리#타래난초#하늘말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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