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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 전경. 주변에 재건축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 전경. 주변에 재건축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일단 꿈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잠실에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꿈이다. 이른바 '제2 롯데월드-슈퍼타워'. 작년말에 공개된 빌딩 조감도엔 첨성대 모양이 그려져 있다. 112층에 높이만 555미터였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6일 롯데의 이 같은 계획을 허가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비행기 운항 안전논란을 비롯해 교통대란, 환경파괴와 오염, 집값불안 등 그동안 제기된 문제 때문이다.

서울시와 롯데쪽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특히 롯데의 충격은 자못 크다. 지난 14년동안 강남 최고의 노른자위 땅을 단지 총수 오너의 평생 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발을 미뤄왔기 때문이다.

14년째 터만 팠던 112층 신격호의 첨성대

롯데그룹이 4일 공개한 제2롯데월드 슈퍼타워 조감도.
롯데그룹이 4일 공개한 제2롯데월드 슈퍼타워 조감도. ⓒ 롯데그룹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잠실 롯데호텔 맞은편, 제2 롯데월드 건립은 지난 1988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롯데쪽은 서울시로부터 8만7450제곱미터짜리 땅을 819억원에 사들였다. 롯데는 이 땅에 당초 104층짜리 건물을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 98년 인근 서울비행장의 고도 제한에 막혀 36층짜리(143m) 건물을 짓겠다고 허가 받았다. 이후 롯데는 제대로 된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재계에선 일단 건축허가를 받아놓고 고층 빌딩 건설을 위한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리곤 2002년, 롯데는 현재처럼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면서 구조변경안을 내놨다. 공군쪽이 반발했다. 비행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지부진하던 이 사업은 작년 4월 서울시에서 "비행안전에 문제없다"면서 롯데쪽의 손을 들면서 급반전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서울 랜드마크 조성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이후 롯데는 첨성대를 본뜬 슈퍼타워 조감도를 언론에 공개했고, 오는 2011년 완공되면 세계최고의 기념비적 빌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군도 물러서지 않았다. 비행안전 위험을 다시 지적하면서, 지난해 6월 국무조정실에 행정협의조정을 신청했다. 이후 공군은 555m짜리 빌딩이 들어서면, 서울공항을 이용하는 항공기와 충돌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그동안 몇 차례 연기됐던 국무조정실 행정협의조정위는 "203m 이하로 지으라"고 최종 결정했다. 현행법상 조정위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일단 신격호 회장의 '꿈'은 사라진 셈이다.

왜? 계속된 항공안전, 교통대란, 집값불안 논란

이번 롯데의 좌절에는 공군의 반대가 컸다. 공식적으론 항공기의 이착륙 비행기 안전문제가 나온다. 하지만 서울공항 활주로와 시설 변경비용 부담을 롯데쪽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하지만 롯데쪽은 부인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공군이나 어떤쪽으로부터 서울공항의 활주로나 내부시설 교체 비용 부담을 제안받거나,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교통대란과 환경오염 논란도 여전했다. 이 부분은 이미 제2롯데월드 건립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은 98년 이후 꾸준히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정도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잠실 일대 재건축 아파트가 고층으로 지어지고, 40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등이 잇달아 들어서고 있다. 게다가 송파신도시와 마천뉴타운 건설까지 예정돼 있어, 제2롯데월드까지 들어설 경우 사상최악의 교통대란이 뻔하다는 것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 도시계획센터 부장은 "이미 대규모 구 시가지에 엄청난 규모의 빌딩을 아무런 원칙 없이 세우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정부의 이번 결정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00층이 넘어서도 결국 시민들이 이용하는 것인데도, 이에 대한 안전이나 환경, 경관 등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논의된 적이 있는가"라며 "앞으로 초고층 빌딩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 입장에선 제2롯데월드 건축 승인이 집값 불안요인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정부의 이번 결정이 있기 한달전부터 인근 잠실 주공5단지 아파트값이 1억원씩 오르는 등 주변 집값이 크게 오르기도 했다.

정부의 불허 방침이 전해진 27일 잠실 일대 부동산은 하락세를 보였다.

85세 신격호의 결단은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 롯데그룹
그렇다면 롯데의 슈퍼타워 건설은 물 건너간 것일까. 초고층 빌딩 건설을 추진해 온 서울시와 롯데쪽은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길 꺼리고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정부의 결정이 아쉽긴 하지만 현재로선 (롯데쪽 안대로) 건설하긴 어렵지 않겠나"라며 "롯데쪽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나오는 차기정부에서 재추진 가능성에 대해,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꺼렸다.

재계쪽의 분석은 엇갈린다. 신격호 회장이 건재하는 한 자신의 꿈을 쉽게 접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서울 강남 한복판의 엄청난 부지를 10년이 훨씬 넘게 놀리면서 사업을 추진해왔는데…"라며 "(신 회장이) 쉽게 접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 회장의 나이가 올해 85세로 고령인 점인데다, 소송 등을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그룹 후계자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롯데 주변에선 신 부회장은 굳이 초고층 빌딩을 짓지 않고, 그룹 수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롯데그룹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아직 공식 결정을 통보받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바 없다"고 밝혔다.

올해로 85세를 맞는 신격호 회장은 이제 자신의 꿈을 접을지, 다른 용도로 쓸 것인지, 내년이후를 다시 기약할지, 그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신격호#첨성대#초고층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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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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