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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는 더 이상 유도거와 이랑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가까이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랑이 나가보니 구귀가 전투로 인해 무뎌진 도끼를 마구 휘둘러 대며 직접 거란군 장수를 참수하고 있었다.

“무슨 짓이오! 장군께서 놓아주라 하지 않았소!”

이랑이 쫓아가서 따지자 구귀는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소리 질렀다.

“장군께서는 손짓만 했을 뿐 어떤 처분을 내린 적이 없다! 게다가 어디서 여진의 계집년이 눈을 부라리며 간섭하느냐!”

그 말에 이랑이 뭐라고 따지기 전에 먼저 유도거의 두 손이 구귀의 가슴팍을 힘차게 떠밀었다.

“이 놈!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마라!”

얼떨결에 뒤로 밀려나간 구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끼를 고쳐 잡으며 유도거를 손가락질 했다.

“네 이놈! 여진의 못난 계집년에게 빠져 사리분별을 못 하는 게냐?”

“너에게야말로 사리분별이 뭔지 가르쳐 주마!”

유도거도 칼을 뽑아들며 마주섰다. 그런 유도거를 이랑이 잡고 말렸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러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놓으시오. 저런 놈은 내가 버릇을 가르쳐 놓으리다.”

“뭐라! 이놈이 아주 미친 모양이구나!”

이미 피를 본데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이성을 잃은 구귀가 도끼를 치켜드는 순간 벽력같은 양규의 호통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이놈들! 이게 무슨 짓들이냐!”

유도거와 구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빨리 무기를 집어던지고 바닥에 꿇어앉았다. 양규는 그들의 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가 다시 한 번 엄하게 소리쳤다.

“이런 일은 엄하게 벌할 일이나 싸움이 급하니 전공을 세워 속죄하도록 하라. 싸움터에서 물러남이 있다면 이 일까지 물어 엄히 처벌하겠다!”

유도거와 구귀는 더욱 고개를 깊이 숙인 후 양규가 지나간 후에야 각자 무기를 집어 들고 서로를 한번 노려 본 후 등을 진채 걸어 나갔다. 멀리서 김달치는 이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얕은 한숨을 쉴 따름이었다.

그때, 고려군이 검차를 점검하며 진영을 짜고 있을 무렵 전령이 긴급히 달려왔다.

“아뢰오! 거란군의 기병이 이리로 전진해 오고 있습니다!”

거란의 기병은 말을 타지 않은 채 말들을 이끌고 걸어서 고려군의 진영이 보이는 곳까지 다가왔다. 이는 말의 힘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습관화된 거란군의 전술이었다.

“모두 들어라.”

시뻘겋게 모습을 드러내는 아침 햇살을 등지고 양규가 병사들의 뒤에서 가래가 걸걸하게 끓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지면 죽지만 이겨도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죽지 마라.”

지휘관은 싸움에 앞서 함부로 죽음을 입에 담지는 않는 법이였기에 병사들은 잠시 숙연해졌다.

“여기 있는 자들은 전부 이 땅의 소중한 자식이다. 어느 누구도 하찮은 목숨은 없다. 죽지 마라.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 싸워라.”

병사들은 양규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앞을 노려볼 뿐이었다. 멀리서는 거란군이 말에 올라 돌진을 위한 진형을 천천히 갖추고 있었다. 거란군도 대오가 안정된 고려군을 바라보며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와아!”

자욱한 흙먼지를 날리며 거란군의 기병은 쐐기꼴로 진형을 짜고 좁은 길로 송곳처럼 달려 들어섰다.

“쏴라!”

고려군의 노와 궁이 허공을 가르며 앞으로 뛰어드는 거란 기병의 몸을 꿰뚫었다. 선두 열이 무너지자 뒤를 다르던 열이 엉기며 연이어 무너져 거란군의 첫 돌격은 간단히 저지되었다.

하지만 거란군은 단 한 번의 돌격으로 고려군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두 번째 거란 기병이 다시 쐐기꼴로 돌진해 왔고 그들 역시 고려군의 노와 활에 제압당해 전진하지 못하자 세 번째 네 번째 거란기병이 계속해서 고려군의 진영으로 달려 나갔다.
마침내 거란 기병이 현란한 기마술을 뽐내며 고려군의 코앞까지 들이닥칠 지경에 이르자 유도거와 김달치가 동시에 소리쳤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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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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