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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연산홍
고려 연산홍 ⓒ 김대갑
드디어 장마가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테고,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떠나겠지. 그리고 도시는 정적과 고독에 휩싸이겠지. 어쩌면 애완견들과 고양이들의 수난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유흥을 위해 미물에게 신경 쓸 틈이 없을 테니까.

민들레
민들레 ⓒ 김대갑
우연히 컴퓨터 폴더를 정리하다가 7월의 초입에 찍어둔 꽃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동안 하드 디스크의 구석진 곳에서 몇 크기의 킬로바이트로 고요히 있었던 것이다. 그때 참 무심코 찍었었는데, 지금에야 들여다보니 선연한 빛깔들이 너무 고왔다.

ⓒ 김대갑
ⓒ 김대갑
희고, 노랗고, 붉게 피어난 꽃들. 그들 머리 위로는 햇빛이 질탕하게 쏟아지고 있었고, 하늘가에는 블루가 융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벌들이 날아와 그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 김대갑
ⓒ 김대갑
그때 나는 그들을 완상하며 편편한 마음을 가졌었다. 어쩜 저리도 엽연하게 버티고들 있는지. 꽃들은 엄청난 양의 자외선 폭탄에도 아랑곳없이 잘도 피어나고 있었다. 노란 몸체를 활짝 펼치고 있는 원추리의 장한 모습은 뇌리에 깊숙이 박혔었다.

ⓒ 김대갑
ⓒ 김대갑
그 엄혹한 장마 기간 중에 그들은 무사한 나날을 보냈을까?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맺어졌다고 한다. 그날 꽃들과 나는 잠시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들의 모습은 이렇게 남아서 나의 눈을 아프게 한다. 혹시나 모두 져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 김대갑
ⓒ 김대갑
인연의 늪이여, 이들과 내가 그냥 스쳤다 해도 먼 후일 다시 만나게 해 달라. 그때는 내가 그들이 되고 그들이 내가 되어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해 달라. 돌고 도는 인간사에 우리도 그 꽃들처럼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겠지. 장마라는 인생의 크나큰 고통을 겪으면서. 아름다운 꽃들이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월#장마#꽃#무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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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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