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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뱀보다도 더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푸르뎅뎅한 벌레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 임윤수
사람이 사람을 속이고, 세상이 세상을 속입니다. 살기 위해서 속이기도 하지만 출세를 하기 위해서 속이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게 작금의 세태입니다. 사람들만 속이는 게 아닙니다. 산짐승도 속이고 벌레도 속입니다. 삼라만상 곳곳이 생존을 위한 속임수의 전장이며 위장의 함정입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인간들의 거짓과는 달리 자연계의 속이기는 생계의 수단이 되고,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눈가림을 위한 위장일 때가 많습니다. 동물이나 곤충들은 보호색으로 자신을 보호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속이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들, 동물이나 곤충들의 속임은 단순합니다. 단지 위기에서 벗어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이거나 먹고 살기 위한 생계의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그들의 속임수는 태생적으로 모자라는 능력의 한계를 보완해 주는 수단이 되기도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위장이나 거짓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며 필수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 길옆 수풀에는 때 늦은 산딸기도 탐스럽고도 맛나게 익어 있었습니다.
ⓒ 임윤수
이렇듯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속이니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조차 위장을 배웠나 봅니다. 하기야 일찌감치 속임에 능통해 곤충들을 잡아먹는 해충식물들도 있지만 속임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주변의 식물 중에서도 그런 증세가 보였습니다.

산촌에서 자란 촌놈이면서도 뱀보다 더 무섭고 싫었던 것이 송충이 같은 벌레입니다. 뱀을 보면 피하기는커녕 잡으려 대들었지만 송충이 같은 벌레를 보면 정나미가 뚝 떨어질 만큼 소름이 끼쳤습니다.

숭숭 털이 난 송충이도 무서웠지만 참깨밭이나 호두나무에서 볼 수 있었던 빛깔 푸른 벌레(시골에서는 '맹충이'라고 불렀음)가 더 무서웠습니다. 어찌 밭에라도 갔다 그놈의 벌레와 맞닥뜨리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싫고도 무서웠습니다.

▲ 길옆 수풀에는 막 꽃잎을 떨치고 결실을 맺어가는 산열매도 있었습니다.
ⓒ 임윤수
어른이 된 지금도 그놈의 맹충이, 손가락만 하고 푸르뎅뎅한 몸뚱이를 꿈틀거리며 굼실굼실 기어다니는 그놈의 벌레를 생각하면 괜스레 등이 근질거리고 머릿 밑이 근지러워집니다. 뱀처럼 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날짐승처럼 날랜 것도 아닌데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렇게 그놈의 벌레가 징그럽고 무서운지는 모르겠습니다.

똬리를 틀고 있는 벌레형상의 줄기에 놀라다

길옆 수풀, 때늦은 산딸기도 먹음직스럽게 열려 있고, 막 과실로 맺어가는 작은 산 열매도 있어 보기가 좋았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가는 한철을 카메라에 담느라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는데 아뿔싸,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그놈의 벌레가 머리 위에서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거의 반사적으로 목덜미를 움츠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등판은 오싹해지고 온몸이 근질거립니다. 그놈의 벌레가 목덜미에라도 떨어졌으면 '으악!' 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 내지는 까무러쳤을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 몸서리를 치며 똬리를 틀고 있는 벌레를 한참 동안 쏘아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질 않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넌덜머리 나도록 싫어하는 푸르뎅뎅한 그런 벌레가 아니라 넝쿨 자체였습니다.

▲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징그러운 벌레는 벌레가 아니라 단순한 넝쿨이었습니다. 세태에 쪄 들고 선입견에 젖어있는 저는 제 눈에 속은 거였습니다.
ⓒ 임윤수
넝쿨 입장에서야 병이 들거나 상처를 입어 배배 뒤틀리고 퉁퉁 부어 있었던 건지 모르지만 저의 눈에는 분명 징그러운 벌레였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연 그대로 비틀어지고 뒤틀린 넝쿨일 뿐이었습니다.

세태에 쪄 들고 선입견에 젖어 있는 저는 제 눈에 속은 거였습니다. 등판이 근질거리고, 머릿밑에 소름이 돋아날 만큼 식겁할 정도로 감쪽같이 속고 속이는 순간은 지나갔습니다. 허탈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내 눈으로 보고, 스스로 자신의 판단으로 속고 속이는 자신의 꼬락서니가 우스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넝쿨로 다가가 사진을 찍었지만 세상이 세상을 속이고, 인간들이 인간을 속이니 이젠 수풀 속 넝쿨들조차 인간을 희롱하는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입맛조차 씁쓸해집니다.

가끔, 아주 가끔은 스스로 자신에게 희롱을 당할 만큼 속고 속이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를 돌아볼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태그:#넝쿨, #맹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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