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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성 목사가 119구조대원과 함께 환자들을 옮기고 있다.
김해성 목사가 119구조대원과 함께 환자들을 옮기고 있다. ⓒ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화재 자국이 남은 의원 입구 계단.
화재 자국이 남은 의원 입구 계단. ⓒ 조호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사장 김해성 목사). 입구 1층 계단과 지하에는 검은 그을음과 불에 녹아내린 자국 등 화재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병들어 쓰러진 코리안드림과 그들 외국인노동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수고를 화마가 삼키려고 했던 흔적들이다.

지난 6월 30일 저녁 7시 무렵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가 6층짜리 건물인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병실에는 중국동포를 비롯해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노동자 환자 21명이 입원해 있었다.

화재는 중국동포 김모(50)씨가 이 건물 3층 계단보수 작업을 하다가 용접 불똥이 지하1층에 쌓여 있던 매트리스에 떨어지면서 발생했다. 병원에 신세진 것을 갚기 위해 계단보수 작업을 자원했던 김씨의 작은 실수는 국내 유일의 외노의원을 잿더미로 만들 뻔 했다.

다행히 화재는 긴급 출동한 소방차량의 진압으로 곧 진화됐다. 중국동포 할머니를 구하느라 지하에 뛰어들었던 김해성 목사는 인명피해가 없다는 말에 또 한번의 '아찔한 순간을 모면했구나'하는 생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찔아찔, 그래도 도움의 손길이

외노의원이 아찔한 순간을 모면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96년부터 주말진료소를 운영하다가 2004년 7월 외노의원을 개원했지만, 돈이 있어서 문을 연 것이 아니었다. 감기와 파상풍 등 사소한 병에 걸린 외국인노동자들이 치료의 기회를 놓쳐 숨지는 비극을 지켜보던 김 목사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것.

진료와 치료, 입원과 수술이 전액 무료인 탓에 매년 수억 원의 적자가 쌓였고, 그때마다 존폐위기가 거론됐지만 다행히도 도움의 손길로 아찔한 순간순간을 넘겼다.

김 목사는 "사소한 질병인데도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외국인노동자를 지켜보는 것은 비극이 아니라 죄악"이라며 "적자 운영 때문에 존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계속해나갈 것이며,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병원 급으로 키워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외노의원을 거쳐 간 환자는 7월 현재 8만2396명으로 하루 평균 200여명. 개원 첫해인 2004년에는 6709명, 2005년 2만9558명, 2006년 6만4095명 등 매년 급속도로 환자가 늘었다.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이 곳의 필요성이 급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수치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자본주의를 보았다"

두개골이 함몰된 중국동포 환자(오른쪽)와 고무호스에 의지한 환자.
두개골이 함몰된 중국동포 환자(오른쪽)와 고무호스에 의지한 환자. ⓒ 조호진
24일 개원 3주년을 맞은 외노의원 병실에는 두개골 함몰로 거의 식물상태인 환자와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환자 등 23명이 입원해 있다. '외노의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우즈베키스탄·러시아·몽골·방글라데시·스리랑카,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 아이보리코스트에서 온 환자 등 지구촌 가족들이 입원해 있다. 가장 많이 입원한 환자는 중국동포다.

입국한 지 두 달 만인 지난 3월 25일 뇌출혈로 쓰러진 중국동포 박상용(61·길림 흥춘)씨는 감당키 어려운 치료비에 쫓기다 지난 6월 7일 외노의원에 입원했다. 지난 3월 27일 입국, 남편을 간병 중인 김미옥(61)씨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자본주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김씨는 "돈벌겠다고 한국에 간 남편이 골프장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병원비가 자그만지 1000만원이 넘었다"면서 "친척들에게 얼마를 빌려 병원비 일부를 낸 뒤 지불각서를 쓰고 퇴원했지만, 중한 환자를 데리고 오갈 곳이 없었다"고 어려웠던 상황을 되새겼다.

김씨는 또한 "돈이 없으면 병들어도 숨이 넘어가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가 우월하다고 학습받았는데 막상 닥쳐보니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면서 "남편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것은 물론 친절하게 대해주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통해 사랑의 손길을 느낀다"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지난 2004년 7월 입국한 아이보리코스트 출신 S(29)씨.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을 피해 한국에 입국, 지난 2006년 8월 난민 신청한 그는 난민센터에서 생활하다 결핵증세로 지난 6월 11일 외노의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그의 병은 결핵이 아니라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는 쫓겨나지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간호사 노희경(31)씨는 환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표정이다. 그는 "외노의원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서 그들이 치료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장비 등 시설부족 때문에 우리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곳의 병상 30개 가운데 7개가 빈 상태다.

외노의원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핫산과 이길수씨의 악수... "한국에 와서 가장 큰 기쁨은 이 부장님처럼 좋은 한국인을 만난 것"
핫산과 이길수씨의 악수... "한국에 와서 가장 큰 기쁨은 이 부장님처럼 좋은 한국인을 만난 것" ⓒ 조호진
2000년 5월 입국해 7년째 한국 생활 중인 파키스탄 출신 핫산(38)은 이 땅에서 절망과 희망을 함께 맛봤다. 그는 2004년 4월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에서 일하다 왼쪽 팔이 기계에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처리는커녕 치료비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청량리 다일천사병원에서 치료받다 그해 10월 29일 외노의원으로 옮겨진 그는 이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만났다. 올해로 7년째 '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길수(49·근로복지공단 요양팀장)씨는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 산재처리는 물론 체불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산재보험 미가입 사업주인 공장 사장이 뒤늦게 나타나 합의를 종용했지만 핫산과 이씨는 원칙대로 처리했다.

외노의원의 치료와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절망에서 벗어난 핫산. 지난해 6월 15일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대표 김해성)에 채용돼 현재 언어지원팀에서 근무 중인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산재 및 임금체불 등에 대한 상담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핫산은 "산재 당하고도 법을 몰라 보상은 물론 치료도 받지 못하고 쫓겨날 땐 앞이 캄캄했다"면서 "이 낯선 나라에서 만약 외노의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길수 팀장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산재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캄캄하다,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한국 사람들을 많이 미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길수씨의 자원봉사 참여 동기는 핫산의 말과 닿아있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를 당하고 본국에 돌아간 동남아시아 인들이 한국인 관광객들을 폭행한 사건에 충격을 받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는 것. 그는 일요일이면 휴일을 반납하고 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산재상담 자원봉사를 한다.

이씨는 "외국인노동자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감추는 경우가 다반사며 불법체류 약점을 잡아 치료도 해주지 않고 내쫓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재처리를 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브로커들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며 "산재사고로 억울해 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없도록 하는 게 내 본업이니 자원봉사라고 할 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외노의원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핫산을 만난 이씨. 절망의 '코리안드림'에서 희망을 갖게 한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는 핫산의 손을 잡은 이씨는 "한국을 욕하지 않는 외국인노동자 한 사람 만든 것으로 만족 한다"고 말했고, 핫산은 "한국에 와서 가장 큰 기쁨은 이 부장님처럼 좋은 한국인을 만난 것"이라고 답했다.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외국인노동자 및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입원 환자.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외국인노동자 및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입원 환자. ⓒ 조호진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합창을 하는 외국인노동자들.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합창을 하는 외국인노동자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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