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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입수한 자료가 제3자에게 흘러 들어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해당 언론사와 기자는 이를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 일가의 주민등록초본 사본이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에게 유입된 경로와 관련해 제기되는 쟁점들이다.

<중앙> 기자의 '해명'에도 남는 의문들

▲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6월 13일 이명박 한나라당 예비후보 가족 부동산 투기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 후보 가족 주민등록등본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중앙일보>는 오늘(23일)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 일가의 주민등록초본 유출 의혹에 대해 자사의 이수호 기자가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20일자에 "유력 중앙 일간지 기자가 '이 초본' 친노핵심에 전달"했다는 기사를 실은 지 3일만이다. 곧이어 <노컷뉴스>와 <한겨레> 등은 이 중앙 일간지 기자가 '중앙일보 기자'라고 밝히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이명박 후보 일가의 주민등록초본 입수 경위 등에 대해 자사의 이수호 기자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수호 기자는 검찰에서 "지난달 8일 국회의사당 1층 기자실 부스에 나가 보니 노란색 서류봉투가 놓여 있어 열어 보게 됐다"며 "그 안에 '이명박 후보 관련'이라는 제목과 함께 이 후보 일가의 주민등록초본이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것.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누가 보냈는지 자료의 출처가 분명치 않아 이를 보도했을 경우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판단해 보관하고 있었다"면서 "사흘이 지난 (6월) 11일 오후 평소 알고 지내던 열린우리당 전 부대변인 김갑수씨가 전화해 만나자고 했"으며 "김씨가 초본 이야기를 하며 '한 번 훑어 보겠다'고 해 보여주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실 측으로 넘어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김씨가 나(이수호 기자) 몰래 이 자료를 복사해 갔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으며 "김씨가 어떻게 복사했는지는 모르겠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는 이수호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자료를 잘못 관리한 실수이며,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쳤다"는 언급을 소개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언론 윤리상 문제가 일부 있다고 판단, 22일자로 이 기자를 취재 현장에서 제외시켰"으며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이 기자에 대해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오늘 신문에서 이 기자로부터 '사본'을 입수한 김갑수 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의 말이 계속 바뀐 점을 들어 이 기자의 해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갑수 전 부대변인은 사본 출처가 문제 되자 지난 13일 <동아일보>와 <연합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형 동생 하는 국회 출입 기자에게서 제보를 받았다"거나 "잘 알고 지내는 언론사 기자에게서 주민등록초본 사본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5일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기자에게 자료를 한 번 보여 달라고 졸라 보게 됐다"고 말을 흐린 다음 2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는 "평소 알고 지내던 중앙일보 A기자에게서 '이 후보 친·인척의 초본 사본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초본을 본 뒤 '그가 잠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이에 복사해 왔다"고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두 사람(이수호 기자와 김갑수 전 부대변인)이 같은 부산 출신으로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안다"고 전하고 "검찰은 검찰 조사를 앞두고 서로 말을 맞췄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입맞춤 의혹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이에 앞서 21일자 기사(중앙일보 기자 '초본' 어디서 입수해 넘겼나)에서 "검찰은 또 이 기자가 '발송인 이름이 없는 택배로 받았다'고 진술한 것도 준 사람을 숨기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검찰이 이 기자를 소환한 날 중앙일보에서 같이 근무했던 박근혜 후보 캠프의 이아무개씨도 불러 조사한 것은 검찰이 이미 누군가로부터 이씨가 관련됐다는 진술을 받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검찰은 이 물음표가 많이 붙은 '초본' 이전 경로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까? 그것은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취재거리'를 왜 한 달 넘게 묵혔을까

▲ <중앙일보>는 7월 23일자 신문에서 '초본 유출' 관련 자사 이수호 기자의 검찰 수사 결과를 상세히 보도했다.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지만, 그 이전에 몇 가지 점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 먼저, 왜 <중앙일보>의 이수호 기자는 나름대로 '취재할만한 거리'를 한 달 넘게 묵혀놓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부 중견 기자라고 한다면 이 '초본 사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료의 출처가 분명치 않아 이를 보도했을 경우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보관만 하고 있었다는 점은 기자들의 보편적인 생리를 감안하자면 잘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특종 거리'를 눈앞에 두고 '출처' 문제 때문에 이를 한 달 이상 묵혀 두었다는 것이 기자들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수호 기자가 해명한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부스 위에 놓고 갔다"면 '출처'에 대한 부담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사실대로 '익명의 제보자'라고 밝히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자 개인 차원의 일"이라는 <중앙일보>의 오늘 해명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상식적으로 기자가 기삿거리가 될 만한 '자료'나 '정보'를 입수했을 때는 당연히 '정보보고'를 하는 것이 수순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순전히 '기자 개인 차원의 문제'라고 단정하자면 이수호 기자가 이와 관련한 취재 여부 등에 대해서 전혀 '협의'가 없었는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 편집국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지금으로서는 말 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그런 점에서 <중앙일보>는 <조선일보> 등 다른 언론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검찰의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고, 당사자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의 실명을 밝히며 오보를 크게 낸 조선일보에 대해서 엄중 대응할 것"(<동아일보>)이라고 사법처리를 앞세우기 이전에 스스로 이 같은 '상식적인 의문'들에 대해서 '지면'을 통해서 상세하게 궁금증을 풀어줄 '의무'가 있다.

왜냐 하면 언론의 일을, 특히 기자와 언론의 취재 보도 윤리의 문제를 '검찰' 손에 맡기는 것이야말로 '비언론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언론의 윤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상식적인 의문에 대해 <중앙일보>는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이명박, #주민등록초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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