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어 간판이 즐비한 베이징의 우다오커 거리. 베이징의 번화가 중 하나인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택시기사를 종종 만날 수 있다.
한국어 간판이 즐비한 베이징의 우다오커 거리. 베이징의 번화가 중 하나인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택시기사를 종종 만날 수 있다. ⓒ 김종성

한류가 동아시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한국의 대중문화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베이징의 길거리에서는 한국 대중가요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 간판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승객에게 간단한 한국어를 건네는 중국인 택시기사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국영 CC-TV에서 같은 시간대에 여러 개의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기도 한다. 또 시내 곳곳에서는 주요 외국어인 영어·러시아 외에 한국어 강좌를 여는 학원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 그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한류 열풍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베이징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긍지를 갖도록 만들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징 시내의 식당이나 길거리에서는 목소리가 아주 '우렁찬' 한국인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으로 확산되는 한류의 실체를 곰곰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외형적으로는 한국문화가 중국으로 전파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서는 중국문화가 한국으로 전파되는 측면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한류(韓流)보다 한류(漢流)의 위력이 더 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류(韓流)와 한류(漢流) 중 어느 쪽이 더 센가 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한류(漢流)가 더 세다면, 중국문화를 수용해서 한국문화를 더 살찌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인들이 한류(韓流)만 인식하고 한류(漢流)는 인식하지 못할 경우 그것이 한국의 국력 낭비 혹은 손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류(韓流)를 통해 얻는 이익만 계산하고 한류(漢流)를 통해 잃는 손실은 계산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결국 밑지는 장사를 하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한류(韓流)는 한류(漢流)보다 세지 못하다. 한류(漢流)가 한류(韓流)보다 더 세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외형상으로만 보면 분명 한국문화가 중국으로 전파되고 있다. 중국의 거리에서 한국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TV에서도 한국 연예인들이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형적 측면에 불과하다. 문화의 우월성은 대중문화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대중문화에 기초를 제공하는 것은 각 나라의 지식인들이 생산해내는 정보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나라의 지식인들이 더 질 좋은 정보를 더 많이 생산하느냐에 따라 대중문화를 포함한 문화 전반의 역량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식인문화가 대중문화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이 두 문화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 나라의 전반적인 문화역량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대학의 도서관. 이 대학도 한국 대학들과 학술교류를 많이 하고 있다.
베이징대학의 도서관. 이 대학도 한국 대학들과 학술교류를 많이 하고 있다. ⓒ 김종성

한류(韓流)는 한류(漢流)보다 세지 못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중문화 측면에서는 한국이 분명 우위에 서 있다. 하지만, 지식인 문화의 측면을 보면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 우위에 서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한국 학생이 한국으로 유학 오는 중국 학생보다 훨씬 더 많다는 점, 양국 학자들이 학문교류를 할 때에 비록 한국측에서 돈을 더 많이 쓰기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 중국측에서 주도권을 잡는다는 점, 중국 학계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 논문이 거의 없는 데 비해 한국 학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 논문은 많다는 점 등을 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어학이나 전통문화 같은 콘텐츠를 더 많이 판매하는 쪽이 어느 나라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방학 등의 시기를 활용하여 상대방 나라 학생들에게 자국의 언어나 전통문화를 가르쳐주고 돈을 벌어들이는 쪽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일 것이다.

하다못해, 같은 문화 유적지(예컨대 자금성) 내에서 주요 전각마다 수십 위엔(한국 돈으로는 수천 원)의 입장료를 당당하게 받아낼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일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한국이 영화나 드라마 등을 판매하여 중국으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학문이나 지식인 교류를 보면, 분명히 중국에서 한국으로 문화가 흘러 들어가는 한편 그 대가인 금전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대중문화의 저변에 있는 지식인문화의 측면에서는 한류(韓流)가 아닌 한류(漢流)가 문화이동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이 한류(韓流)를 통한 대중문화의 대(對)중국 수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 중국 역시 한류(漢流)를 통해 지식인문화의 대한(對韓) 수출에서 '흑자'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배경이 있기에, 중국 지식인이나 관료들이 한국 지식인이나 관료들을 대할 때에 기분 나쁘다 싶을 정도의 문화적 우월감이나 자신감 등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한류(韓流)가 더 우수하다면, 중국인이 한국인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한편 한국인은 다소 기가 꺾이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도 한류(漢流)를 통해 한국에 문화를 더 많이 전파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한류(韓流) 열풍을 그저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韓流)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한국문화가 중국 등 동아시아 각국의 문화를 개조하지는 못할지라도 각 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아시아 문화의 전반적 발전에 일정 정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베이징시 차오양구 거리. 이곳에서 외국 기업들의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베이징시 차오양구 거리. 이곳에서 외국 기업들의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 김종성

지식인 문화, 한국보다 중국이 우위에 서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들이 내심으로는 '한국문화보다는 중국문화가 더 우수하다'고 자부하면서도 한국의 대중문화를 열심히 수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이 한류(韓流)를 수용하는 것은 자신들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사상사를 전공하고 중국문화에 정통한 어느 역사학자는 "중국이 한류를 수용하는 것은 시장경제 시스템에 하루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중국이 시장경제가 더 발달한 미국의 문화를 수입하지 않고 한국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최강국인 미국문화를 직접 받아들일 경우에 중국 체제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한국문화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역사학자가 말한 전략적 이유라는 것이다.

한국문화가 미국문화와 비슷하여 시장경제를 배우기에 좋은 데에다가, 한국은 같은 동아시아권이라서 한국문화가 중국문화를 와해시킬 가능성은 적다는 판단에서 한류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학자의 말대로, 현재 중국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하루빨리 시장경제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들이 시장경제 시스템을 한국에서 배우고자 한다는 점은, 중국 지식인들이 한국의 새마을운동(중국식 표현은 新村運動)을 배우기 위해 서울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나, 중국정부가 시장경제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 드라마들을 국민들의 안방에 소개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한류를 통해 국민들을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훈련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겉으로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통해 시장경제 시스템을 '재미있게' 배우고 있지만, 중국은 자신들의 근본적 체제만큼은 결코 바꾸려 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은 공산당과 정부가 사회주의를 계속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

며칠 전에 베이징의 어느 젊은 역사학자는 "중국은 결코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열변을 토한 적이 있다. 그는 "중국은 다만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뿐"이라면서 "사회주의는 시장경제와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찌 들으면 자본주의 앞에서 사회주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또 어찌 들으면 그 말 속에서 어떤 진심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 학자의 코멘트와 비슷한 표현들을 베이징 시내의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베이징시 차오양구(區)의 외교부 청사 앞에 있는 지하철역 입구에 걸린 한 선전문구에는 "사회주의 영욕관(榮辱觀)을 수립하자"라고 쓰여 있다. 이 표현은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지니고 사회주의적 자존심을 지키자는 취지로 이해될 수 있다.

외교부 청사 앞에 있는 선전문구. "사회주의 영욕관을 수립하자"라고 쓰여 있다.
외교부 청사 앞에 있는 선전문구. "사회주의 영욕관을 수립하자"라고 쓰여 있다. ⓒ 김종성

중국의 한류 수용, 시장경제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것

시장경제도 물론 자본주의적 요소이지만, 시장경제를 수용하되 경제의 사회화 등을 지킴으로써 사회주의의 요체만큼은 지켜 나가겠다는, 어찌 보면 타협적이지만 또 어찌 보면 견고한 중국인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중국정부는 한류(韓流)의 수입을 통해 시장경제 시스템에 적응해 나가는 한편, 자국의 본질적 체제인 사회주의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런 중국정부의 의지가 과연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거둘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우리는 중국정부가 외국문화를 수입하더라도 자신들의 본질적인 부분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지키려 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한류(韓流)는 어쩌면 시장경제 시스템에 적응할 때까지만 사용하다가 내버릴 '1회용 컵'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류(韓流)를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를 수입하는 한편, 한류(漢流)를 통해 자신들의 중화문화를 한국에 '은밀히' 수출하면서 실질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으니, 한류(漢流)가 한류(韓流)보다 더 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는 않을까.

그리고 한류(韓流)는 대중문화에 불과한 데 비해 한류(漢流)는 지식인들이 생산해내는 인문학 등을 상품으로 하고 있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한류(漢流)가 한류(韓流)보다 생명력이 더 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류(韓流)를 대하는 중국정부의 전략에서 1860년대 이후 청나라 정부의 문화전략이 연상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점은 2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