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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극이 고구려를 지나 정조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대형 스타와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태왕사신기>의 운명을 걱정하기도 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이미 예견된 일이다. 대선과 연결시켜 분석하는데,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문학계에서는 역사 소설이 새삼 작가적 능력을 검증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창작자의 상상력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것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팩션의 역할이 크다.

역사 소설과 드라마에서 팩션 바람은 하나의 '현상'이며 '신드롬'이다. 매우 소소한 사실에 역사적 상상력이 대부분인 작품들은 창작자나 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모두 매력적이다. 물론 처음의 팩션과는 다른 점을 보인다. 무조건 상상력을 많이 가미시킨다고 해서 팩션은 아니기 때문이다. 숨겨진 이면의 사실을 추적해가는 방식이 팩션의 근본적 특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최근의 역사 소설의 변화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싶다.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상황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마당으로 불러낸다고 할 수 있다.

소설 <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는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이나 딜레마 상황을 과거의 인물들이 겪은 상황을 통해 실체화하려 한다. 그 실체화는 신선하면서도 너무 현대적이며 가치의 비지향적이다.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에서는 최근 주목되고 있는 타자의 시선에서 조선과 조선인을 그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내재인의 시선으로 외재화시키는 한계가 있기도 하다.

신경숙의 <리진>의 경우에는 단지 동아시아 속 조선인이 아니라 세계인과 만난 무희 리진이 봉건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 사이에서 겪은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데서 특징적이다. 드라마 <황진이>와 황진이는 하나의 프로페셔널한 예술인의 관점에서 황진이를 그려 성공했고, 민중 리얼리즘관점에서 접근한 영화 <황진이>는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고 말았다.

<주몽>과 <연개소문>, <대조영>은 동북공정에 맞서야 하는 한국인들의 현실적 고민들을 대리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들은 현대판 CEO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몽과 대조영이 창업군주였다면 이제 수성(守成)의 군주 정조에 주목하고 있다. KBS <한성별곡-正>, MBC <이산-정조대왕>, 케이블 CGV <8일>이 그것인데 개혁군주의 면모다. 다만 이미 몇 년 전에 기획된 것이므로 대선을 앞둔 한국인의 고민을 어떻게 담아낼지는 고민스럽다. 개혁이라는 코드가 일상의 시대적 고민인지 따져볼 일이기 때문이다.

팩션의 극대화, '드라마 다큐'는 어떤가

교양 프로그램으로 많은 공헌을 했던 작품은 <역사스페셜>이다.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해 냈는데, 실감나는 입체적 컴퓨터그래픽과 다양한 고증, 그리고 국내외 현장 조사와 답사가 매주 펼쳐져 시청자의 열광을 이끌어 내었다. 물론 이 프로의 특징은 철저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과 역사적 상황과 사실적 개연성을 추적하고 조명하는 것이었다.

왜 그들은 그렇게 했을까?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되면 매우 범위가 포괄적이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면 그 감흥은 커지지만, 함량이 부족하면 스케일만 크고 결론은 흐지부지 되는 경우 보는 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가 힘들어진다. 또한 역사에 미치는 인물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이는 중국의 역사서들이 열전을 구성해낸 이유다. 사실 드라마와 소설의 대부분은 역사적 상황이나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주목한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이러한 점이 부족했다.

지난 6월 처음 방영된 <한국사 전(傳)>은 인물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본다. 홍순언, 리진, 이정기, 신숙주를 통해 그 인물이 겪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물의 고민을 구성해 본다. 한 인물을 통해 역사적 상황을 구성해내기 때문에 압축적이고 집약적이다. 또한 <한국사 전(傳)>은 반드시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사안에 집중하지만은 않는다. 때론 사랑 이야기 일수도 있고, 애틋함 혹은 휴머니즘이 역사적 상황과 어떻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역사스페셜>과 같은 다큐적 접근이 이성적이면서 감정적 즉 민족주의적이라면 <한국사 전>은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들면서 감성적 민족주의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때 역사를 움직인 것은 거창한 대의명분도 있지만, 소소한 인간의 사랑과 욕망도 크다는 점을 되새기게 해야 한다.

작품의 전개방식을 보면 내레이션은 여성이 스튜디오 진행은 두 명의 남성 진행자가 맡는다. 한 명은 부드럽고 다른 한 명은 힘차서 리드미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다. 배경 자료로 구전이나 야사는 물론 문학작품 등도 사용함으로써 구성의 폭을 넓히고도 있다. 전(傳)이라고 하는 방식이 지니는 한계이자 장점일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 구조, 즉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드라마와 역사 다큐의 장점과 단점을 상호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차라리 이 참에 ‘드라마 다큐’로 아예 특화시키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이는 팩션의 극대화일 것이다. 이 가운데 역사적 고증 논란은 있을 것이다. 장점이자 한계이기에 주의할 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역사에 들어가 웅거할 것인가, 이 시대 사람들의 고민을 역사적 상황에서 대리 모색할 것인가가 중요해 보인다. 단순히 역사에 묻힌 인물을 광장에 드러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현대인의 고민을 미래를 위해 역사를 현재의 마당에 불러내는 것도 의미가 클 것이다. 다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데, 너는 모르느냐는 방식은 이제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역사 소설#팩션#드라마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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