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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겉그림.
<편지> 겉그림.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는 형무소에 있는 츠요시가 동생 나오키에게 보낸 편지를 매개체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편지'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친밀함, 그리움, 따스함 등이다. 게다가 수감중인 형이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의 감동과 동정을 불러옴 직하다.

여기에, 작품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학에 가야한다'는 사고와 질릴 정도로 끈끈하기만 한 가족간의 정, 학력과 가문위주로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 등은 우리와도 매우 흡사하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더욱 이 소설에 공감하고 애틋함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런 요소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츠요시의 처지에 자연스레 동정심을 품게 되고 나오키가 겪는 부담함과 차별에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과연 그들이 겪는 차별이 부당한 것일까'라고 작가는 날카롭게 되묻고 있다. 당연히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겪는 차별이 당연하다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일까. 작가의 사고를 풀 수 있는 한 가지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작품에 등장하는 편지들의 존재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작가의 질문에 어느 정도 수긍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는 크게 세 가지의 편지가 나온다. 츠요시가 나오키에게 보내는 편지, 츠요시가 좌절하지 않도록 나오키 몰래 나오키를 대신해서 유미코가 보내는 편지, 그리고 유족에게 사죄를 구하는 츠요시의 편지가 그것이다.

츠요시가 나오키에게 보내는 편지가 <편지>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나는 책장을 넘기면서 드러나는 다른 편지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츠요시에게 편지는 용서와 사죄를 구하는 '자기만족'의 구실이었지만 츠요시의 편지를 받는 나오키는 살인강도 범죄자인 형의 존재를 재확인해주는 불편한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또한 유족들의 입장으로서도 츠요시의 편지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고통 자체였을 뿐이다.

죄와 벌, 용서의 함수관계에 대해

편지는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마음을 전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주는 독화살 될 수도 있다고 작가는 편지를 비유해서 설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죄와 벌의 관계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이는 작품 중에서는 나오키가 근무하는 사장의 입을 빌어 나타난다.

"사람에게는 관계라는 게 있네. 사랑이나 우정같은 것 말일세. 누구도 그런 걸 함부로 끊어서는 안 되지. 그래서 살인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걸세. 그런 의미로 보면 자살 또한 나쁜 거지… 자네 형은 말하자면, 자살을 한 셈이야. 사회적인 죽음을 선택한 거지.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남겨진 자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할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어. 본인만 벌을 받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닐세. 자네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까지도 자네 형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란 말일세." - 315쪽

사회나 이웃이 자신을 어떻게 부당하게 대하든, 자신만은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나오키에게 사장은 또 충고한다. '정정당당한 게 정말 힘든 선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자네가 매우 선택하기 쉬운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라고.

사장의 말대로라면 나오키가 겪는 차별과 부당은 당연히 겪고 감수해야 할 '죄값'인 것이다. 비록 그 죄를 자신이 짓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자살을 택한 형의 동생으로서 말이다. 그렇다고 평생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처지를 받아들이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좋은 관계를 새로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장은 말함으로써 일말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장 역시 확실한 답을 회피하고 있듯 작가 역시 이렇다 할 뚜렷한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편지가 동생에게는 고통이었다는 것을 츠요시가 깨닫게 되었다는 끝맺음을 내리면서 다시 한 번 죄와 벌의 관계에 대해서 묻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읽고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한다. 감동어린 소설이라고들 입을 모았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나는, 죄와 죄값의 문제에 대해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다룬 작가의 시선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어떻게 보면 비정하리만치 차갑기만 하다. 과연 일본인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이러한 의견에 전적으로는 동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죄와 벌 그리고 용서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라는 의견에는 100% 동감한다.

덧붙이는 글 |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랜덤하우스


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10)


#편지#히가시노 게이고#권일영#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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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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