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비 때문인지 장군의 묘역은 인적이 딱 끊기고 적막에 휩싸였었는데, 웬일인지 저는 그날의 기억이 너무나 좋았던지라,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다시 한번 꼭 이곳에 와보고 싶었습니다.
좁은 도로를 따라 산 쪽으로 곧장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곧 막다른 길이 나타나고 길이 끊겼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차로 갈수 있는 길이 끊겼다는 게 맞겠지요. 이제 그 막다른 길 정면에, 긴 칼을 한손에 쥐고 있는 장군 동상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신숭겸 장군은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의 개국공신이 된 장군입니다. 927년(태조 10년) 대구에서 견훤군과 싸우다가 포위되어 왕건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자, 신숨겸이 왕건과 옷을 바꿔 입고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가 싸우다가 왕건을 대신해서 목숨을 던졌습니다.
견훤군은 태조 왕건을 죽였다고 생각해 그의 목을 베고 창에 꽃아 "왕건이 죽었다"라고 외치고 다녔고, 포위가 풀어진 틈에 왕건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태조는 장군이 전사한 곳에다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었고, 목 없는 장군의 시체를 수습해와 머리부분을 금으로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굴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봉분을 3개 만들었다고 합니다.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걸어 묘역에 들어섰습니다. 그중 제일 처음 저희를 맞는 것은 비룡지라고 불리는 작은 연못에 피어난 연꽃이었습니다. 무더운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늘 한 점 없는 연못 앞에서 한참동안 연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연꽃만 보면 전주 '덕진공원'이 생각납니다. 어릴 때 전주 이모 댁에 놀라갔다가 처음 바라본 수많은 연꽃의 향연 때문일까요? 그 후론 여태, 못 가본 곳이라서 그런 걸까요? 연못을 가득 메운 연꽃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연못을 돌아 나와 다시 홍살문을 지났습니다. 그곳에 적힌 안내문을 다시 천천히 읽고서 정면으로 보이는 충렬문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작년에는 닫혀있었는데 오늘은 열려있네요. 안으로 들어 가보니 우측으로 신도비가 보이고 정면에는 장절사가 있습니다. 저 안에 신숭겸 장군 영정이 모셔져있다고 합니다.
충렬문을 빠져나와 장군 묘역 앞에 섰습니다. 멀리 봉분 셋이 조그맣게 보이고 푸른 잔디가 그곳까지 쫙 펼쳐져있습니다. 그리고 양옆으론 우람하게 뻗어 오른 소나무들이 도열하듯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마치 장군을 모시는 장수들 같습니다.
햇빛을 피하며 나무그늘을 쫓아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그늘은 곧 사라지고 온몸에 뙤약볕을 받으며 한참을 올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힘들거나, 짜증은 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안개 때문인지 촉촉이 젖은 풀을 밞는 느낌이, 발에서부터 몸을 타고 머리까지 전해지는데, 진한 소나무 향과 풋풋한 풀냄새까지 더해져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이 자리는 음양풍수설의 대가라고 알려진 도선국사가 왕건이 죽은 뒤 묻힐 자리로 미리 점지해 놓은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태조 왕건은 자신을 위해 대신 죽은 신숭겸을 위해, 그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왕건이 얼마나 그를 안타깝고 애틋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대목입니다.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목례를 올리고, 뒤로 돌아 아직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산과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저 놈의 안개는 언제나 걷힐 것인지?
묘역 한참 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면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둘이 저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