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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왼쪽)가 11일 오전 지난 1975년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의 강남구 일원동 자택을 방문했다. 박 후보가 눈물을 훔치는 김 여사를 바라보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앞으로 딸처럼 여길테니 정치하다가 어려울 때 언제든 오세요." (김희숙 여사)
"그러겠습니다." (박근혜 후보)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가 고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82) 여사를 만났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의 대표적인 민주화 인사다.

박 후보는 11일 오전 10시 40분께 서울 일원동의 김 여사 자택으로 찾아가 4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같은 과거사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 - "선진국 만들어 보답하겠다"

박 후보는 먼저 김 여사에게 "진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장준하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셨느냐"고 위로의 인사말을 건넸다.

김 여사는 만감이 교차한다는 듯 "다 세월이 지나니 이렇게 만나게 된다. 오늘의 만남이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그런 뒤 김 여사는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굉장히 떨렸다. 기도도 많이 했다. 모든 것은 지난 일이니까 내가 (박 전) 대표에게 세 가지만 말하겠다"면서 미리 적어둔 쪽지를 꺼내 읽었다.

우선 김 여사는 "박정희씨의 후예가 과거 선친의 잘못을 사과하기 위해 보자고 했다길래…(만나기로 했다).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민주국가를 만드는 데 매진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김 여사는 "오늘 만남이 정치적 목적에 따른 거짓사과가 아닌, 진정한 애국애족의 고민에서 나온 역사적 전환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시금 이 나라에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헌신해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김 여사는 "과거는 과거지만 다시는 우는 사람이 없게 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김 여사의 당부에 박 후보는 "장 선생은 누구보다 애국심이 뜨겁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분이었다. 아버지와는 반대 입장에 있었고 방법도 달랐지만 두 분 다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았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박 후보는 "장 선생은 자유민주주의가 바로 서고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염원했다고 생각한다"며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선진국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아픔을 겪은 분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취재진이 빠져 나간 뒤 박 후보는 내내 김 여사의 손을 꼭 붙잡고 20여분간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의 극적인 면담에는 박 후보 선대위의 이혜훈 대변인과 서청원 상임고문, 그리고 김 여사의 며느리도 함께 했다.

장준하 유족 찾아간 박근혜, 왜?

고 장준하 선생은 유신독재 시절 대표적 민주화 인사로 꼽힌다. 광복군으로 활동했고 광복 후엔 <사상계>를 창간해 독재에 맞섰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엔 신민당 국회의원으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며 박 정권에 항거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석방된 이후 2차 서명운동을 준비하던 중 그는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에서 추락,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사인은 아직까지 미궁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지난 2004년 장 선생 사망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내렸다.

이날 박 후보와 장 선생 부인과의 만남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민주화 희생자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풀이된다.

박 후보는 지난 달 11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제 아버지 시대에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으신 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저는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정식으로 사과한 바 있다. 당시 박 후보는 직접 출마선언문에 이 대목을 넣었다고 한다.

이혜훈 대변인은 "오늘 만남은 출마선언 때 후보가 언급했던 '사과와 보답'의 의미로 볼 수 있다"며 "그(유신) 시절에 고통 받으신 분들을 일일이 다 찾아뵙는 건 쉽지 않은 상황이니 가장 상징적인 장 선생 유족을 찾아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만남은 장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와 평소 친분이 있던 서청원 상임고문의 주선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 대변인은 "박 후보가 먼저 서 고문을 통해 '(부인께) 사과를 전하러 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유족 쪽에서도 '(출마선언 때) 박 후보의 사과를 듣고서 마음에 와 닿았다'며 마음을 열어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또 민주화 희생자들을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일부러 전략적으로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후보는 늘 사과하는 마음이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만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김 여사 "딸처럼 여길 테니 정치하다가 어려우면 언제든 찾아오라"

그러나 이날 언론에 공개된 만남에서 박 후보는 '사과한다'거나 '죄송하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 대목에 대해서 이 대변인은 "사과하러 가겠다고 미리 청을 드려서 뵙게 된 것이다. 이미 사과의 뜻을 전하고 그쪽에서 수락해 만나게 된 것인데 더 이상 뭐가 필요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대선을 앞둔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냐'는 시각을 경계했다. 이 대변인은 "이미 (출마선언 때) 사과했고, 진정성 없는 제스처는 (후보 본인이) 가장 싫어한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이날 김 여사에게 홍삼액과 장미꽃을 선물했다. 흰색과 붉은색 장미가 섞인 꽃다발이었다. "꽃말에 사과의 뜻이 있어 박 후보가 미리 준비한 것"(이 대변인)이라고 한다.

김 여사도 보답으로 이날 박 후보에게 장 선생의 자서전 <돌베개>를 선사했다. 노랗게 세월의 흔적이 묻은 것이었다.

김 여사는 박 후보와 헤어지면서 "(박 후보를 보니) 미국에서 목사를 하는 막내아들 생각이 나기도 한다. 딸처럼 여길 테니 정치하다가 어렵고 얘기할 데 없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또 박 후보도 "그러겠다"며 고마워했다고 이 대변인이 전했다.

태그:#박근혜, #장준하, #박정희, #유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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