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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가 6일 노무현 정권과 박근혜 캠프의 폭로전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민주연대 21' 사무실을 찾아가 격려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운하보고서 야합 실상 확인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이명박 죽이기 음모 실체의 일단이 드러났다"
"집권세력의 정권연장 술수다"
"배신한 해당행위다"
"정권과 야합한 사상 초유의 일이다"
"진상을 규명하라"


수자원공사의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경과가 알려지면서 이명박 후보 측이 보인 반응이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27명의 의원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어떤 분들은 어깨띠를 두르고 사뭇 결기어린 표정으로 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마치 병풍이니, 세풍이니, 북풍이니 하던 사건과 비견되는 무엇이 터진 것 같다. 천기누설 사건이라도 되는 양, 이 문서 때문에 경부운하 공약이 대단한 음해라도 받은 것처럼 난리다.

운하 보고서, 우리 단체도 그 정도는 쓴다

하지만 수자원공사의 보고서는 기껏해야 한 시간만 인터넷을 뒤져도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 뭉텅이에 불과하다. 기존 자료를 정리하고 여러 토론회에서 거론됐던 내용들을 요약해 소개한 수준이다. 나에게 새로운 정보는 "VIP께서 '운하가 우리 현실에 맞느냐'고 물었다"는 문장 정도였다.

보고서가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뜻이다. 몰랐던 자료가 밝혀진 것도 없고, 운하 공약을 반박하는 근사한 논리도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부운하 논쟁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거나, 이 후보 측을 힘들게 했다는 주장은 한참 과장됐다.

만약 내가 속한 환경운동연합에서 보고서를 냈더라도, 그보다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후보 측 전문가들의 평소 주장이 빤하고 설계를 맡았다는 U사의 정보조차 돌고돌아 들려오는 상황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가 만든 자료를 무단으로 유출하거나, 정치적 영향을 끼치기 위해 이를 이용한 행위는 비난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이 구속되고 그 실상이 대부분 드러났는데도, 음모론이니 야합이니 하며 부산을 떠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더구나 이 후보 측이 '노 정권과 박 후보 측의 야합' 증거라며 보고서에서 찾아낸 것이 겨우 "우리나라의 연간 골재 수요가 약 1억㎥가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보고서에 있는 수치다"라는 내용이다. 건교부 홈페이지 통계에서 골재라고 입력만 해도 금방 확인되는 숫자가 음모의 증거라니, 너무 싱겁다.

이 후보 측이 변변찮은 보고서를 놓고 벌이는 공세는 심각한 '오버'다. 이미 4~5월 중에 환경단체나 여러 학회들이 개최한 토론회들에서 발표된 내용들인데도, 수자원공사 보고서에 포함됐으니 공작과 음모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하공약이 부실한 것도 보고서 탓인가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6월 22일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낙동강 하구에 쌓인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운하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부실한 공약을 주장하는 후보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상황은 운하 공약 자체가 허구적이기 때문이지, 누군가 보고서를 만들어 돌렸다고 생긴 문제가 아니다.

이 후보 측이 굳이 문제를 삼으려면 운하 공약의 실상을 파헤친 환경단체들이나 학회들을 고소해야지, 음모론을 들고 정치적 공세에 나설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후보 측이 보고서 사태를 과장하는 것은 '부실한 운하 공약이 노 정권과 박 후보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어쨌든 이번 공세를 통해 이 후보 측은 본전을 드러낸 경부운하 공약에 대한 공격을 피했고 사회의 여론을 돌렸으니, 성공했다. 하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음모론 때문에 경부운하 검증 기회를 놓친 국민들과 할리우드 액션에 속아 엉뚱한 장면만 계속 중계했던 언론은 이 후보 측에 당했다.

나는 이제라도 논쟁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믿는다. 수자원공사 보고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접어두고, 이 후보 측에서 10년 동안 100명의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공약을 검증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즉 '스크루가 돌면 물이 좋아진다'(7.8), '운하가 생기면 대구 열섬현상이 해결된다'(6.24 대구), '수질 개선을 위해 썩은 하상을 걷어내야 한다'(6.22), '골재를 팔아 8조원을 번다' 등의 주장이 과학적인지 밝혀야 한다.

환경운동연합이 질문했던 "수질개선을 위해 하천을 준설한 사례를 아는가?", "골재를 팔아 운하를 만든 나라가 있나?" "중금속으로 오염됐다는 골재를 돈 받고 팔 수 있나?" 등에 대한 답변을 들어야 한다. "이 후보가 낙동강 수질이 오염돼 흙이 썩었다고 한 곳이 갯벌이 아닌지 함께 확인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마무리해야 한다.

또 경부운하가 만들어지면 물류혁명이 온다더니 최근엔 운하 효과에서 '물류 비중은 20%'라고 하고, 처음엔 식수원 대책이 없다가 나중엔 취수를 위한 이중 수로를 들고 나오고, 또 강변여과수를 대안이라고 하다가 이제는 일부에만 강변여과수를 도입한다고 하는 등의 좌충우돌도 확인해야 한다. 경제성 분석 결과가 2.3(곽승준 교수)인지, 1.2(이상호 교수)인지도 중요하다. 도대체 경부운하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 후보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하루에 오가는 배가 12척이라는데(1020만톤/(350일×2500톤),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이걸로 어떻게 '천지개벽'과 '국운융성'을 이룰 것인지도 국민들은 듣고 싶다.

이 후보의 할리우드 액션에 당해선 안 돼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은 경부운하 공약을, 가난한 상상력과 오만한 개발주의가 결합된 조악한 공약이라 생각한다. 시화호 간척, 새만금 간척 등에 이어지는 무책임한 구태며, 환경의식 부재가 낳은 개발독재의 유산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려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은 이런 의문을 품은 국민들에게 답할 책임이 있다. 음모론으로 혼란을 조성할 것이 아니라, 운하의 실체와 타당성을 진지하게 설득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고 또다시 음모론으로 상황을 회피할 요량이라면, 이 후보는 이제라도 경부운하 공약을 철회해야 한다.

태그:#경부운하, #운하, #이명박, #할리우드 액션, #수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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